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위해 실천하는 여러가지 것들 중 요즘 가장 마음을 쓰는 시간은 '명상'이다.나에게 맞는 명상법을 찾기 위한 마음공부와 책 읽기에도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자연치유 중인 암환자가 어쩌다가 정신수양에 천착하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다.
자연치유는 획기적인 생활습관의 변화를 요구한다. 심혈관계, 내분기계, 면역계, 자율신경계의 자연회복력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동물성 식품, 밀가루, 설탕, 유제품을 끊고 규칙적인 운동, 뜸, 풍욕, 반식욕, 명상 등을 꾸준히 실천해야한다.
와. 한문장으로 표현하니 너무 간단해 보여 억울할 정도다. 실천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육즙이 주는 풍미와 탄수화물이 주는 포만감을 잊기에 나는 그들에게 너무 익숙했다. 배부르면 늘어지기를 좋아하고 마음은 습관적으로 우울을 찾는다. 좋은 습관이 몸에 배기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매번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자괴감에 허우적 거릴 때마다 어리석은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정신의 문제인가 육체의 문제인가 궁금했다.
근래의 행동심리학 연구는 '육체를 지배하는 정신'이 아닌 '정신을 지배하는 육체'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기분이 좋아 웃는게 아니라 웃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식이다. 웃는데 쓰이는 근육이 뇌 신경을 자극해 기분을 좋게하는 호르몬을 방출했다는 연구결과는 유명하다. 하지만 결국 억지 웃음을 지어보려는 것도 정신의 결정 아닌가. 정신과 육체, 주도권은 누가 쥐고 있을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관념적으로 보이는 이 질문은 내겐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건강한 습관을 만드는데 실패를 거듭한 나는 내 정신세계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돌아보아야 했고, 그렇게 '정신적이고 영적인 나'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치유의 실마리를 '육체'에서 '정신'으로 옮겨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책을 만났다. 아니타 무르자니가 쓴 <그리고 모든 것이 변헀다> 라는 책이다.
아니타는 림프암으로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다가 혼수상태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고 의식을 회복했다. 그녀는 자신이 육체로 돌아오면 모든 병이 나을것임을 확신했는데, 실제로 목 부근에 레몬만하게 자란 암을 비롯해 전신에 퍼져있던 암이 단 몇일만에 녹아 없어졌고 이후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을 전세계 사람들과 나누며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책을 접하기 전에도 이미 아니타의 기적적인 치유 사례를 알고 있었다. 내가 책을 읽으며 놀랐던 것은 그녀가 나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깨달음의 상태에 이르러 알게 된 자기 암의 원인이 '두려움'이라는 정신적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의 종류와 두려움을 만들게 된 경로들이 나의 그것과 놀라우리만큼 비슷했기에 나는 그녀가 하는 말에 거의 100% 공감할 수 있었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던 나는 몇 번이나 벌떡벌떡 일어나 벅찬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는지 모른다. 그녀에게 내가 지닌 문제(=두려움)의 핵심을 제대로 간파당한 느낌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겁이 많았고(특히 나를 아프게 하는 것에 대해), 지금도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암 자체가 아니라 암이 가져올지 모를 상황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이다. '질병이 신과의 소통'이고, 삶에서 수정해야하는 것의 변화를 돕기 위해 일어난 현상이라면 내가 극복해야하는 것은 암이 아니라 이 정체모를 두려움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책을 읽은 뒤로 이 두려움을 들여다보고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그러했다. '마음공부를 해야겠다'해서 시작한건 아니고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고 읽다보니 너도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낯선 세계가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두려움은 실체가 아니며, 모든 것이 나의 의식과 정신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마음공부인지, 정신수양인지 아직 뭐라고 불러야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안에 내가 아팠던 이유와 치유의 실마리가 들어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에 꽤나 파고들어갈 것 같다. 종종 공부하고 깨달아가는 것들을 나누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