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경영혁신학회 35기 박다빈
국내 건설업계가 인력 고령화 및 노동생산성 저하로 위기를 맞았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30세 이하 건설 기술인력은 지난 20년간 3분 1 수준으로 급감한 반면, 51세 이상 인력은 10배 이상 증가하였다. 심각한 수준의 인력 고령화 문제는 결국 건설업 노동생산성 하락으로까지 이어졌는데, 2021년에는 국내 주요 산업 중 유일하게 생산성 감소세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추세에 근거해 한국은행은 건설업계의 노동생산성이 20년 내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기도 하였다.
인건비의 비중이 78%인 건설업계에서 이는 치명적인 문제이다. 노동생산성이 낮아지면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인력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영업이익률 저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국내 건설 외감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2021년 6.0%에서 2023년 2.5%로 감소했으며, 올해 1분기에도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으로써 건설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BIM(건설정보모델링) 기술이다. BIM 이란 3차원 모델을 토대로 시설물의 전체 생애 주기에 발생하는 모든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모형을 뜻한다. 쉽게 말하면 실제 건축물을 화면 속에 옮겨 놓은 사본, 즉 ‘디지털 트윈’을 이용한 모델링 작업, 또는 관련된 건설 작업 전반을 의미한다. BIM이 이전의 기술들과 다른 특별한 지점은 시설물의 형상뿐만 아니라 내부 자재의 구체적인 속성 등을 데이터화하여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인데, 이러한 정보를 공정관리 업무에 활용하면 효율적인 비용 관리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효율성 개선이 가능하다. 건설 과정에서의 효율성 향상은 곧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업계는 BIM 기술의 실용적인 활용처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국내 건설사 중 이러한 BIM 기술을 빠른 시기부터 주목하여 그 기술력을 통해 유의미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은 현대건설이다. 현대건설은 BIM 기술을 2010년부터 주목하여 길러왔으며, 그 역량을 인정받아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외 수주한 바 있다. 일례로 지난 5월, 파나마 운하 이후 최대 규모의 인프라 건설 계약으로 일컬어진 약 3.4조 규모의 계약 건에서도, 현대건설은 체계적인 BIM 수행 계획을 높게 평가받아 입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내 BIM 활용 공정의 최고봉인 현대건설 역시 여전히 노동생산성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이는 현대건설이 아직 BIM 데이터를 활용한 AI를 개발하고 운용하는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AI가 생산성 문제 해결의 핵심인 이유는 BIM 데이터를 활용한 AI를 상용화 가능한 수준으로 구현했을 때 극적인 수준의 노동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 건설 정책 연구원에 따르면 BIM에 AI를 접목시킨 건설 자동화 기술이 전사적으로 도입되었을 때 건설 노동생산성을 40%까지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지능형(AI) BIM이 실제로 구축된다면 일정⋅비용⋅품질⋅안전 관리 등 전방위적인 효율성 개선이 가능한다. 예를 들어 생성형 AI가 BIM 모델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더 정확한 자재 수량 산출과 비용 예측을 수행하거나 과거 데이터와의 비교 분석을 통해해 잠재적인 안전 위험을 예측할 수 있다. 즉 BIM과 생성형 AI의 결합은 반복적이고 시간 소모적인 작업을 자동화하고, 더 정확한 예측과 최적화된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형태로 설계부터 시공, 유지 보수에 이르는 건설 프로젝트의 전 과정에서 노동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건설은 왜 높은 수준의 BIM 기술 이해도 및 활용도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술에 접목시킬 AI 혁신을 주도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을까?
AI를 통한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함에도 AI 도입이 요원한 가장 큰 이유는 이를 개발하는 데에 필요한 디지털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2022년 연구에 따르면 데이터 확보 및 품질 문제 (41.1%)가 BIM 관련 AI 개발을 미진하게 만드는 가장 큰 문제 요인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현대건설의 BIM 데이터 확보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로는 절대적인 디지털 데이터의 수 자체가 적다는 점이 있다. 먼저 과거 2D 데이터를 3D 등 적절한 형태로 변형시키는 기술이 완전히 개발되지 않아 예측을 위한 정제된 과거의 디지털 데이터가 부족하다. 기업, 대학 차원에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문제를 해결하기 충분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실정이다. 동시에 중소기업들의 BIM 도입이 늦어 최근까지도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생성된 데이터의 비중이 높다는 문제도 있다. BIM을 도입하기 위해 필요한 추가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대다수의 업체가 도입을 주저하다 보니 기술이 있어도 결국 협력설계에서의 활용이 어려워 도입을 꺼리게 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업계 특성상 보안 등의 문제로 데이터 공유를 기피한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도로공사 스마트 건설 사업단 조성민 단장에 의하면, 경험을 기반으로 건설이 진행되다 보니 그 경험을 데이터화 한 기업들은 건설 현장의 정보 개방, 즉 데이터 공유에 있어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실정이다. 같은 간담회에 참여한 현대엔지니어링 이창용 부장 역시 데이터 공유에 대해 “단기간에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어 절실한 부분이지만 각 회사들 나름의 입장과 보안 정책 등에 의해서 현실적으로는 실현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악조건들 사이에서 AI 개발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필요한 현대건설은 데이터 확보에 있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앞선 이유들로 AI 개발을 위한 디지털 데이터 확보가 어려운 현대건설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데이터를 확보하고, 미래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필자는 현대건설이 국내형 저가 BIM 협업 소프트웨어를 개발, 국내 기업들을 플랫폼 서비스 구독자로 유입시킴으로써 BIM 데이터를 확보한다는 전략을 제안한다.
BIM 솔루션 사업을 통해 AI 개발을 위한 BIM 데이터 확보 전략의 유의미함은 미국의 Autodesk 사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Autodesk는 국내 80% 점유율을 차지할 만큼 시장 장악력이 높은 글로벌 BIM 솔루션 선도 기업이다. Autodesk는 BIM 솔루션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BIM 데이터를 축적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실제로 AI 개발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 결과로 2023년에 Autodesk AI를 최초 공개한데 이어 올해에는 Autodesk 어시스턴트를 출시하기도 하는 등, 솔루션 사업을 통한 데이터 축적의 유의미함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실효성에도 불구하고 현대건설의 BIM 플랫폼 솔루션이 유의미한 수준의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서 언급됐던 것처럼 현재 BIM 솔루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Autodesk의 BIM 소프트웨어 ‘Revit’은 국내 시장 80%라는 독점적인 점유율을 갖고 있다. 협력사와 동일한 소프트웨어를 쓰는 것이 유리한 환경에서 이러한 독점적인 지위를 갖고 있는 소프트웨어가 시장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현대건설 자체 솔루션의 시장 장악 가능성에 의문을 품게 한다.
하지만 희망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국내 시장을 우선적으로 타겟하여 가격 경쟁력을 갖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현대건설이 필요로 하는 BIM-AI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수준의 고객을 확보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엔지니어링 데일리의 조사에 따르면 BIM 엔지니어의 57%가 ‘가격이 같다면 Autodesk 사가 아닌 타사의 제품을 사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국내 BIM 관련 가장 큰 이슈가 도입에 드는 비용이다 보니, BIM 소프트웨어를 선호하는 기준으로 85.7%가 ‘합리적인 가격’을 택했고, 이 때문에 번들 형태로 가격 경쟁력을 갖춘 Autodesk 사가 선택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실제로 서영엔지니어링, KG엔지니어링, 삼안 등의 국내 기업들이 자체 플랫폼 제작에 발을 들여, 국내 특성에 맞춘 저가 제품으로 일정 수준 고객 유치에 성공한 바 있다. 시장 장악에까지는 실패했던 그들과 달리 자본이 충분한 현대건설이 데이터 확보를 위해 일정 기간 출혈을 감수하는 전략을 펼친다면 국내 시장에서 유의미한 고객군을 확보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경제 성장에 미치는 AI의 영향에 대한 23년 골드만삭스 리포트에 따르면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에 건축과 엔지니어링 인재의 37%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다시 말해 전체의 37%에 해당하는 가치를 AI가 도맡아 생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BIM을 활용할 수 있는 AI를 선점하는, 즉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이 향후 업계의 선두 주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행인 점은 AI 도입에 적극적인 영국, 미국,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국가들 역시 아직 AI 기술을 상용화 가능한 수준으로 개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Autodesk가 소개하는 AI 관련 서비스들 역시 이상적인 수준까지 개발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지능형(AI) BIM이 2030년대에는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때가 되면 BIM에 AI를 접목할 수 있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의 건설 효율성 차이가 급격하게 벌어질 것이며, 그 기술력을 빠르게 확보하는 기업이 막강한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때문에 생산성 문제 해결에 있어 앞으로의 10년은 현대건설에게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정리하자면 현대건설은 BIM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AI를 개발하여 노동생산성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 확보의 걸림돌을 극복할 수 있는 자체 BIM 솔루션 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국내형 저가 솔루션 전략으로 국내 고객 확보에 성공하여 BIM-AI 기술력을 갖추게 된다면, 현대건설은 향후 업계를 이끌어 나갈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도약할 새로운 장을 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연세대 창의기술경영학과 박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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