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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이호성 Dec 16. 2023

[출장] 돌아온 지갑, 카이로편

5년간 묻어 두었던 이야기

(2023년 10월, 5년 만에 다시 방문했던 카이로에 두고 왔던 이야기)

50년 전 발발헀던 중동과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기념하는 10월 6일 다리 위에서

이번 이집트 출장 중 가장 기억에 남을 일은 카이로 Governorate의 Governor를 만난 것도, 29층 Nile City Tower에 위치한 세계은행 사무실에서 내려다본 나일강도, 호텔을 기준으로 나일강을 따라 10월 6일 다리와 7월 26일 다리(수에즈 운하 국유화 기념)를 돌아 한 바퀴 나일강변 조깅을 한 것도 아닌, 뉴욕에 살 때부터 5년 이상 사용해 온 지갑을 잃어버리고 하루 만에 되찾은 일이다. 


어디에서 잊어버렸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한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길거리에서 지갑을 분실하고 시간이 지난 뒤 되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나는 한국에서 지하철과 택시에 카메라를 두 번 두고 내렸지만 다시 운 좋게 찾은 기억이 있긴 하지만)


내가 지갑을 잃어버리고 되찾은 24시간의 여정을 간략하게 반추해 보면 아래와 같다

출장 일행들과 하루 일정을 마치고, 식당이 추울 것이라는 생각에 잠바를 입고 호텔을 나옴

호텔 근처 유명 이집트 식당으로 약 5분여 정도 도보로 이동하면서 지갑을 잠바 속 주머니에 넣음

외국인 손님 비중이 크지 않은 곳인지, 생각보다 실내 온도가 높아 잠바를 벗어서 접어둠

저녁 식사 후 잠바를 입지 않고, 들고 나와서 식당 앞에서 일 마디 지역에 사시는 동아일보 특파원님과 인사를 드리고 호텔로 돌아감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팀장님이 서점에서 책 구경을 하고자 하실 때, 잠바를 다시 이었 던 것 같음

호텔로 돌아와 보안검색대를 지나고 방 키를 찾고자 지갑 찾으니 잠바 안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걸었던 길을 따라서 길거리와 식당으로 돌아가 지갑을 찾음

혹시나 방에 지갑을 두고 온 게 아닐까 싶어 새로 키를 받아 방을 아무리 뒤져도 지갑은 보이지 않음

한 번만 더 지갑을 찾아보고자 식당과 식당 주변 호텔로 돌아오는 동선을 따라 핸드폰 조명을 활용해 바닥을 유심히 살핌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만, 아주머니들이 뭔가 찾는 나를 발견하고는 도움 주려고 하심 (식당 앞과 서점 앞)

서점 앞에서 날 본 아주머니가, 누군가 지갑 관련해서 서점에 들어와서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다 해서 서점으로 들어감

서점에 들어가 영어가 되는 직원에게 문의를 하자, 쓰레기 통 안에 버려져 있는 전화번호 종이를 꺼내주는데... 지갑을 잃어버린 다른 사람이 남긴 연락처였던 것으로 이해하고 서점을 빈손으로 나옴 (영어로 소통하긴 했지만, 서로 의사전달이 잘 안 되었을지도..)

호텔로 돌아와 중정 야외 카페에서 지갑은 잊어버린 것으로 간주하고, 팀장과 급한 업무 이메일을 보내고, 다음 날 일정 체크, 그리고 디씨와 전화통화를 하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함. 

호텔방으로 돌아와 잠들기 전 신용카드 회사에 전화를 돌려 카드들을 다 취소하고, 새 카드 발급 요청까지 하고 12시 조금 전에 잠자리에 듬

아침에 일어나 보니, 동아일보 특파원으로부터 부재중 통화와 문자가 남겨져 있어 들여다보니 누군가 내 지갑을 찾아서 내 지갑 안에 있던 본인 명함 번호로 지갑을 주인을 찾아주려고 연락이 왔다 함

기자님이 내 연락처를 알려줘서, 지갑을 찾았다는 Ahmad라는 친구로부터 WhatsApp이 와 있었음 

약 12시간 뒤인 업무가 끝나는 시점인 6시쯤 내가 묵는 호텔 로비에서 보자고 약속을 함

지갑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게 되었고, 연락이 온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말에 현지 세계은행 직원들이 혹시 모르니 조심하라고 이야기함

호텔 로비에서 Ahmad를 만나 지갑을 받고, 전날 밤 팀장과 일을 했던 같은 장소에서 Hibiscus Mint 티를 같이 나눠 마시며 대화를 함


내가 회사 일로 출장을 다니면서 만나고 대화를 나누게 되는 사람들은 그 나라의 일반 시민이 아닌 경우가 많다. 언어라는 장벽도 있지만, 출장 일정 상 개도국 현지의 일반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 자체가 별로 없는 편이다. 

 

내 지갑을 발견하고 찾아주겠다는 선의로 만나게 된 Ahmad는 순수한 청년 같았다. 한 번도 이집트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이 젊은이의 이야기가 어떤 면에서 정부 관계자들과의 대화보다 더 현실적이고, 내가 지금 하는 일에 사명감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살짝 방전된 상태에 동기부여를 받음).


Ahmad는 나에게 본인 같이 경영학을 전공하고 이집트에서만 자라고 교육받은 사람도 외국에 나가서 일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았다.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교차했는데, 다음에 카이로를 방문하게 된다면 내가 이 친구에게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주겠다는 생각보다는, 태어나서 한 번도 기자 피라미드 안을 들어가 보지 않았다는 26살의 수줍음이 많은  Ahmad와 같이 피라미드를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집트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5년 뒤 2023년 10월 카이로를 다시 방문했을 때 나의 WhatsApp에서는 Ahmed의 연락처를 다시 찾을 수 없었다...)


지갑을 잃어버린 식당은 아님


평소 뭘 잘 잊어버리지 않는 내가 지갑을 잃어버리면서 겪은 일련의 경험들이 나를 또 어디로 인도할지는 시간이 지나야 만 알 수 있겠지만. 어제 있던 일을 회상하며 내일 있을 일을 구상하는 지금 오늘 유라시아 대륙 위 비행기 안 2018년 9월 14일에서 15일로 넘어가는 시점에... (다시 읽어보니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 디테일들 까지 생생하게 적어두어 재밌기도 했지만, 당시 내가 상당한 심리적 영향을 끼쳤던 게 아닐까 싶음) 


이외 5년 전 이집트를 첫 방문했을 때 적어두었던 다른 것들

- 한글로 쓰면 ‘이만’이지만, 회사 동료 중 Iman과 Eman 두 가지 표기법의 차이가 프랑스 영향을 받았는가 (Iman) 영국의 영향을 받았는가 (Eman)에 따라 아랍어 이름 표기방식이 달라진다는 점

- 이집트가 1850년부터 1920까지 70년 이상 식민지배를 받았지만, 차량 방향이 영국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 (그전에 프랑스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 카이로를 관통하는 (행정구역상으로 따지자면, 관통하진 않고 Giza와 Cairo Governorate의 경계가 되는) 나일강의 폭이 생각처럼 넓지 않다는 점 (NRC 앱 조깅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1K도 되지 않음)

- 대학원 수업 과제로 알게 되었던 Zabbaleans (아랍어로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 )의 마을에 들어가 보진 못 했지만, 현지사무소 동료들과 이동 중 회사에서 하는 일과 관련한 주제로 내가 언급한 것에 동료가 신기하다고 생각한 점 (해외에서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듯)

- 기자 피라미드 단지 주변 개발에서 아쉬움을 많이 느낌

엄청난 스케일에 비해 너무나도 방치되어 있는 것 같은 기자 피라미드 (2018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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