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요원 Jan 29. 2021

삶의 목적을 찾는 우리에게 <소울>

디즈니, 픽사 신작 <소울>(Soul)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삶의 이유와 목적을 찾는다. '본 투 비~'라며 특별히 내게 주어진 확실한 재능, 오로지 나만이 가지고 있을 무언가를 찾아내고 그것으로부터 삶의 동력을 얻어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나도 한때 내가 가진 재능이 '영화'와 '글'에 관련된 것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20년을 넘게 살아왔다. 일을 쉬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과연 이것들이 내게 가슴 뛰는 일이 맞나라는 생각을 종종 했고 아직까지도 답을 찾진 못했다. 하나 확실한 건 꼭 그것일 필요도, 만약 맞더라도 꼭 그 일만이 내가 앞으로 남은 평생 동안 끌고 가야 한다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디즈니 신작 <소울>은 '삶의 목적'이라는 타이틀에 얽매인 어른들에게 잠시 쉴 수 있는 멈춤을 알려주는 영화로 당신의 평범한 일상을 조금은 특별하고 소중하게 만들어줄 이야기다.


줄거리

학교에서 밴드부 학생들을 가르치는 기간제 교사 '조 가드너'는 자신의 인생에 목적은 재즈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언젠가 아빠와 함께 음악을 듣던 곳에서 연주를 하고 싶어 했던 '조'는 한 후배의 연락으로 오늘 밤 재즈카페에서의 연주 기회를 얻게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조'는 great beyond 곧 완전한 죽음을 앞두고 다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태어나기 전 영혼들이 머무는 great before으로 가게 된다. 지구 티켓을 가진 영혼만이 지구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는 우연히 지구에서의 삶을 원하지 않는 영혼 '22'를 만나게 되고 지구 티켓의 마지막인 불꽃(스파크)을 찾아주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22'의 불꽃을 찾을 수 없었던 '조'와 '22'는 다른 방법을 찾다 사고로 지구로 떨어지게 되고 '22'는 '조'의 몸으로, '조'는 그 옆에 앉아있던 고양이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I was born to play

꿈이 있다는 것 자체는 정말 축복이다. 하고 싶은 일, 내게 살아갈 이유를 주는 것들을 발견해내기도, 그것들을 삶으로 끌어당기는 일도 쉽지 않다. '조'는 'I was born to play' 라며 학교에서 밴드부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아닌 연주자로서 살아가는 것을 갈망해왔다. 음악만이 전부였던 그는 일생일대의 기회 앞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방황하는 소울 '22'와 함께 지구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스파크를 찾기 위해 떠난다. 지구에서의 삶을 원하지 않는 '22'의 눈에는 '조'의 일상은 그저 따분하고 지루할 뿐이라 다시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22'의 시선으로 본 '조'의 일상은 정말 별로였다. 좋아하는 여자와 잘 안되기도 하고, 돌아가신 아빠가 그립지만 그것조차 음악이라는 갈망에 묶여있고, '조'의 엄마는 연주자가 아닌 선생님과 같은 안정적인 직장을 원한다. 피아노 하나만 있는 작은 뉴욕의 아파트에서 나와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일상은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가 특별하지 않는 삶을 산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다. 이발소에서 일하는 '조'의 친구 '데즈'는 수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미용학교에 진학했고 결국 이발사가 되었지만 그곳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하게 지낸다. 모두가 위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인생에 특별한 순간들을 작은 이발소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으로 나갈 준비

'조'가 고양이의 시선으로 본 뉴욕은 별다를 건 없었지만 '22'가 들어간 자신의 모습을 보는 일은 조금 달랐다. 지구에 대한 경험이 없는 순수한 영혼 '22'가 바라본 세상은 높고 파란 하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낙엽, 지하철에서 하는 버스킹, 그리고 맛있는 피자로 사소한 특별함이 가득했다. '조'가 지구에서 살았을 때는 일상이 되어버려 쉽게 느낄 수 없던 감정들을 소중히 느낄 수밖에 없었던 '22'에게 삶은 목적따위가 필요 없었다. '22'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불꽃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 아닌 '진짜 세상에 나가서 살 수 있는 준비'로 비로소 '22'가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발견했을 때가 아닌 세상을 느낄 준비가 됐을 때 채워진다.


'조'가 재즈카페에서 멋진 공연을 끝내고 나서 느꼈을 감정은 어쩌면 또 다른 일상이었다. 연주자의 삶은 무언가 특별하고 언제나 활기가 넘칠 것이라 기대했지만 사실 '다음 공연'만이 있을 뿐이었다.(이것도 사실 굉장히 멋진 일이다) 하지만 great before의 제리들이 '조'에게 '영감을 주는 일을 하는데 영감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아'라고 하면서 그에게 지구에서의 기회를 제공한다. '조'가 문밖으로 나가 다시 마주할 세상에서 연주자로서의 삶을 살지, 학교로 돌아갈지, 아니면 다른 인생을 시도할지는 알 수 없으나. 개인적으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가 학교 밴드부에 있는 학생에게 좋은 선생님이었고, 그의 가르침으로 재즈카페에서 드럼을 연주하는 '컬리'가 있는 것처럼 그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로 살아왔다. (great before에서도 멘토로 위장한다) 하지만 아무렴 그의 모든 선택과 인생을 응원하는 건 마찬가지다.



태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 (김성훈 영화평론가)

 나도 한동안 영화를 볼 때 '의미 찾기'에 급급했었다. 별 전달력도, 메시지도 없는 영화에 대해서 안 좋은 소리도 하곤 하며 이와 비슷하게 현재 내 상황을 의미 없는 시간들의 연속이라며 비관했다. 마치 내가 목적이 없는 패배자인 것처럼 스스로에게 굴었다. 이 영화는 그동안 내가 마음 한편에 삶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목적'이라는 커다란 압박감 때문에 잊혔던 것들을 끄집어냈다. '내가 감당해야할 인생을 있는 그대로 충분히 즐기는 것.' 난 이것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좋아하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피터가 가모라에게 지구에서의 음악을 들려주자 가모라는,

"What do you do with music?"

- 음악들로 뭘 할 수 있는데?

"Do? Nothing. Listen to it or you can dance." 

- 뭘 해? 그냥 듣는 거거나 춤이나 추는거지


나는 이 대사가 정말 좋다. 음악의 목적이 분명하면서도 없다는 이 말은 사실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것 그 자체에 대해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 영화는 새로운 삶의 깨달음을 주는게 아니라 우리가 태어남으로 인해 살아가야할 삶에 대한 원초적인 것들을 상기시켜 주기에 더 의미가 크다. 


내일과 같은 오늘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가진 것들을 한번쯤 돌아보고 격려해주는 것이 아닐까.

당신이 있는 바로 이곳이 삶의 가치가 넘쳐 흐르는 바다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국가안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정당한가? <보디가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