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 장례식에는 처리를 기다리는 시체가 없었으면 좋겠다. '죽은 자는 죽은 자들이 알아서 장례케' 하고 산 자들은 '살아있음'을 기뻐하는 잔치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나는 죽음이 이르기 전에 스스로 장지를 준비하고, 그날이 오면 스스로 장지에 걸어들어가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자연으로 돌아갈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사치스러운 생각을 하곤 한다. 이게 끝내 사치스러운 망상이 될지, 현실이 될지는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에 달려있을 것이다.
장례식은 내가 평소 많은 시간을 보내던 공간에서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곳에는 내가 미리 <장례식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둔 노래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으면 좋겠다. 내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이 바쁘게 돌아가던 일상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를 수 있는 핑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겐 나와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하고 살아갈 힘을 얻을 휴식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숨돌릴 틈이, 휴식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오지 않아도 좋다.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나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나는 그들과 함께 있을 테니까.
정말로, 정말로 그런 장례식이 되려면 나를 잘 아는 친구의 도움이 필요하다. 삶의 모습 뿐만 아니라 죽음까지도 아울러서 나를 이해하고 기꺼이 그 과정을 함께해 줄 친구. 감사하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 이건 정말로, 정말로 감사한 일이라는 걸 내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담스럽다고 거절해도 이상하지 않은 내 제안에 친구는 내 두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하게 말했다. "대신, 내가 그 일을 더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오래살아야 돼." 나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안다. 서른 두살에 장례식을 준비한다는 생각이 터무니 없다는 것. 사람 목숨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하지만 내가 암을 만나고, 암환자의 입장에서 보고 들은 세상에서는 죽음이 멀리있다는 생각이 더 터무니없다. 죽음이 어울리는 나이란 없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고 그 사실에 익숙해져야 삶과도 더 빨리 친해질 수 있다. 그러니 내게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삶을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1년 전에 만들어두었던 <장례식 플레이리스트> 폴더에 들어갔다. 그동안 즐겨듣던 노래를 꽤 담아뒀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달랑 한 곡 뿐이었다. '정태춘 - 에헤라 친구야'
에헤라 친구야
내 꿈은 하늘이라
거칠은 바다를
포근히 감싸는
내 꿈은 하늘이어라
에헤라 친구야
내꿈은 구름이라
파란 하늘 아래
한가로이 떠가는
내 꿈은 구름이어라
에헤라 친구야
내 꿈은 바람이라
하늘과 땅사이
뜻대로 오가는
내꿈은 바람이어라
에헤라 친구야
내 꿈은 꽃잎이라
밤새 이슬 먹고
햇살에 싱싱한
내 꿈은 꽃잎이어라
에헤라 친구야
내 꿈은 사랑이라
착하고 해맑은
맘속에 피어난
내 꿈은 사랑이어라
토속적인 음율에, 가사를 곱씹다보니 이보다 장례식에 잘어울리는 노래가 또 있을까 싶다. 삶을 곱씹는데도 죽음을 기리는데도 이질감이 없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몰라도 탁월한 선곡이다. 그래 이 곡 하나면 충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