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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Cumi May 01. 2020

한 동안 쓰지 않았다고 쓰는 일기를 쓴 적이 있는가?

소설의 주인공을 생각하는 과학자를 따라가 보았다

독서의 특별한 재미 중의 하나는 책과 책이 연결되어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이다. 내가 읽고 있는 책에서 예전에 읽은 책이 거론되며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때, 그 페이지의 내용은 설사 별 것 아닌 것이라 할지라도 몇 곱절의 강한 인상을 남긴다. 더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과 인물이 만날 때는 혼자서 흠씬 환상적이다. 이 맛에 독서하지...!  마음의 종이 울리는 시간. 책과 내가 공명 하는 순간이다.


오늘의 발견은 아주 작지만 소중한 문장이 있어서, 전혀 안 어울리는 인물들의 이야기라서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한명은 러시아 소설가 니콜라이 고골리의 ‘외투’ (Shinel, 1842년 작)의 주인공, 또 한 명은 러시아의 과학자 알렉산드로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세프(Aleksandr Alecsandrovich Lyubishev, 1894~1972)이다. 나는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세프>란 책을 읽고 있었는데,  류비세프는 자신이 <외투>의 주인공과 참으로 닮았다고 쓰고 있었다. 그런데, <외투>의 주인공은 정말이지 과학자와 닮기 어려운 타입의,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련하고 슬픈 영혼으로 여기질 수도 있는 인물이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바시마치킨' 먼저, 이름부터 좌충우돌, 우여곡절, 지질이 궁상 스러워서, 그의 정체성, 외모, 성격 그리고 영혼까지 나타내주는 거 같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바시마치킨’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바시마치킨’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바시마치킨’

이렇게 세 번 이름을 부르면 한 많은 누군가 나올 것 같지 않은가?


 ( 참고로, 러시아 사람 이름은 일정한 패턴이 있는데, 이름+부칭+성 순서라고 한다. 부칭이란  '~의 아들' 또는 '~의 딸'이란 의미를 갖는다. 즉, 외투의 주인공은 아카키의 아들 ‘아카키 바시마치킨’ 이고, 결국 아빠와 이름이 같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러시아 소설을 읽을 때 정말 혼동 되는 게 아버지와 아들 이름이 대부분 겹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카라조프 형제 의 아빠 이름은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 이고 장남은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 이다. 이렇게 부칭이 중간에 들어가는 문화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기원된 인류의 부계사회적 특징으로 보인다.) 


우리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바시마치킨’는 누구인가? 

언제나 저 구석 그 자리에서 일하는 9급 하급 관리. 평범, 무난 그리고 성실하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작은 키, 빨간 얼굴, 희미한 시력, 게다가 오랜 책상 업무로 인한 치질까지 겸비한(?) 그는 적은 보수에도 만족하며 돈 쪼개 쓰기의 신공을 보여준다. 촛불 켜지 않고 살기, 속옷 세탁 줄이기, 신발 닳지 않게 걷기 등등.  


그렇게 1년간 모은 돈으로 드디어 새 외투 장만에 성공한다. 이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칼 바람도 두렵지 않다! 아카키는 정말  ‘옷이 날개’인 듯 행복감에 푹 빠진다. 그에게 외투는  ‘마치 결혼이라도 한 것 같은, 인생의 반려자를 만난 것과 버금가는 두툼한 행복’, 그 자체였다. 


 관청 동료들은 외투 신고식을 하라며 아카키에게 부담을 주는데, 이때 과장이 자기 집에서 축하파티를 해주겠다고 나선다. 상관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아카키는 그 축하파티에 참석하게 되고 돌아오는 길, 변을 당하고 만다. 강도들에게 자신의 아내와 같은 외투를 뺏긴 것이다! 그 후 그는  경찰서장, 고위간부 등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힘들게 수소문해 찾아가 외투 강도를 잡아달라고 간절히 간청을 하는데, 단 0.1%의 소통이나 공감도 얻지 못하고, 내동댕이쳐진다. 그토록 분란을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는 조용한 사람이지만,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절실하게 온갖 수단을 다해 외치며 삶에 매달리는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전혀 이해받지 못하고 무시당했을 때, 외투를 잃은 상실과 슬픔보다 더 깊은 절망에 빠진다. 아카키는 갑작스런 열병으로 숨을 멈춘다. 그 후, 죽어서도 아카키는 거리를 배회한다. 외투를 탐하는 유령으로... 


" 그런데 유령은 전보다 키도 훨씬 큰 데다 위엄 있어 보이는 콧수염까지 기르고 있었다. 오부호프 다리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가 싶더니 그는 밤의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

(외투, 96p,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중, 니콜라이 고골, 조주관 번역, 민음사 )


 <외투>를 읽은 독자들은 대부분 그의 처지에 대한 애처로움을 느끼며, 부패한 상류층의 비인간적인 행동에 분노한다. 아카키는 보호받지 못하고 소외된 계층의 상징이며, 작가 고골리는 이 소설을 통해 고통받는 하층민에 대한 동정을, 위선적인 억압자에 대한 항의을 담아냈다고 해석한다. 아주 자연스런 감상이다. 하지만, 이런 책읽기의 방향은 작품의 작의를 파악하고 해석하게 하는 교육의 영향일 수도 있다. 우리는 국어시간에 작품의 주제가 뭔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에 대해 말하도록 훈련받지 않았나? 


가끔은  이러한 책읽기가 참으로 교과서적이라, 마치 정답을 찾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책을 읽고 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게 조금은 지겹기도 한 대다, 독서에 정답이 어딨냐, 우리가 작의만 느끼면 되는 걸까? 다른 것을 느끼면 안되나? 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소설가들이 새로운 문체를 고민하며 종종 실험적 글쓰기도 하듯이 독자들도 새로운, 혹은 어쩌면 엉뚱한 글 읽기(리터러시) 방식을 구사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작품의 주제와 상관없는 부분에 꽂힐 때가 있는데, 그렇게 꽃힌 인상적인 부분은 더 편애하게 되는 거 같다. 예를 들어 나는 <외투>의 주인공 '아카키'가 불쌍하고 무능력하고 나약한 존재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외투를 잃고 난 아카키는  완전 딴 사람이 된다. 평소의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모습을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온 수단을 동원하여 외투를 찾으려 노력하였다. 죽어서도 '위엄있는 콧수염이 있는' 유령이 되었다. 즉, 죽을 때까지 노력한 것이다.  유령이 되어선  그 못된 고위간부의 외투를 강탈해 복수에 성공하기까지 한다. 슬픈, 하지만 통쾌한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로 알려진 러시아 과학자, 류비셰프 또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바시마치킨’를 그저 불쌍하고 억울한 하급 관리로 보지 않고, 자신과 비슷한 면이 많은 친근한 캐릭터로 인식하고 있다. 


 나는 고골리의 소설 주인공인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와 비슷하다. 그는 자신의 직업인 문서 정서를 매우 좋아했는데 나도 학문 연구 도중에 틈틈이 알게 되는 새로운 정보들을 베껴 쓰는 일을 좋아한다. 게다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낙관주의 때문인지 애초부터 책으로 출판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자료를 베껴 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매우 꼼꼼하게 요점정리를 해두는데 아직까지도 여전히 이런 작업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 결과 지금은 엄청난 자료를 보유하게 되었다. ” 

(시간을 정복한 남자, 67P.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조금선 옮김, 황소자리 ) 


 그렇다. 아카키의 업무는 서류를 필사하는 ‘필경사’였다. 필경사 하면, ‘바틀비’ 란 이름이 번뜩 떠오를 것이다. 필경사 바틀비(허먼 멜빌, 1853년 작) 속에서 바틀비는 “일을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 do )고 말하며 저항하지만, 아카키는 그와 정반대의 캐릭터다. 그는 서류를 깨끗이 필사하는 일에 몰두하며 성실히 수행한다. 엄청 심혈을 기울인다. 심지어 다른 일을 시키면 싫어한다. 단순 노동에 심취하는 것을 고골리는 약간 코믹한 터치로 묘사하기도 했지만, 그 대목을 읽은 독자, '류비셰프'는 거기에 완전 꽂힌 것 같다. ’그대로 베껴 쓰기를 좋아하는 아카키는 나와 비슷한 캐릭터군! 나도 그 기쁨을 좀 알지‘하면서, 무언가 베껴 쓸 때마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바시마치킨’를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류비셰프가 <외투>의 주인공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이 페이지는 내게 정말 특별하게 와 닿았다. 저 밑에서 불쌍하게만 취급받던 아카키가 훌륭한 과학자 류비셰프와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자기 자리에 앉게 된 것 같았다. 늘 그 자리에 앉아서 말끔히 무언가를 베껴 쓰는 아카키와 류비셰프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류비셰프에게) 문학이 그의 특별한 취미였을까? 전혀 아니었다. 문학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필요한 지식이었고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는 문학을 연구하고자 작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예술을 소비하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읽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꼼꼼히 분석해야만 직성이 풀렸던 것이다. (중략)

 한 편지에서 그는 실러( 독일의 극작가, 시인, 문학이론가) 의 <마리아 슈튜아르트>와 <오클레앙의 처녀>를 인용하고 있다. 문장을 인용하는 데서 출발했다가 결국은 한 장면 전체를 다 쓰고 말았다. 좋아하는 문장을 옮겨 쓴다는 즐거움에 빠져 정신없이 몰두하게 된 것이리라. (같은 책, 112p)


 류비셰프는 자신만의 최적화된 시간 계획표를 짜고 하루하루 실천에 성공한 인물로  ‘시간을 정복한 남자’의 타이틀을 얻기까지 했다. 경영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피터 드러커'를 비롯 많은 내로라하는 석학들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다. 단 일분일초도 허투루 쓰지 않았던 그가 단순히 ‘좋아하는 문장 베껴 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그 만큼 이 일이 큰 기쁨이었고, 헛되지 않은 가치가 있음이 분명하다. 




또한 그가 단 하루도 빼먹지 않은 일이 있었으니 – 이런 건  빼먹지 말고 전해야한다 – 바로 일기 쓰기이다. 

그의 일기는 자신의 생각을 적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더 기능적으로는 초간단 레서피처럼 하루 시간의 지출 명세서였다. 예를 들어, 기본 과학 연구 도서색인 15분, 도브잔스키 저서읽기 1시간 15분, 곤충분류학 - 견학 2시간 30분, 그물 설치 15분, 곤충 분석 1시간 55분, 휴식으로 수영, 친구에게 편기쓰기 15분 등등. 


그는 자신의 업무를 첫 번째 부류, 두 번째 부류 등으로 나눠 각각 시간을 누적해서 계산하였다. 첫 번째 부류는 창의적이고 고난이도 업무인 곤충 분류학 연구 및 논문 집필 시간이고,  두 번째 부류는 학술보고, 강의, 각종 세미나, 문학 읽기 등이다. 하루하루 일기에 기록된 시간은 한 달간 집계되었고, 그 결과 완성된 일이 각각 얼마나 오랜 시간이 축적된 결과인지를 인식했다. 이런 방식으로 월별, 연별 시간 통계 기록들이 작성되었고, 몇 십년간 계속되어 운영되었다. 


 류비셰프의 계획표, 일기장 그리고 각종 메모들을 분석한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의 저자 ‘다닐 알렉사드로비치 그라닌’은 이러한 일기작성 및 시간통계작업 자체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과연 이처럼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매달, 매년 시간 통계를 낼 필요가 있었을까? 


 이 문제의 해답은 류비셰프의 일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월간 계획 및 연간계획을 짤 때, 과거의 시간 운영경험을 토대로 구체적 목표를 정한다고 밝혔다. 즉, 과거의 경험상 불가능한 것은 미래에도 허무맹랑한 것임을 인정하는 자세인 것이다. 자신이 한 달에 할 수 있는 업무의 분량, 이행 가능한 자신의 속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적용하며 이루어 나간 것이다. 그러니까, 매일 쓰는 일기는 자신의 업무 속도를 가늠할 수 있는 기본 작업으로서,  각각의 세부 업무들에게 투입된 소요시간을 측정하는 일이었다. 역시 과학자답다.


아마도 오늘 나는 확실히 일기쓰기를 시작할 것이다. 음... 한 동안 쓰지 않았다고 쓰는 일기를 쓸 것 같다. 

내가 신에게 받은 오늘이란 선물(present)을 어떻게 보냈는지, 항목별로 소요된 시간을 적어볼 것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글귀도 깨끗하게 필사 할 것이다. ‘아카키’와 ‘류비세프’처럼. 


무엇보다도 오늘의 일기가 ‘한 동안 쓰지 않았다며 쓰는 마지막 일기’가 되길 희망할 것이다. 매일 희망할 것이다.


" 나란 사람, 뭐하는데 정말 느리지만, 그 느린 속도를 매일 재고, 

그 느림을 기준으로 계획을 짜야지. 

멈추지 않는 게 다행이라 여길 정도로 느려도 말이다. 

하나씩 하나씩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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