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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Dec 22. 2021

비명감지기가 있는 화장실

나이 서른셋이 되며 먹는 감정의 서른세 끼
#씁쓸함



비명감지기가

있는 화장실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다. 한 번을 파투가 났다가 시간을 다시 꿰맞춰 만나기로 한 약속이었다. 평일 저녁의 고속버스터미널 식당가는 한산했다. 오픈된 레스토랑에 놓인 예닐곱 개의 테이블에 손님이 들어찬 곳은 두어 테이블뿐이었다. 허기진 상태에서 만난 우리는 서빙된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나니 그제야 시력이 좀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대화는 즐거웠다. 많은 말을 소화하는 중에 입술이 말라붙을 때마다 술을 시키지 않았던 우리 테이블엔 유일한 마실 거리였던 물을 한 모금씩 삼켰다. 긴 대화를 어느덧 갈무리하고 테이블을 정리할 무렵, 나는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화장실에 드나들었던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금세 세면대 앞이었다. 손을 씻고 핸드 드라이어를 찾는데 베이지색 벽 위로 보이는, 암갈색의 바탕에 놓인 흰 글씨를 읽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비명 감지기 작동 중’.


 제대로 읽은 게 맞는지 의심스러워 나는 눈을 빠르게 깜박거렸다. 눈에 맺힌 상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이 화장실에는 비명감지기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아래엔 작은 글씨로 몇 줄의 설명이 더해져 있었다. 고객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하여 화장실 내부에 비명감지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문의 사항이 있거든 적힌 번호로 연락 달라는 문구가. 또 다른 안내 문구도 적혀 있었다. 본 화장실은 몰래카메라 설치 여부를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있습니다. 수상한 점을 발견하시면……. 아아,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단말마적인 절망을 느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진도 찍어놓았다. 집에 와서 다시 사진첩을 훑어본대도 토씨 하나 변하지 않겠지만.


 ‘화장실 비명감지기’. 아까의 잔상을 잊지 못한 나는 집에 돌아와 누운 침대 위에서 여덟 글자의 검색어를 입력했다. 버튼 클릭 한 번에 조회된 기사는 2016년에 발행된 것이었다. ‘비명 울리면 사이렌 울리는 女 화장실 설치된다’는 제목의 기사는 이런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여성 혐오’ 범죄를 예방하는 데 이 비명감지기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점. 이 장치는 비명과 유사한 데시벨을 감지할 경우 사이렌이 울리게 되어 있다는 점. 일순간 났다가 사라지는 큰 소리와 구별되게 ‘아악~!’하고 길게 소리가 이어지는 비명의 특성에 착안해 일정 길이와 데시벨 이상으로 발생하는 소리에만 반응하도록 장치가 설계됐다는 것이었다.


 평온한 얼굴로 자신들이 개발한 제품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은 모 업체 대표와 모 대학교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조금 부럽다고 생각했다. 평화롭고 안전할 것 같은 강남 한복판의 백화점에서 비명감지기가 설치돼 있다는 안내 문구를 뜨악한 얼굴로 볼 일이 없을 그들이. 나처럼 뼛속까지 사무치는 공포를 마주할 일은 아마도 없었을 그들의 일상이.


 비명감지기가 필요해진 화장실을 써야 하는 나의 하루하루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들은 또 얼마나 될까. 출퇴근길의 어둑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날 때부터 누구든 이 정도 크기의 공포는 느끼면서 사는 걸까. 버스나 지하철에 올라탔을 때 마주하는 얼굴들의 대부분이 동성이 아닐 때 느끼는 본능적인 불안감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아무 일 없이 그저 한 공간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심장이 오들오들 떨리기도 한다는 걸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화장실에 들어가 맘 편히 손 씻고 나올 수 있기를, 비명감지기가 있다면 그것이 영원히 작동할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걸 바라야 한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게 씁쓸하다. 비명감지기가 있기 전에, 화장실에서 누군가 죽는 일이 없었다면. 약자만을 노려 덮치는 치졸한 계획범죄에 희생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

 기원을 곱씹다 보면 목 안에 모래가 와르르 들어찬 기분이 드는 발명은 오늘 이후로 다시는 발견하지 못하기를 나는 정성을 다해 바랐다. 한 가지 더 바랄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모든 바람이 과거형으로만 쓰일 수 있기를 바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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