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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Jun 21. 2024

발수성 모발과 에어랩

어우 머리 진짜 많네요

나는 머리숱이 대단히 많다. 미용실에 가면 늘 ‘어우… 머리숱 진짜 많네요’라는 말을 듣는다. 간혹 약간의 경악스러움과 막막함이 담긴 표정을 보이는 미용사도 있다. 숱만 많으면 좋으련만, 반곱슬에다가 모발도 두껍다. 그래서 여름이면 드라이기 바람 세기 최고, 온도 최고로 설정해 놓고 땀이 날 정도로 오래 말려야 70퍼센트 마른다. 오죽하면 미용사가 내 머리를 말리다 말고 잠깐 쉬고 오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 말을 지독히도 안 듣는 모발이다 보니, 파마를 해서 탱글한 컬이 나온 경험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내 머리는 왜 파마도 잘 안 먹고 지저분할까?' 늘 의문이었지만 해답은 엄마도, 지식IN도 몰랐다. 그런데 최소 20년은 영업한 듯 보이는 여대 앞 미용실에 7만 원짜리 매직을 하러 갔을 때, 내공 가득해 보이는 사장님은 나의 푸념을 듣더니 우아하게 말했다.



“발수성 모발이라 그래요~”



운동화 살 때 ‘발수 가공’이란 말을 들어 보긴 했는데, 그게 머리카락에도 해당하는 말이었단 말인가. 알고 보니, 방수 처리한 것처럼 물을 튕겨내는 성질을 가진 머리카락을 발수성 모발이라고 한다. 머리가 두꺼워 물뿐만 아니라 파마약도 튕겨내니 남들보다 중화 시간을 더 들이지 않으면 파마가 성공할 리 없는 모발이었던 것이다. 


아아,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미스터리가 하나 풀리는 순간이었다. 세수 다 하고 나면 눈썹에만 물이 잔뜩 고여있던 이유, 비를 맞으면 정수리에 방울방울 맺혀있던 물방울들, 머리를 하루 안 감아 약간 기름졌을 때 오히려 ‘오늘 머리 차분하고 예쁜데?’ 라며 칭찬을 받았던 나날들… 모두 '발수성 모발' 때문이었다. 적을 알면 백전 백승이라고, 나는 물과 기름을 튕겨내 부스스하고 잘 마르지 않는 머리를 다루는 법을 하나씩 터득해 갔다.


먼저 다이슨 에어랩을 샀다. 자신을 위해 50만 원 넘게 지출해 본 건 배낭여행과 월세방 보증금 밖에는 없는 나에게 꽤 화끈한 소비였다. 마침 친구가 몇 번 쓰고 안 쓰는 에어랩을 시중가보다 10만 원 저렴한 50만 원에 팔겠다고 해서 저렴하게 업어왔다. 우선 머리를 말리는 시간이 20분에서 3분으로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일반 드라이기 쓸 때는 머리 말릴 걱정에 샤워하러 가는 길이 천근만근이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씻는 게 스트레스가 아니다. 오히려 최첨단 기술로 머리 말릴 생각을 하면 욕실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대신 가계부에 10개월간 5만 원씩 고정 지출을 미리 추가해 두었다. 일시불로 중고 에어랩을 산 것이지만, 큰돈 썼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마치 할부로 산 것처럼 가계부에 적어둔 것이다.)


그리고 웨트헤어를 연출할 때 쓰는 '폴리시 오일'을 바르기 시작했다. 기름기 없이 부스스한 머리에다가, 모발에 흡수되지 않고 모양만 잡아주는 식물성 기름 '폴리시 오일'을 발라주어 인공 머릿기름을 도포한다. 두툼한 모발이 차분해진다. 



요즘엔 에어랩과 오일 덕분에 중구난방 발수성 모발을 촥 가라앉혀 깔끔하게 다닌다. '나'라고 해서 내가 날 가장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나에 대한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을 사랑한다. 역시 인생은 나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터럭이 많아 슬픈 인간






{이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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