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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헷 Jun 07. 2021

자격은 그만 논할래요

 언제까지고 일을 쉴 수는 없어서 파트타임이라도 찾아볼까 하던 찰나에 비영리 단체 총무직을 제안받았다. 업무에 대한 설명을 들으러 제안하신 분을 만나러 갔는데 그와 나눴던 대화의 한 꼭지가 유난히 곱씹어지는 것이다.


 "이런데 좀 관심있는 사람이 일을 맡는게 좋을 것 같아서... 넌 그래도 공동체, 여성, 환경 이런 쪽에 관심이 있잖아."


 보기 좋은 표어를 내걸은 단체에서 다분히 일해본 경험이 있는 나는, 이제는 어떤 '공적 가치'를 대놓고 표방하는 단체를 꺼려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대부분은 그 가치와 내 삶의 격차를 발견하는 것이 업무의 연속이었고, 그 경험이 매우 씁쓸한 인상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 말을 듣자마자 자동적으로 나간 반응이란게

"네? 아뇨. 저 그런데 관심없어요. 그래보이지만 전혀요. 공동체에도, 여성에도 관심없어요. 자연은 좋아하지만 환경운동은 싫어해요." 였다.


 그날은 돌아오면서 '잘했다'고 생각했다. 책임지지도(?) 못할 관심사에 관심있는 척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그런데 만 하루가 지나서 문득 뇌리를 스치는 그 대화를 곱씹으며 내가 그동안 나에게 너무 관대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이 갖는 가치에 완벽하게 들어맞아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어디있나. 일의 가치와 완벽하게 부합하는 사람만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하면, 자리를 털고 내려와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하고 성실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모두가 그 가치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그렇게 해서 자기가 맡은 일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어떤 가치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사람만이 그 가치를 표방하는 일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나는 나와 사회에 대해 퍽 옹졸했다. 여기서 화제는 뜬금없이 자연치유로 넘어간다. 나는 자연치유를 하는 스스로에 대해서도 자주 이 잣대를 들이댔기 때문이다.




 2020년 1월 자연치유를 결심한 이래 1.5년 동안, 나는 항상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자유롭지 못했다. 계획한대로 치유 프로세스를 잘 이행하고 있을 때는 "역시 난 자연치유에 걸맞는 사람이야. 이러면 안 나을 수가 없지." 자만하다가도, 무언가 빠뜨리거나 잘 이행하지 못했을 때는 "이래가지고 어떻게 자연치유를 한다는 거냐, 넌 자연치유가 불가능한 인간일지도 몰라."하면서 자꾸 스스로의 자격을 논하는 것이다.


 이런 결과론적 마음자세는 자연치유는 물론이고 모든 종류의 과제 달성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 자연치유를 할 수 있는 인간과 할수 없는 인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 모두는 자연회복력이라는 내재된 선물을 갖고 태어났다. 내가 얼마나 집중하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그 힘의 드러나는 정도가 다른 것이지 애초부터 자연치유는 '자격'을 논할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런 이분법적 사고를 좀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좀 관대해져야겠다. 내가 자연치유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내면의 논쟁에서 이만 벗어나서, 내가 매일 얼마나 자연치유적 삶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는지를 바라봐줘야겠다. 그럴때야말로 자연치유에 좀 더 '가까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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