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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Jan 03. 2024

기대하는 법을 배우기

31살~33살 플렉서블한 나이 여자의 2023 회고 & 2024 소망


지난 3년은 언젠가 한 번쯤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모두 일어난 시간이었다.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커리어

어쩌다 HR로 커리어를 시작했기 때문에 한 10년 뒤에나 갈 수 있지 않을까 꿈꾸었던 업계의 포지션으로 오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회사 다니기 시작한 게 29살인데 스톡옵션 제하고는 사회초년생 연봉을 받았기 때문에 한 7-8년 뒤쯤에야 받으리라 예상한 연봉도 받게 되었다.

이직 시 연봉을 파격적으로 올려주던 스타트업 호황기 흐름을 잘 탔기 때문에 가능했다. 계약 연봉 기준으로 40% 상향 이동을 했던 게 결정적이었고 그 뒤 연봉협상에서도 20%가 올랐다. 그 다음 또 원하는 이직을 했고. 그래서  나는 현재 내 보상에 만족한다. 물론 인센티브 50%까지도 터진다는 대기업 기준으로 보면 낮겠지만!그리고 스톡옵션 엑싯한 사람들 보면 어차피 모듀...의미 없다...ㅎ  


2. 예술 작업

하나둘 영화제에 가는 친구들을 보면 당연히 부러웠다. 나는 언제쯤 영화제에 가볼까. 갈 수는 있을까. 영화제는 차치하고 학생 단편 영화 오디션에도 500명이 몰리는데. 그런데 어찌어찌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 가게 되었다. 공동 집필로 책도 한 권 출간하게 되었다.

특이한 건 영화와 책 모두 나의 지난 이야기가 반영된, 내가 개입한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불우했던 10대와 방황했던 20대를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는 건 정말이지 행운이라 생각한다.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건 정말 엄청난 권력이라고도 생각한다. 덕분에 나는 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리라 마음먹을 수 있게 되었다.


3. 10년 치 놀기

나는 장기 연애 경험자이고 그 기간이 자그마치 10년이다. 그러다 보니 20대 내내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 시장에서의 법칙(?)도 몰랐다. 뒤늦게 뛰어들어서 정말로 10년 치를 1년 6개월 만에 클리어했다. 사실 1년 만에 질렸는데 악으로 깡으로 6개월을 더 놀았다. 그게 자유로운 거라고 당시에는 생각했다. "그래, 이제 너도 좀 놀아라!"라는 소리를 듣다가 "와, 그런다고 진짜로 이렇게까지 논다고?"까지 갔다ㅎㅎㅎ

놀아보니(?) 사실 나는 잘 놀지도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엄청난 비극이라 생각한다. 완전히 술에 취해야지만, 그러니까 자기 검열하지 않는 완전히 다른 자아가 나와야지만 놀 수 있다. 재미있게 논 게 아니라 빨리 취하려고 진 토닉 5잔을 연달아 마시면서 놀았다는 게 좀 후회된다.

또 놀다가 알게 된 점이 하나 더 있는데 내 마음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내가 상대에게 호감이 있는지를 진심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남이 괜찮다고 해야 '정말로' 괜찮아 보인다. 또 상대가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에만 집착한다. 상대가 나에게 호감이 없어 보여야지만 관심이 생긴다. 덕분에 무수히 많은 지랄을 했다.

그래도 귀여운 친구들 만났으니까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나는 이제 이 지랄 맞은 나의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내가 정말로 관심이 생기는 사람은 누구인지를 찬찬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4. 30대


많은 사람들이 30대 여자를 미워하는 것 같다. (유튜브 댓글, 블라인드 등을 보라! 익명성에 기댄 과장된 여론이라고들 하지만 글쎄...) 또 여자의 성취는 젊음과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은 것 같다. 나보다 10살이나 어린데다 열심히 살고 있는 여자 친구들이 여전히 그런 이야기하는 걸 볼 때마다, 진화심리학이 어쩌느니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 역시 나만 현실 감각이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설령 그렇더라도 과거가 아닌 미래로 가는 쪽을 택하련다.

게다가 나는 3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내 인생이 시작되었다 느끼기에 나의 30대가 정말로 좋다. 물론 한 해 한 해 나이 들어가면서 무언가 시들해진다는 느낌도 받는다. 비단 외모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생기, 호기심, 기대감 이런 것들까지 시들어 간다. 젊음이라는 건 그런 것들의 통칭인 것 같고, 그렇다면 나는 점점 젊음을 잃어가고 있는 것도 맞다.

그렇지만 내가 이제까지 방황하고 노력하고 버텨서 나름대로 일구어놓은 커리어, 경험, 관계 같은 것들이 있기에 현재의 내 모습에 어느 정도 만족한다. 내가 나를 이렇게 고평가 한 적은 내 인생에서 처음이다!

물론 여전히 부족한 점 많다. 특히나 이제는 부사수, 인턴 친구들, 동생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내가 그들을 매니징 해주기도 해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점점 책임 져야 하는 상황들도 만나게 되는데 우물쭈물 거리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 중이다.


5. 혼자 있는 시간

인생 처음으로 혼자 있어 보는 중이다. 홀로 완벽하게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내려둔 채로.





그러고 보니 지난 3년간 나는 원하는 걸 다 이뤘다(?)

왜냐하면 내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IR 하러 오신 어떤 분께서 '실패했던 투자는 무엇이 문제였다고 생각하시느냐’고 션(대표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션은 "우리는 앞단계 투자를 하기 때문에 더더욱 무조건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지금 잘 안 됐다고 해서 실패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중간에 피봇팅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유일한 문제는 그 회사가 어디까지 갈 수 있으리라 단정짓는 우리 상상력의 한계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나는 이 말이 정말 인상 깊었다.


신년을 맞아 이렇게 저렇게 하면 어떤 점이 개선될 것 같다고 말하는 내게 그런 거 말고, 야심 찬 목표를 세웠으면 좋겠다고 그래야 큰 성장이 있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베키(내 영문 이름쓰)가 본인은 해보지 못한 것들까지 하기를 바라지, 자신이 경험했던 걸 그대로 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물론 그렇다고 (예를 들어) 연봉 10억 받고 싶다고, 넷플릭스 작품 주연 되겠다고 꿈꾸기만 하면 다 된다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성장하려면 야심 찬 목표를 세워야 하는 것도 맞다.



그래서 나의 야심 찬(?) 올해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내가 보아도 나를 준비된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일단은 말이쥐.



1. 일상의 루틴 만들기

수면 시간, 운동 시간, 공부 시간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플래너와 일기장과 10년 일기장을 잘 활용해 볼 계획이다.


2. 몸과 마음의 건강

심리 상담을 꾸준히 받고 이를 잘 정리한다.

주 3회 이상 운동하고 건강을 위해서도 체중 감량에 다시 도전한다. 최종적으로는 15kg 감량이 목표이닷 ㅎㅎ


3. 책임감 가지기

월 300만 원 이상 저축한다.

회사에서 맡은 일을 책임진다. 2년 이내에 유의미한 성과를 낸다. 주니어 분들 케어도 해야 한다.

연기 공부와 작업에 최선을 다한다. 최선을 다하지 못할 것 같으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다.





4. 정돈, 절제

내가 가진 유일한 것들인 옷과 책을 정리한다. 안 입는 옷들, 안 읽는 책들 꼭 정리하고 만다.

1년간 (적어도) 새 옷은 사지 않는다. 이미 나에게는 충분히 많은 옷이 있고, 쇼핑을 하는 게 모든 면에서 별로 좋지 않고, 특히나 정신건강에 안 좋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실제로 작년에 갑자기 명품을 사댔는데 그때 정신 건강이 제일 안 좋았다.

'관리'하는 것도 그만둘 예정이다. 원래도 자주 가는 편은 아니었지만 피부과, 네일숍은 아예 끊었고 미용실도 안 가려고 한다.

묶음으로 사야 싸다는 강박 때문에 냉장고에 음식물을 쟁여놓는 것도 그만.

습관적인 배달 음식과 택시 타기도 그만!


5. '먼저' 사랑하는 사람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로 해본다. 기대하는 법도 배워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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