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해파리
수많은 날들이 있었다.
소주 한 병 반을 마시고 흥얼거리는 발걸음으로 기숙사로 뛰어갔었고, 첫 번째 연애를 끝내고도 용케 울지도 않았고, 살갑지도 않은 둘째 딸에서 이제는 혼자 자식 노릇을 하는 27살이 되어 조용한 새해를 맞이한다.
많고 많은 시간들 중에 이렇다 할 실패는 없었지만 큰 기쁨들에 짧게 웃고 작은 우울들에 크게 울었다.
소리 내어 울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열리지도 않는 목구멍으로 떨리도록 슬퍼했다.
고요 속에 혼자 머리가 이래저래 복잡해도 그놈의 어디 팔 데도 없는 자존심 때문인지 그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저 좀 더 괜찮은 내가 간절했을 뿐.
그런데 사실 나이를 먹어도 '더 괜찮은 나'는 없다. 부끄러운 실수와 무모함이 가득했던 과거의 나도,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 가늠도 안 되는 미래의 나도 없고 오로지 오늘의 '나'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현실이 어렵다.
나는 딱 오늘의 내가 감내해야 하는 24시간이 주어지고 그렇게 죽을 때까지 이런 현상들을 마주하는데, 잠에 들지 않고서야 쉴 틈 없이 고민과 걱정과 불안함과 허무함과 무기력함에 둘러싸여 있다.
저녁으로 먹은 부침개가 꽉 막혀 소화되지도 않고, 그저 흘러가는 시계를 자꾸 쳐다보고만 있다.
청소를 해도 여전히 복잡하고 어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