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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Cumi Apr 25. 2020

도서관이 세상에 없다면?

<도서관의 말들>과 <심야 이동도서관> 에 있는 것 

 친구의 행동이 예뻐서 뽀뽀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 있을 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여러 차선을 만들고 있을 때, 횡단보도 앞에 서서 지나가는 차들이 지나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거처럼 생각들이 그냥 지나가길 내버려두면, 초록 신호등이 켜지듯 가장 예쁜 생각 하나 남아서, 나를 미소 짓게 할 때가 있다. 친구의 예쁜 행동은 우롱차처럼 우려서 하루 종일 기분 좋게 하는 상품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다. 우리 인간은 행복 호르몬이라는 도파민이 언제든 필요하기 때문이고, 더욱이 어떤 사람은 내면의 디폴트값이 좀 칙칙하고 슬프도록 설정되어, 맑고 화창한 분위기가 심리적으로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기쁨을 찾는 슬픈 사람 중 한명이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기쁨 중에는 ‘영감(inspiration)’이란, 톡 쏘는 순간이 있다.  


 영감이란, 뭐랄까, 아하 모멘트! ( Aha! Moment!) 

‘뜻밖의 에너지 선물’이랄까? 영감을 받으면 지금 당장! 발가벗었을지라도, 벌떡 일어나 뭔가 시작하니까 말이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책이 영감을 찾을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보물 덩어리기 때문이다. 또한 책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다보면, 책에서 받은 영감을 나눌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오늘의 뽀뽀해주고 싶은 친구의 행동도 후자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책잡히는 라디오 ‘독감’ 에는 한 달에 한번 마포중앙도서관의 사서님이 출연한다. 

얼마 전 ‘엄미향’ 사서님이 추천한 책 <도서관의 말들>은 여러 책들 속에서 도서관과 연관된 문장 100개를 소개하면서, 강민선 저자가 사서 업무를 하며 느낀 소소한 이야기를 엮은 흥미로운 책이었다. 그야말로 사서님이 소개하기에 가장 최적의 책이었다. 

이 책 속에서 <심야 이동도서관(The Night Bookmobile)>이란 그림책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자는 이 책에 대해서 어떤 아이가 “그거 끝에 너무 무서워요” 라고 했는지 “너무 슬퍼요”라고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어쩌면 그 기억 전체가 자신의 환각일 수도 있다면서, 하나의 수수께끼를 내듯 말한다.  


무서우면서도 슬픈 감정이 어떤 건지 궁금한 사람은 이 책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여러분에게는 어떤지, 무서운 이야기인지 슬픈 이야기인지 나도 참 궁금하니까.” (75p. 도서관의 말들, 유유)


 함께 라디오 진행하고 있는 친구는 이 문장을 읽고 벌떡 박차고 일어나 도서관으로 달려가 <심야 이동도서관>을 대출한 뒤, 라디오 녹음에 들고 나타났다. 의기양양하게 방송 중에 <심야의 이동도서관> 책을 소개해주었다. 사실 나도 이 문장을 읽고 ‘무서우면서도 슬픈 감정’이 뭘지 궁금해서 찾아보려했지만 코로나 19 때문에 도서관 대출은 사전 신청 수속을 밟고 그 신청이 처리되면 찾으러 가야하는 상황이다. 번거로워 관뒀다(물론 구매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도 게을렀다). 


 하지만 내 친구는 코로나 19 속에서 이 귀찮은 절차를 뚫고 이 책을 손안에 쥔 것이다. 이런 멋진! 나는 친구의 적극성이 좋다. 이런 친구의 바지런한 에너지 덕분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좋은 영감을 얻게 되는가?! 나 또한 친구의 예쁜 행동에 대답하듯 <심야의 이동도서관>을 읽었다.


 <심야 이동도서관>은 보통의 그림책이 아니다. 어린이를 위한 총천연색 판타지라기보다, 어른을 위한 조금은 다크한, 내면적 성찰을 형상화한 이야기다. 먼저 저자가 굉장히 유명한 미국 소설가란 점이 눈에 띄었다. 오드리 니페네거(Audrey Niffenegger). 데뷔작으로 <시간 여행자의 아내>를 낸 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행운아. 시카고의 컬럼비아 컬리지 문예창착과 교수로 재직하기도 한 교육자이면서 미술을 전공한 화가이기도 했다. 이야기꾼에 그림까지 잘 그리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그림 소설(novel in picture)’이란 형식에 도전했는데, 그 결과가 바로 이 책 <심야 이동 도서관>이다. 


오픈쇼 사서님이 알렉산드라에게 명험을 건넨다.


 여자 주인공 알레산드라는 남친과 싸운 어느 날 새벽 네 시, 텅 빈 거리에서 캠핑카 한 대를 우연히 발견한다. 그 속엔 책들로 가득했고, 운전석에는 ‘심야 이동 도서관’의 사서 로버트 오픈쇼가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 워낙 책을 좋아하는 알렉산드라는 서가를 꼼꼼히 살피는데, 그 책들 모두가 자신과 관련된, 자신이 전부 혹은 한 줄이라도 읽었던 것들이 아닌가? 결정적으로 서가엔 자신의 일기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즈음 밖은 환해지고, 오픈쇼 사서님은 알렉산드라의 일기장을 다시 서가에 꽂으면서 도서관 폐관을 알린다. 


 그 후 알렉산드라의 삶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그녀는 자신의 이동도서관에 꽂고 싶은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한번 만났지만 강렬하게 포근했던 오픈쇼 사서님을 언제나 매순간 의식했다. 그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혹은 그가 자신의 서가를 정리하며 흐뭇할 수 있도록, 훌륭한 책들에 탐닉했다. 그러면서 아주 간절히 다시 심야 이동도서관을 만나기를 바랐다. 


 9년 후, 알렉산드라는 우연히 자신의 이동도서관을 발견한다. 여전히 신사적인 오픈쇼 사서님. 


“오늘 밤 서가를 둘러보시렵니까? 저번에 오신 뒤로 훌륭한 책들이 추가됐더군요” (심야 이동도서관. 이숲, 오드리 니페네거, 권예리 옮김. 이 책엔 페이지가 없다) 


알렉산드라는 밤새도록 서가를 거닐며, 그 속에서 위안을 얻었다. 하지만 동이 트고 있었고, 그녀는 오픈쇼 사서님께 간곡히 이렇게 부탁했다.


“저도 여기서 일하고 싶어요. 선생님 일을 도우면 어떨까요?

“아쉽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사려 깊은 제안은 고맙지만요,”


“부탁이에요. 꼭 여기서 사서로 일하고 싶어요” 

“알렉산드라씨, 이 도서관에서 일하실 수 없어요. 하지만 일반 사서가 되실 수는 있겠죠”


그 후 알렉산드라는 문헌정보학 공부를 시작해 사서가 되었고, 시카고 공립도서관 중 하나인 설처도서관의 관장이 되었다. 어느 11월 말의 음산한 밤, 잊고 지내고 있는 친구가 갑자기 나타나듯 심야 이동도서관이 서있었다. 여전히 다정한 오픈쇼 사서님, 여전히 이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은 알렉산드라...


“여기서 선생님과 함께 일하고 싶어요”

“도서관에 오시면 참 좋겠지만, 규정에 어긋나서 어쩔 수가 없군요”


그 다음 이야기는?  그 ‘무서우면서도 슬픈’ 감정을 자아내는 결말로 가는 사다리다, 내리막으로...

“여기서 내가 결말을 말 안하면, 여러분이 실망하시겠지... ”


이 책은 그림과 글이 결합된 소설이라 언어로 설명되기 힘든 면 투성이다. 그 엉켜있는 뉴앙스를 풀자면 원작자 오드리 니페네거를 데려와 취조를 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해될 수 있는 디테일한 서술을 포기하고, 기자처럼 간결하게 리포트하기로 한다. 

(감상에 방해를 끼친다면 죄송하다, 하지만 독자들의 알권리를 존중하며 쓴다) 


 집으로 돌아온 알렉산드라는 자살을 한다. 사후 세계에는 거대한 도서관이 있었다. 오픈쇼 사서님은 알렉산드라에게 그녀의 도서관이 처분되었다는 사실을 전한다. 도서관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므로. 대신 알렉산드라가 담당할 꼬마 이용자를 소개하며, 오늘 혼자 처음으로 읽은 첫 책을 전달한다. 알렉산드라는 새 캠핑카의 텅 빈 책장에 책을 꽂았다.


“ 이렇게 해서 나는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 ( the end ) 


 이 결말로 ‘무서우면서도 슬픈’ 감정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을까? 무엇이 무섭고 어떤 점에서 슬픈가. 

그런 해석보다는 더 복잡한데, 뭐라 해야할지... 책 문을 닫고 한참을 고민했다. 뭔가 수습이 안됬다. 그러다 ‘아쉽지만 희망차다’ 란 감정이 차올랐다.  알렉산드라는 목숨까지 희생하면서 자신의 꿈을 이뤘으니, 화려하고 방대한 자신의 도서관을 허물고 작은 책 한권 들어온 이동 도서관에서 사서로 새 출발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 무서우면서도 슬프고, 아쉬우면서 희망찬 감정이 어떤 건지 궁금한 사람은 이 책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이야기로 읽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니까 ”


 물론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실수도 있다. 문학적 메시지는 읽는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주되고, 우리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멜로디를 캐치하면 된다. 그렇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에 대한 공통적인 느낌은 '같이' 공유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마음속에 도서관 하나 짓고 싶어 한다는 것, 그 사서는 오픈쇼처럼 다정하고 따뜻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그를 만나면, “훌륭한 책들을 많이 읽었더군요” 라고 인정받고 싶다는 것. 그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어휴 다 기억하진 못하지요” 



 이탈리아 시인 체사레 파베세(Cesare Pavese)가 이렇게 말했다죠. 

“우리는 시절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들을 기억한다. 삶의 풍요는 우리가 잊은 기억들에 있다(We do not remember days, we remember moments. The richness of life lies in memories we have forgotten.)"


 나는 여기에 

 ‘도서관에는 우리가 잊는 기억들의 풍요로움이 있다’(Libraries have the richness of memories we have forgotten)"고 덧붙이고 싶다. 


세상에 도서관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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