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직장과 예쁜 아이를 가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
2020.8.16 다시 월요일. 그녀의 구내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그녀는 거기 없었다. 휴가가 연장되었다고 한다. 오늘 아침 그녀의 남편에게서 병원이라며 전화가 왔다고. 자세한 사항은 잘 모르고 아마 다음 주 월요일이나 되어야 출근할 것 같다고. 다음 주 월요일이면 내가 그녀에게 상자를 건네받은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 음식물이거나 살아 있는 생물은 아니겠지? 왜 한 번도 그런 생각은 안 해본 거야? 어쩌지? 지금이라도 열어볼까? 하지만 원래대로 돌려줄 것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게 우습잖아.. 후~ 병원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왜 하필 나에게 그런 숙제를 넘기고 간 거냐구?’
결국 그녀는 다음 주 월요일인 8.23에도 출근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본 것은 그녀에게 상자를 건네받은 지 딱 한 달째 되는 8.31 삼성서울병원 영안실의 영정사진에서였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하얀 국화꽃들에 둘러싸인 그녀는 너무나도 눈부신 미소를 뿌리고 있었다.
그녀의 부음을 전해들은 것은 어제 아침. 자살이란다. 8월 5일 밤 5층짜리 자택 빌라 옥상에서 실족하였다고 한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의 부상이라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며 회복을 기다리던 중 잠시 집에 들르러 갔던 30일, 신경안정제 50알을 모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건 또 뭐야?’ 슬픔 따위는 느낄 여유도 없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그녀가 남기고 간 보라색 상자 생각뿐이었다. ‘나는 왜 그 상자를 여태 가지고 있었던 거야? 이제 어쩔거냐구?’ 한참 멍하니 있다가 화장실로 나가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정신 차리자!’ 우선 다음날 휴가를 냈다. 당장 병원으로 달려갈 수도 있었지만 유족들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필요하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자는 개봉하지 않은 채였다. 8.31 이른 아침에 빈소를 찾은 나는 우선 그녀의 남편을 찾았다. 건장한 체구의 그는 내가 내민 보라색 상자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내내 상복을 입은 누군가에게 업혀있는 돌을 갓 넘긴 듯 보이는 여자아이를 황망히 좆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상자를 갖고 있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상자를 그에게 전달한 후 국화꽃 한 송이를 그녀의 사진 앞에 놓아두곤 도망치듯 병원을 떠났다.
더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지쳐있었다. 세상에 나갈 날을 받지 못한 영혼의 아이들을 복중에 담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던 나. 나의 상처로도 충분히 아팠다. 그런 내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끌어안을 여유가 있을 리 없다. 다시는 엄마 품에 안길 수 없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바쁘게 오고가는 어른들 사이에서 눈만 꿈뻑이고 앉아있는 검은 옷을 입은 여섯 살박이 사내아이,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잖아..제발..나를 그만 내버려두라구..제발..
스스로의 기쁨으로 세상을 기쁘게 하라!
다 좋아요. 근데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나쁜 건가요? 저는 고생하는 거 싫어요.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공부도 그래서 하는 거구요.
그런데 막상 공부를 하다보니 점점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 하나 잘 먹고 잘 살려고 해서는 제대로 잘 먹고 잘 살 수도 없을 것 같을 뿐더러 혹 그렇게 된다고 한들 그게 무슨 의미일까? 내가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이 살아간 날 수 만큼 늘어나는 경쟁자의 눈물이라면 그게 뭐냐구? 게다가 그렇게 모질게 얻은 승리에서도 기쁨을 찾지 못한다면 도대체 나는 어떻게...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 고단한 삶을 이어간단 말이야? 나 개인으로 보아서는 더 이상 의미없는 시간이다. 지금이 頂点 인 것 같다. 지금부터 내리막이지 않을까? 아니 더 올라간다 하더라도 지금은 충실한 어떤 것을 제물로 바치면서 올라가겠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야? 총점으로 따지면 지금이 최고점이다. 지금도 힘든데 앞으로 더 힘들어질 날만 남아있다니...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그럼 죽을까? 내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제일 불쌍한 것은 우리 지훈이, 수영이..이것들이 엄마없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진다.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사회생활을 하며 ‘사회적 고아’로서 느꼈던 막막함을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적어도 성인이 될 때까지는 아이들 옆에서 스스로 흡족히 사랑받았다는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해줘야한다. 그래야 아이들은 그 사랑을 자산으로 또 그들 앞에 주어진 세상을 견뎌나갈 수 있을 테니까. 적어도 나보다는 좋은 조건에서 살게 해주고 싶다. 아~! 아이들이 내가 살아야 할 첫 번째 이유인 것이구나. 이것이 내 존재의 이유인 것이구나.
남편은 어떨까? 지금 내가 죽으면 새로 결혼도 하고..좀 불편하지만 그럭저럭 살아가게 되려나? 주변의 몇몇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남편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아끼고 의지하는지 잘 알지만 솔직히 의문이다. 그에게 내가 절대적 존재일까? 아이들만큼 내가 절실할까?
엄마..상심은 크시겠지..몸도 많이 아프신데 이 상황에서 나까지 죽으면..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아이들과도 멀어지시겠지? 내가 죽고 나면 우리집엔 발걸음 하시기도 힘드실지도 몰라. 그렇다고 아이들을 맡아 기르실 형편도 못되시고..또 남편이 그렇게 두지도 않을테고..엄마가 지금 상황에서 가끔이라도 웃으시는 이유가 아이들인데..그마저 없어진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잘 사실지도 모른다. 물론 가슴에 큰 멍울을 하나 더 지고 사셔야겠지만...천형과도 같은 멍울이겠지..아~! 이것도 못할 짓이다. 엄마가 내게 뭘 바라는 것이 있으시다고..그저 존재감만으로 만족하고 계시는 분에게 그 존재감마저 빼앗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그리고 친구들..순간 비통해하겠지만 곧 잊어버리겠지..
나 : 이렇게 좋은 패를 쥐고도 게임을 즐기지 못한 나는 아마도 다음 생엔 더 열악한 조건 속에서 같은 전투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우주의 시스템이 이렇게 마감한 생의 주인을 열반시킬 만큼 허술할 리가 없으니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럼 나는 무엇을 위해 삶을 이어가야 하는 걸까?
결국 아이들인 걸까?
예상했던 대로 보라색 상자는 다시 내게 돌아왔다. 제법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던 9월 중순이었다. 박소연, 그녀의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아무래도 이건 선생님께서 갖고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
「그 사람, 분명 무슨 뜻이 있어서 선생님께 갔을 겁니다. 5일 사고, 그냥 사고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 차근차근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보내고야 알았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선생님, 부담스러우신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상자를 열었더니 너무나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포장이 되어있어요. 제게 주는 것 같았으면 선생님께 일부러 가져갔을 리가....」
「예. 일단 만나서 말씀하시죠.」
「아니, 지금은 직접 뵙기가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실례인 줄은 알지만 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Part 1. 구독자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