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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오리 Oct 31. 2022

3. 안녕하세요, 신규입니다

[8개월 태백살이]

 이른 새벽부터 눈이 번쩍 떠졌다. 첫 출근날이다. 미리 다려둔 정장을 꺼내 입고 공들여 화장을 했다. 거울 속 모습이 낯설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매일 같은 추리닝을 입고 도서관에 발도장을 찍었다. 그때의 기억이 어제 같은데 오늘은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직장인의 모습으로 서있다.

패션,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 CC BY


 대학 졸업 후 첫 출근을 하기까지, 참 오래도 기다렸다. 끝없는 터널에 갇힌 듯한 5년이었다. 3년간 기자 시험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낙방하고 공무원 시험으로 진로를 틀었다. 그 후 2년이 지나서야 수험생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공무원 신분이 되었다. 20대의 절반을 취업준비생으로 살면서 어깨는 점점 움츠러들었다. 매일 책상에 앉아 있어야 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남들 앞에 설 때마다 어디론가 숨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밝은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찍어도 움츠러든 어깨만은 숨길 수가 없었다.


함백산 정상_004, 유주영, 공유마당, CC BY




 아파트 비탈길을 걸어 내려가며 생각했다. '세상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 그 사실이 더없이 감격스러웠다. 움츠렸던 어깨가 쭉 펴지는 기분이었다. 비탈길에서는 태백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아무 연고도 없는 도시였지만 이제는 다르다. 눈 앞에 펼쳐진 이 소중한 도시를 위해 진심을 다해야겠다는 열의가 솟아올랐다. 도보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출근길 동안 긴장과 열정이 심장을 거세게 두드렸다.


직접 찍음, 아파트 비탈에서 내려다보이는 태백의 모습




 "뭘 하면 될까요?"


정신없이 바쁠 준비가 된 채로 계장님을 바라봤다. "이번주는 편하게 업무 홈페이지 좀 둘러보면서 적응하면 돼요." 이번 신규들은 일주일 출근 후 3주간 재택 교육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실무를 배워놔도 어차피 다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약간 김이 빠지기도 하고 긴장이 풀리며 안도감도 들었다.


 출근 첫 주는 그렇게 천천히 지나갔다. 낮에는 업무 홈페이지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퇴근하고 나면 동네를 탐색했다. 직원들과 밥을 먹으며 사람들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사무실도, 동네도, 회사 사람들도 점차 눈에 익었다. 어느덧 3주간의 재택 교육을 위해 본가로 올라갈 시간이었다. 금요일 퇴근길 동기에게 말했다. "나 벌써 정든거 같은데, 정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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