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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Jul 02. 2024

배우를 배우이게 하는 것

배우가 될 때까지 1 : 감각적 경험과 배우로서의 꿈


06.29. 토


나는 '배우가 될 때까지'라는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과연 요선이가 배우가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배우 지망생들이 배우가 되는 과정을 기록하는 작업이다. 너도 배우이고, 나도 배우이고, 우리 모두 배우야!라는 우리들끼리 하는 말 말고, 정말로 캐스팅되는 배우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배우를 배우이게 하는 조건은 무엇인지, 그것들을 우리가 충족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이판사판의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에 응하는 중이다. 


OT 개념의 첫날, 우리는 생생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독백을 하나씩 준비해서 했고,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 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었다.


여름



1-1. 아주 생생하게 즉각적으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나는 올해 4월에 혼자 했던 남해에서의 산책 이야기를 했다. 너무 혼자 있고 싶어서 갔던 여행인데 단 한 번도 혼자인 것 같지가 않아서 괴로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니, 어떻게, 아직까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지?


나조차 너무 징글징글해서 지겨웠던 기억이다. 아직도 '너'랑 있는 것 같았다. 진짜로 '너'가 옆에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나를 징글징글해하면서 동시에 이 이야기도 나중에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가 가능하다고 은연중에 당연히 생각하는 것도 너무나 이상해서 이 순간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1-2. 독백에서 내가 한 것


나는 이때의 경험이 담아 쓴 시를 읽고 그다음에 독백을 했다. 그 시를 잘 썼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시를 보고 "어떤 시는 글쓴이를 위해 존재하기도 하는데 이 시가 그런 것 같다"는 코멘트가 마음에 들어서 아끼는 시이다. 정말로 그런 것 같다. 


시는 당연히 조금 유치하고, 조금 이상한 방식으로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래서 그것들을 즉흥적으로 고치면서 읽었다. 


그리고 독백을 시작했다. 원래는 혼자 하는 말이었고, 그러다 '너'에게 하는 말로 바뀌는 문장이었는데 눈앞에 있는 '선생님'에게 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그냥 그 순간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너가 옆에 있는 것 같았다'라는 문장이 '그 친구가 옆에 있는 것 같았다'로 바뀌게 되었다.


내가 그것들을 즉흥적으로 바꾼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다. 어떤 부끄러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떤 빈자리는 빈자리인 채로 두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



1-3.  또 생각나는 것들


이번 독백에서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할머니에 대한 장면들이 많이 생각난다. 설탕물에 말아먹는 국수, 뭉툭하고 못생긴 김밥, 할머니가 해준 털이 숭숭 달린 족발과 진짜로 찌이인한 딸기잼, 밤에 혼자 화장실 가기 무서워서 할머니를 깨우는 장면, 해남을 떠나던 날 손을 흔들던 할머니의 모습. 




한 여름에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발표 중인 M


2.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배우가 되고 싶긴 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ㅋㅋ

잘 모르겠어서 이번 기회에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어렴풋하게는 내 껄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그런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조금 부끄럽다.




3. 질문받은 것들


3-1. 빈자리는 빈자리인 채로 두어야 한다는 걸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일종의 체념임과 동시에 해방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또 나의 진짜 빈자리는 '아빠'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3-2. 혼자라는 말이 계속해서 나오는데 그건 본인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나?


'혼자 남겨졌다'라는 문장이 떠오른다고 하니 그건 어떤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외로운지, 그래서 홀가분한지. 외롭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하다는 말은 크게 의미가 없다. 나는 곧바로 대답을 하진 못했다. 외롭다는 말은 뭔가 수동적인 느낌이 들고,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공허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혼자 남겨졌으니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냐는 질문도 받았다.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근원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나에게 익숙한 감정은 공허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3-3. 내 껄 하고 싶은데 배우를 하겠다는 건, 어쩌면 뭔가를 포기하는 과정이지 않을까?


이건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답했다. '같이' '내 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쨌든 나는 계속 글을 쓸 계획이다.



술 처먹고 쥐럴하는 중 (이제 이 개쥐랄도 그만해야지 다짐 돌림노래)


4.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다고 믿어지는 순간


씩씩하고 밝은 H가 첫 빠따로 독백을 발표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를 둘러싸 앉았고, 카메라가 찍었다. 조용한 순간이다. 촬영 때는 에어컨도 냉장고도 끄곤 하니까 정말로 고요하다. (이 작업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배우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린다. 나는 그 순간을 정말로 좋아한다. 


뭔가가 시작될 것 같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느꼈다.


씩씩하고 자기 이야기도 요목조목 아주 잘 말하는 H가 연신 부끄러워하는 걸 보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은 너무 귀엽고 아기자기한 기억이었는데도 그냥 눈물이 났다. 긴장하고 얼어있는 그 친구를 위해 우리가 좀 더 가까이 가기로 했다.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조성해주기로. 나는 속으로 응원했다. 더! 귀엽게 말하란 말이야! 그럴 수 있잖아!!!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때, 그중에서도 정말로 자신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꺼낼 때. 그때 자신만만해하는 사람을 아직까진 본 적이 없다. 확신에 찬 사람도 보지 못했다. 모두들 부끄러워하고 쑥스러워한다. 수치스러워할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잘 전달하고 싶기에 용기를 내보는 것도 같다. 나는 그런 순간을 목격할 때마다, 그때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다는 말이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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