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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y 17. 2023

고양이와 나의 장난감

고양이가 좋아하는 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것일까.

우주는 세 겹 깃털 장난감을 가장 좋아한다. 낚싯대에 매달아 흔들면 세 겹 날개가 빙빙 돌기 때문에, 다른 장난감에 비해 반응이 훨씬 좋다. 다른 장난감은 갖고 놀다 보면 금세 지루해하는데 깃털은 보이면 바로 쫓고 잡고 물어뜯는다. 그래서 우주는 이미 두 개의 깃털을 해치웠고, 지금은 세 번째 깃털을 즐기고 있다.


깃털을 꺼내면 우주의 눈이 집중한다. 체위를 낮추고 달려들 준비를 한다. 깃털을 눈으로 쫓다가 타이밍이 올 때 몸을 날려든다. 마치 김연경이 백어택을 날리는 듯한 모습이다. 깃털을 잡으면 그 자리에서 안고 뒹군다. 물고 뜯고 괴롭힌 뒤에는 다시 물러난다. 그리고 의자 아래로 슬쩍 들어가 숨는다. 아빠에게 돌려달라고 말하는 신호다. 다시 낚싯대를 잡고 깃털을 돌리기 시작한다. 이때 우주는 사냥 본능을 발휘하여 깃털을 잡아내기 위해 달려든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빨랐다. 사냥감을 놓쳤다. 우주는 의자 아래로 기어들어가서 잡을 다시 준비한다. 아빠더러 또 돌리라는 얘기다. 


ㅜ=-ㅇ ㅍ슢ㅊㄷ


(우주가 내 아이패드 위로 올라와서 키보드를 밟아 생긴 글자다. 기념으로 남겨둔다고 했지만, 글 중간중간에도 있어서 읽는 데 방해가 되어 지웠다...라고 쓰고 나니, 괜히 지웠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낚싯대를 빠르게 돌리면 휭휭 소리와 함께 깃털이 빠르게 회전한다. 우주는 고개를 빙빙 돌리면서 깃털을 눈으로 쫓는다. 하지만 우주가 다치지 않도록 높게 띄워서 돌리니까 잡을 방법이 없다. 깃털이 지친 듯 살짝 바닥에 내려놓으면 어느새 우주는 달려와 부둥켜안고 뒹군다. 소리가 빠드득 소리 난다. 깃털 중앙에 있는 플라스틱 심이 부러지는 소리다. 심을 부러뜨린 뒤 깃털을 잡아 뜯는 과정은 민첩하고 확실하다. 맹수의 유전자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가 보다.

맹수 모드 

솔직히 말하자면, 우주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사실 아빠들 대부분은(아니라면 할 수 없고) 자녀들에게 자기가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사준다. 나도 아이가 어릴 때 내가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항상 사주곤 했다. 레고, 무선 자동차, 움직이면서 삑삑거리는 것들 말이다. 그런 장난감을 사 오면 "여자애한테 이런 걸 사주냐?”하는 지청구를 들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고 아이가 성장하면서 선물은 디지털 기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 딸아이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디지털 기기를 훨씬 잘 다룬다. 오히려 어떤 것은 나보다 더 잘 사용한다. 내가 어릴 때부터 그런 걸 사줘서 그런 거라고 주장한다(거시기가 거시기하다는 말이로군. 참나). 솔직히는 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놀지 않을 때는 내 거야,라는 생각을 했으니 나로서는 딱히 손해 볼 일이 없는 것이다. 


고양이 깃털을 빙빙 돌리다 옛 생각이 나서 슬쩍 웃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더 재미있어하는 건 우주가 도대체 개당 3천 원짜리 깃발을 몇 개나 해 먹을까 하는 것이다. 지금 장난감은 내가 사지 않기 때문이다. 내 돈이 안 들어가니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woojoo.kitten | Instagram


이 글을 쓸 때 들은 음악 :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 G마이너 작품번호 19, 3장, 안단테. 

(베르나르베르베르한테 배운 건데, 은근히 재밌다. 약간 허세스럽기도 하고)

이 글을 쓸 때 같이 있는 친구 : 우주 (아이패드로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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