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테로스의 화려한 판타지 세계를 구현한 HBO의 메가 히트 시리즈 '왕좌의 게임'은 화면 뒤에서 또 다른 혁신을 이루고 있었다. 바로 대규모 국제 제작의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체계적인 접근법이다. 아이슬란드 빙하부터 크로아티아 해안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이 대작은 친환경 제작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왕좌의 게임'은 아이슬란드의 빙하, 북아일랜드의 숲, 크로아티아의 해안, 스페인의 사막 등 전 세계 다양한 로케이션에서 촬영되었다. 이처럼 광범위한 국제 로케이션 촬영은 필연적으로 큰 탄소 발자국을 남기게 된다.
제작 규모만 해도 압도적이었다. 시즌 8 기준으로 10개국 이상에서 촬영이 진행되었고, 약 4,000명의 제작진이 참여했다. 단일 에피소드 제작에 평균 1,000만 달러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이러한 대규모 제작은 자재 소비, 에너지 사용, 폐기물 발생 측면에서 상당한 환경적 도전을 의미했다.
HBO는 '왕좌의 게임' 시즌 5부터 본격적인 친환경 제작 전략을 도입했다. 이는 영국 영화 위원회(British Film Commission)의 지속가능한 제작 인증 프로그램인 '앨버트(Albert)' 기준을 따른 것이었다. 구체적인 전략은 다음과 같다.
'왕좌의 게임' 제작팀은 로케이션 촬영 시 현지 환경 보호 규정을 철저히 준수했다. 특히 아이슬란드의 민감한 생태계에서 촬영할 때는 환경 전문가들이 현장에 상주하며 자연 환경 보호를 감독했다.
스키다페요쿨(Skidafellsjokull) 빙하에서 '북쪽 너머(Beyond the Wall)' 장면을 촬영할 때는 빙하 보호 프로토콜을 수립했다. 제작진은 지정된 경로만 사용하고, 특수 매트를 설치해 빙하 표면 손상을 방지했다. 이 노력으로 아이슬란드 환경청으로부터 환경 보존 모범 사례로 인정받았다.
북아일랜드의 다크 헤지스(Dark Hedges)와 같은 역사적인 장소에서는 관광객 출입을 제한하고 특수 보호 매트를 설치하여 나무 뿌리 시스템을 보호했다. 촬영 후에는 전문 환경 복원 팀이 현장을 원래 상태로 복구했다.
벨파스트에 위치한 '왕좌의 게임'의 주요 스튜디오인 타이탄 스튜디오(Titanic Studios)에서는 세트 자재의 재사용과 재활용이 표준 관행이 되었다. 영국 지속가능 영화 제작 연합(BAFTA's albert)의 자료에 따르면, 시즌 8에서는 이전 시즌에서 사용된 세트 자재의 약 65%가 재사용되었다.
특히 킹스랜딩의 레드 킵 성과 윈터펠 성과 같은 주요 세트는 여러 시즌에 걸쳐 수정되고 재사용되었다. 디자인 팀은 처음부터 세트를 모듈식으로 설계해 재구성이 용이하도록 했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자재는 현지 극장 그룹과 학교에 기부되었다.
세트 디자이너 데보라 라일리(Deborah Riley)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세트 디자인 초기 단계부터 자재의 수명 주기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드라고나이트 채석장 세트의 경우, 촬영 후 자재의 80% 이상이 다른 프로덕션에 재사용되었다.
'왕좌의 게임'은 LED 조명 기술을 대규모로 도입한 초기 TV 프로덕션 중 하나였다. 시즌 6부터는 세트 조명의 약 70%가 에너지 효율적인 LED로 교체되었다. 이는 전통적인 텅스텐 조명에 비해 에너지 소비를 약 50%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또한 제작팀은 디젤 발전기 사용을 줄이고, 가능한 경우 그리드 전력을 사용했다. 특히 벨파스트 스튜디오에서는 재생 에너지 공급업체와 계약을 맺어 전력 소비의 환경 영향을 줄였다. 로케이션 촬영에서는 태양광 충전 배터리 시스템을 도입해 소형 장비의 전력을 공급했다.
에너지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해 제작 과정 전반의 에너지 소비를 추적하고 관리했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식별하고 줄일 수 있었다.
미셸 클랩튼(Michele Clapton)이 이끄는 의상 부서는 지속가능한 소재와 방법을 사용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가죽 대안 소재를 사용하고, 중고 의류를 개조하며, 지속가능한 염색 방법을 채택했다.
시즌 8에서 사용된 나이트 워치의 의상 중 상당수는 이전 시즌의 의상을 재활용하고 수정한 것이었다. 서지 포워드(Serjie Forward) 의상 감독은 "우리는 의상을 '살아있는 자산'으로 취급했다"고 설명했다. 의상 부서는 제작 후 의상의 약 30%를 다른 프로덕션에 대여하거나 기부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데너리스 타르가리엔의 의상 진화다. 그녀의 시즌 7 겨울 의상은 재활용 모피와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수확된 울을 사용해 제작되었다. 클랩튼은 "캐릭터의 진화를 보여주면서도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항상 고민했다"고 밝혔다.
'왕좌의 게임'은 종이 사용을 줄이기 위해 디지털 스크립트와 제작 문서를 적극 활용했다. 시즌 7과 8에서는 모바일 앱을 통해 배우와 제작진이 스크립트와 스케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디지털 워크플로우는 매년 약 10만 장의 종이를 절약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제작 회의는 가능한 한 화상 회의로 진행해 불필요한 이동을 줄였다.
제작 관리자 버나드 콘스(Bernard Caulfield)는 "디지털 워크플로우로의 전환은 단순히 종이를 절약하는 것을 넘어 전체 제작 과정의 효율성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왕좌의 게임'의 가장 큰 환경적 도전 중 하나는 드래곤과 화이트 워커와 같은 판타지 요소를 구현하기 위한 특수 효과였다. 이러한 요소들은 대규모 컴퓨팅 파워를 필요로 하는 CGI 작업을 필요로 했다.
HBO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수 효과 파트너인 픽소몬도(Pixomondo)와 협력하여 렌더 팜(render farm)의 에너지 효율성을 개선했다. 또한 클라우드 기반 렌더링으로 전환하여 필요에 따라 컴퓨팅 리소스를 확장하고 축소할 수 있게 했다.
시즌 8의 '윈터펠 전투' 에피소드는 약 11,000개의 CGI 샷을 포함했다. 이러한 대규모 디지털 작업의 환경 영향을 줄이기 위해 HBO는 에너지 효율적인 서버를 사용하고, 작업 시간을 최적화했다. 특수 효과 회사 로딩 디지털(Rodeo Digital)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특별히 에너지 효율적인 GPU 시스템을 도입했다.
'왕좌의 게임'은 대규모 국제 제작이 어떻게 환경 영향을 관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되었다. HBO의 추정에 따르면, 친환경 제작 관행을 통해 시리즈의 마지막 두 시즌에서 약 1,400톤의 탄소 배출을 방지했다.
영국 영화 위원회의 '앨버트' 인증을 획득한 '왕좌의 게임'은 환경 성과를 인정받아 2018년 지속가능한 제작상(Sustainable Production Award)을 수상했다. 이는 대규모 판타지 시리즈가 환경적 책임을 다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시리즈의 성공은 고품질 엔터테인먼트와 환경적 책임이 상충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왕좌의 게임'의 환경 이니셔티브는 HBO의 다른 프로덕션에도 적용되어, '체르노빌', '웨스트월드', '서양의 마녀' 등의 시리즈에서도 친환경 제작 방식이 표준이 되었다.
HBO의 환경 책임자 존 데이비스(John Davies)는 "우리는 '왕좌의 게임'을 통해 대규모 제작에서도 환경 영향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이제 이러한 관행은 HBO의 모든 제작에서 표준이 되었다."
'왕좌의 게임'의 친환경 제작 경험은 미디어 산업 전체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판타지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실제 세계를 보호하는 책임과 충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창의적인 스토리텔링과 환경적 혁신은 함께 갈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21세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