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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Dec 03. 2021

화난 얼굴로 말하는 사랑

나이 서른셋이 되며 먹는 감정의 서른세 끼
#따뜻함



화난 얼굴로 말하는

사랑


 온기가 충만한 얼굴에서만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꽤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반려자 친구의 화난 얼굴을 보고서, 아니 왜 화를 낸 건지 그이유를 알게 되면서 깨달은 사실이었다.


 나와 반려자 친구는 결혼하기 훠어어얼씬 전부터 유난히 자주 치고받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나는 주로 생활습관 부문에서 구실을 제공하는 편이었다. 이를테면 운전하다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거나, 전방주시를 제대로 하지 않고 걸어다닌다거나, 지하철 플랫폼을 향해 아래로 뻗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핸드폰을 본다거나 하는. 모두 안 그러는 게 좋은 나의 명백한 실책이라 달아날 구석은 없지만, 유난히 반려자 친구의 얼굴이 사나워질 때는 다 큰 성인이 이런 일로 이렇게 혼이 나야 하나 싶어 서러웠던 때도 있었다.

 여러 순간들 중에도 그의 얼굴이 가장 매섭게 구겨지는 것은 단연코 계단을 내려가면서 핸드폰을 볼 때였다. 아니 거 핸드폰 좀 볼 수도 있지, 나 말고 그렇게 핸드폰 보면서 계단 내려가는 사람들이 그 공간에도 수백 명은 더 있었다. 누굴 치거나 내가 다치는 일이라도 생겨서라면 또 모른다고 못내 억울해하기를 여러 차례였는데, 어느 날은 화를 내던 반려자 친구가 외삼촌 이야기를 했다. 실족사로 유명을 달리하셨다던. 생각 없이 스크린이나 보면서 계단을 내려가는 내가, 혹여 발이라도 잘못 디뎌 큰일을 치르는 건 아닐까 매번 염려스러웠던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이 계단을 잘못 디뎌 넘어지든 굴러떨어지든 그건 상관없는데, 너를 그런 식으로 잃을 수 있다는 위험 부담은 지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돈오의 순간이었다. 화난 얼굴로 말하는 사랑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날 아찔하고도 강렬하게 알아차렸다.


 이제는 더는 계단을 내려갈 때 핸드폰을 꺼내 보지 않는다. 반려자 친구가 옆에 있지 않을 때도. 올라갈 때면 모를까, 적어도 내려갈 땐 스크린을 꺼둔 상태로 이동한다. 나를 잃는 게 끔찍이도 싫어서 미간에 깊게 팬 주름으로 화내던 반려자 친구의 얼굴이 둥둥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화난 얼굴 밑에는 사랑이 있음을 알지만, 잠시라도 그 위태로움을 느끼게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이따금 사고만 치고 다니던 나를 매콤하게 혼내거나 시원하게 조져놓던 엄마의 화난 얼굴들도 공중에 넘실거린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때 그렇게 화내지도 않았겠지, 괜한 감상에 일순간 코가 시큰해질 때쯤 열차가 부산스럽게 멈춘다. 나는 일어서고, 문을 향해 걸어 나가며 달아올라 있던 스크린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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