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해파리]
오랜만에 눈이 왔다.
캐나다에서 녹지도 않던 그 많던 눈을 하도 봐서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지난밤 갑자기 내린 눈 냄새가 좋았다.
찌는 여름에는 겨울을, 추운 겨울에는 여름을 기다린다고 하는데 난 늘 겨울을 기다린다.
그 차가운 계절이 주는 특별한 포근함을 언제나 그리워한다.
화려한 캐럴도, 유난스러운 파티 없이도 난 이 겨울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즐길 수 있다.
외로운 노래들도 따뜻하게 장식하는 이 놀라운 계절은 1년에 딱 한번뿐이라,
눈이 오지 않는 날들도 많아서, 추운 날씨를 뚫고 만나는 사람들이 너무 소중해서
참 기억에 많이 남는다.
24살의 이른 겨울에는 술에 적당히 취해 내리는 눈을 뛰어가며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그때의 길, 전경, 옷차림, 내 웃음소리 하나하나까지 기억난다.
겨울은 내게 그런 계절이다.
3년이 지난 지금의 겨울은 생각보다 춥다.
어쩌면 내가 줄고 내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느라, 스스로 타인들과 날 비교하느라 봄부터 가을까지의 소중한
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버렸기에 이 겨울이 유독 춥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는 만큼,
그 많은 눈을 밟지 않아도 생생히 들리는 소리처럼 기억에 오래 남을 겨울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