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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요원 Dec 18. 2020

내가 오늘 당신을 만난다는 것

산문집 [해파리]

3년 전 이동진 평론가님이자 작가님의 출판행사에 간 적이 있었다. 이상하게 그 해에 독립, 예술영화를 가장 많이 본 시기이기도 했고 여러 가지 GV를 열심히 다녔었다. 지금은 별이 된 고인 박지선 님께서 진행을 맡으시고 이동진 평론가님은 행사시간 동안 책에 대한 이야기와 간단한 독자들과 담소를 나눴다.


평론가님이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건넨 말은 "시간을 내어 온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래서 오늘 와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였고 나는 이 말을 잊지 못한다.


이때껏 누군가에게 나의 시간을 들여서 만남을 가지는 것, 상대방의 시간에 내가 함께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크게 생각해보지 못했고 그저 만나고 싶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분류로만 만남이 이뤄지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아마도 그전까지는 내가 선택적으로 만남을 주도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살아서가 아닌가 싶다.


이제는 주위에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인간관계도 점점 줄어들고, 만나고 싶다고 모두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들 그들의 사정이 있고 상황이 있고 또 나를 만나고 싶어 할지도 관건이다.


"어디야? 시간 되면 볼래?"


이 말을 내가 살면서 몇 번이나 해봤을까. 어디에 '같이 가자'가 아닌, 지금 당장 네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 건 누구에겐 당연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늘 당신을 만난다는 건 사실 대단한 일이다. 나의 시간과 당신의 시간을 맞추고, 장소를 정하고, 함께 먹을 음식과 술을 두고 논의하고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 그 시간을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한다는 것. 멋진 일이면서 쉽지 않은 일이기에 더 조심스러워진다.


만남이 소중해진 시기에 단순히 심심해서가 아닌, 당신을 너무 오랫동안 못 봤기 때문에, 당신의 말하는 얼굴이 궁금하기 때문이라고 하면 좀 더 낭만적이면서도 언젠가 만나게 될 그날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우리 꼭 만나자. 만나서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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