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우유 Feb 07. 2022

똥 같지 않은 글로 나를 데려다줘

다시, 손으로 #01

똥 같지 않은 글로 나를 데려다줘



 강남역의 가배도라는 카페에서였다. ‘똥’이라는 얘기가 나올 줄 몰랐던 곳에서 ‘똥’이라는 워딩을 수차례 들으며 모두 한바탕 웃어버렸던 것은.

 양다솔 작가님이 일간, 격일 간 연재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특별한 일이라는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특히나 다른 사람과 겸업하지 않고 자기 이름만을 내걸고 무언가를 발행한다는 것의 대단함과 어마어마한 무게에 대해서. 늘 글을 보내기 전에 똥을 보내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보내게 되는데, 이 똥을 보내는 기분을 어떻게 지속하느냐, 어떻게 다음에도 또 똥을 보낼 걸 알면서 용기를 내서 계속 글을 쓰고 그것을 보내느냐고 (옆에 있는 이슬아 작가에게) 물었다고. 그때 이슬아 작가는 ‘나도 항상 똥 보낸다고 생각해’, 하고 대답했다고 했다. 이미 똥을 보내는 것 같은 마음을 수차례 겪어 와서 말하는 그 심정이 뭔지 너무도 알고 있다는 듯이. 곧이어 슬아 님은 이렇게 덧붙였다.


 “근데 그게 똥이라고 말하면 안 되는 걸 배웠어요, 저는. 왜냐면 독자님들은 그게 똥이라고 생각 안 할 수도 있으니까. (그게 똥이라는 건) 비밀이야!”


 이를테면 이런 것이었다. 본인은 아, 이거 너무 똥 같은데? 하고 보냈는데 그 글을 읽은 독자가 그 글에 너무나 탄복하고 감동했을 경우, 걷다 대고 실은 그거 똥이었는데요, 하면 실례라는 것이었다. 어딘가 부족해 보이고, 좀 똥 같은 걸 보낸다는 자괴감이 들지라도 그게 똥이라는 말은 속으로 삼키며 창작 활동을 지속하는 것. 나의 부족해 보이기만 하는 글에 감동할지도 모르는 독자를 향한 모종의 배려 같은 것으로서.


 일간이든 주간이든 연재 같은 것을 감히 시도해본 적은 없다. 회사에서 월간으로 내보내는 무언가가 있긴 하나 그건 관행적으로 굳어져 있는 어떤 패턴을 따라 갈겨지는 것이므로 연재한다는 숭고한 마음이 들 리는 없는 일. 입지도 행적도 소소한 사람으로서 내 이름을 걸고 연재를 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로만 느껴진다. 일간이든 격일 간이든 주간이든, 연재를 지속하는 사람들을 보며 경외감을 스쳐간 적도 여러 차례였다. 나의 이름만을 걸고 연재를 하는 글 들을 받겠다고 구독료를 내는 사람들을 갖는 일이란 어떤 기분이 드는 일일까. 자기만족으로 쓰는 글도 가끔 들춰 보면 뭐 이런 글을 썼나 싶어 부끄러운 마음이 왕왕 드는데, 무려 남의 돈을 받고 나의 수오지심과 싸워가며 내가 창작한 무언가를 보내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또 그 기분을 반복한다는 것은.......



 이번 주엔 반갑고 조금은 안 반가운 포스팅을 하나 보게 됐다. 이슬아 작가님이 한동안 쉬던 ‘일간 이슬아’ 연재를 재개한다는 소식이었다. 구독 경제에 갖다 바치는 비용이 월별로 묶어놓고 치보면 꽤나 크다는 것을 인식한 뒤로는 앞으로는 정말 구독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겠노라 결심했는데 소용없는 일이었다. 평정심이 그득한 얼굴로 타이핑을 하고 있는, 녹색 상의를 입은 슬아 님의 표정은 마치 ‘내가 똥을 하나 보낼 건데, 이건 님들한테는 똥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한 번 받아봐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월화수목금 매일매일 한 편의 글이 도착할 텐데, 스무 편의 글을 받는 데 1만 원이면 된다니 그 자체로 이미 합리적인 계산으로 느껴져 별다른 합리화마저 필요 없어 보였다.


 뒤이어 내 시선이 닿은 것은 사진 속 노트북을 경건하게 떠받치고 있는 목재 노트북 스탠드였는데, 호두나무 특유의 우아한 갈빛과 유려한 곡선에 시선을 뺏긴 나머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노트북 스탠드에 마음을 홀랑 뺏긴 채 곧 시작될 연재에 대한 기대감을 실어 올렸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슬아 님은 답장으로 정보를 알려주셨다.


 ‘우유짱 이 거치대는 Y 모 브랜드에서 해외 직구한 것이다. 비싸지만... 가장 사랑하는 가구이다!!!’


 찾아보니 과연 노트북 스탠드로는 생각해 본 적 없는 금액대였다. 구입하고서 엄마한테 가격을 슬그머니 일러주면 미쳤냐고 등짝을 맞을 것 같은 아름답고 값비싼 노트북 스탠드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나는 예감했다. 이 노트북 스탠드는 나의 셀프 새해 선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아름답고 대단한 물건으로,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슬아 님이 쓰는 것과 같은 노트북 스탠드로 노트북을 받치고 글을 쓰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글이 써질 것 같다는 생각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뭐 하고 있냐고? 이왕 비싼 거 사는 거, 쿨하게 질러버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못다 지운 경제인으로서의 얄팍한 양심으로 구글에서 할쿠*를 뒤지는 중이다. 어쩌면 똥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해 줄지도 모르는 아름다운 노트북 스탠드에게, 나는 초 단위로 가까워지고 있다.



* 할인 쿠폰. (줄임말을 너무 좋아하는 인간이라 죄송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