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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Oct 28. 2022

살면서 그런 방식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거든요

친구로부터 추천을 받은 심리 상담 선생님께 연락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꽤 쌀쌀한 가을날이었다. 나는 꽤 좋은 상태였다. 좋은 일로 좋은 곳에 초대를 받고 휴가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출연한 단편 영화가 정식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부산에 놀러 온 참이었다. 커피를 한 잔 들고,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야외 자리에 앉았다. 약속한 시간에 전화했다.


"무슨 이유 때문에 심리 상담을 받으려고 하실까요?"


선생님의 말투는 따뜻하고 조심스러웠다. 나는 꽤나 또박또박 답변했다. 약간 주눅은  채로. 평소에는 손짓 발짓을  해가며, 아주 크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이럴 때면  이렇게 된다.   찾아간 정신과에서 느꼈다. 그래서 그런지 어딘가 모자라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주술 호응에 신경 쓰고 두괄식으로 말하는데 스타트업 문어체를 구어로 하고 있어 어딘가 어색하다. 그냥   생각하고   아니라 꽤나 오랫동안 고민해온 나의 역사가 드러나는  덤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왜 이상하다는 말을 듣는다고 생각하세요?"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다음에 뭘 하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주변에서 이상하다고 하는 것 같아요"

"그 이유는 뭐예요? 요선 씨가 예측이 불가능한 이유?"

"일단 충동적이고요. 계획대로 뭔가를 차근차근하지 않는 성격이에요."

"충동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요?"

"음... 그건 말이에요."


주어진 질문에 곧잘 대답은 잘하는데 나는 자꾸만 작아진다. 왠지 혼나는 기분이 든다. 눈을 내리깔고 힘없이 이야기한다. 나도 이렇게 말하는 내가 낯설다.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내가.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내가. 여기가 아닌 곳에 있는 것만 같다.


반복되는 문제들이 있다고 했다. 이상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검사를 정식으로 받아보고 싶고, 그 이유는 내게 걸맞은 병명이 무엇인지도 알고 싶다고 했다. 이전에 성격 장애가 있을 수 있다는 소견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그걸 명확하게 알고 싶다고도 했다. 상담 선생님은 자신과의 상담은 진단명 그 자체가 중요한 작업은 아니라고 했다.


"살면서 그런 방식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게 다 적응이거든요."


그런 방식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분명히 있다.


아직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이에게 이 말을 듣고 나는 결국 좋은 날에 울고 말았다.


언제나 나를 탓해왔는데. 내가 이상해서, 자의식 과잉이라서, 참을성과 끈기가 없어서. 이런 이유는 끝도 없이 댈 수 있는데. 그래서 더 병명에 집착을 하게 됐던 것 같다. 나 혼자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 어떤 그룹이 있다는 게 안도가 되었으니까. 나만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으니까.

"저랑 하게 되는 심리 상담은 어떤 게 어려운지 어떻게 바뀌고 싶은지를 이야기하는 시간이에요."


다음에 진행될 검사 및 상담 일정을 잡고 우리의 통화는 끝이 났다.


어떤 게 어려운지, 어떻게 바뀌고 싶은지.
어떤 게 어려운지, 어떻게 바뀌고 싶은지.

어떤 게 어려운지, 어떻게 바뀌고 싶은지.


몇 번이나 이 말을 마음속으로 더듬었다. 마저 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홀가분했나. 그렇지는 않았다. 앞으로 엄청나게 좋아질 거라고 기대했나.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주눅 든 채로라도.

어떤 게 어려운지, 어떻게 바뀌고 싶은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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