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착한 천사'
진화심리학은 인간 마음에 대한 연구에 “왜 그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진화론적인 방법으로 찾는다. 어떤 종류의 행동이든 계통발생 수준, 적응과 기능에 대한 수준, 발생의 수준 등 진화적 기원을 더듬으며 인간을 하나의 생명 종으로 통찰한다.
우리인간을 진화라는 거대한 스펙트럼 안에 놓인 유전자 뭉치로서 생각하면, 인간개체가 태어나기 한참 전 과거로부터 아직 도래하기에 먼 미래로까지 사고를 확장할 수 있다. 이것이 진화심리학이 우리에게 주는 사유의 즐거움, 상상력의 달콤한 제안이 아닐까.
진화심리학자 중에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석학으로 스티븐 핑커가 있다. 그는 2011년 아주 ‘그럴듯한’ 책 한권으로 우리의 사고를 뒤흔들었다.『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한국 번역은 2014년)
의외로 그의 주장은 심플하다. “인간의 폭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줄어들었고 우리는 평화를 시대를 살고 있으며, 이 흐름은 진화의 방향이 될 것이다.” 참 낙관적이며 희망적인 핑크빛 전망 아닌가. 핑커가 내린 인간의 중간 성적표는 그간 학자들의 점수보다 좀 후한 거 같다. 그 근거는 이러하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한 표현형으로 내면에 천사의 날개를 부착하였다. 핑커가 말하는 4개의 착한 날개로는 감정이입, 자기통제, 도덕감각, 이성의 능력 등이 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지는 않지만, 이 네 개의 착한 날개로 협동과 이타성을 추구하도록 동기화된다.
만약 인간이 선천적으로 선하다면, 이러한 날개는 필요치 않았을 터, 핑커는 근본적으로 성악설을 취하고 있다. 악의 특성은 공격을 지향한다. 내면의 악마가 일으킨 폭력의 얼굴을 보면, 5가지가 있다.
첫 번째 포식적 폭력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실용적 수단으로 동원되는 도구적 폭력이다. 두 번째 우세 경쟁은 권위나 명예를 걸고 벌이는 공격성으로 인종, 민족, 종교, 국가 간의 패권 경쟁으로 나타난다. 세 번째 복수심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정의감, 도덕심의 발로로 자행된다. 네 번째 가학성은 타인의 괴로움이 나의 즐거움이 되는 원초적 악의 습성이다. 마지막으로 이데올로기는 공유된 신념으로 편을 먹고 다른 편을 제거하려는 행위이다.
우리 인간은 4개의 착한 날개로 내면의 다섯 가지 악마적 습성들을 길들여왔다. 그 결과로 무정부주의적 수렵채집 시대의 범죄율보다 현재의 민주 국가 시대의 범죄율이 현저히 낮아졌다. 토머스 홉스의 주장처럼 자연상태는 ‘만인을 위한 만인의 투쟁’으로 전쟁이 불가피하기에 이를 막기 위해 인간들은 국가 체제를 만들고 사회질서를 유지해온 것이다. 국가는 감시와 처벌로서 범죄자와 정신병자를 사회와 격리시키고 범죄예방을 위해 곳곳에 CCTV를 설치하며 보다 안녕한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핑커는 말한다. 현재는 평화의 시대이고, 그것을 우리들이 좀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는 인간의 폭력을 먼 산에서 벌어지는 눈사태를 보듯, 그것도 따뜻한 카페에서 관망하듯, 사뭇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미디어의 발달로 연일 흉흉한 살인사건들이 보도되며 정치인 경제인들의 비리 혐의는 속속 드러나고, 심지어 국가 폭력의 폐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또한, 사이버 세상의 범죄는 그 가짓수를 늘여가고 있다. 인터넷이 생기기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음란물유통, 언어폭력과 명예훼손, 사기 사건들이 자행되고 있다.
폭력사건이 감소했듯이 인간의 폭력성도 줄어든 것일까? 피한방울 흘리지 않는 정신적 폭력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정신적 폭력도 폭력 아닌가?
핑커의 낙관적 생각에 자꾸만 의문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데이터 상으로 보면 폭력이 줄어든 평화의 시대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고 감사(?)하며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가 없는 거 같다. 자식 열 명을 낳았지만 겨우 한 둘만 살아남았던 시대와 달리 우리는 경제사회적 조건을 고려해 겨우 한 둘을 애지중지하며 키우는 사회를 살고 있다.
이제 폭력과 위협에 대한 역치를 비교해보자. 우리는 과거의 사람들보다 폭력에 대해 더 민감하게 느끼지 않을까? 제도가 뒷받침되어 안전할 거라 기대했는데 테러사건이 일어났다면? 그 충격은 더욱 클 것이다. 또한 문명사회일수록 도덕률이 높다는 것도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다.
독자로서 나도 ‘그럴듯한’ 가설 하나를 세워본다. 폭력이 줄어들수록 폭력에 대한 역치도 줄어들고, 그래서 인간은 더 안전해졌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어쩌면 우리는 ‘언제나 이곳은 안전하지 않다’는 위기감을 지닌 종의 특성을 가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안전한 곳을 꿈꾸고 추구하는 원동력을 지닌 존재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