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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Jun 24. 2024

5월의 선물

작지만 확실한 선물

가족들에게 소소한 선물 주는 것을 즐긴다. 월 80만 원 생활자이기 때문에 대단한 선물은 못 한다(참고). 큰돈을 담지 못하는 가계부라서, 큰 건 아니어도 실용적인 선물을 한다. 가정의 달 5월에는 가족들에게 호밀빵과 쪼리, 그리고 위스키를 선물했다. 



호밀빵 16,300원

우리 동네엔 '샹도르'라는 빵집이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이 빵집엔 비밀이 하나 있다. 매달 1일, 2일, 3일에 현금 결제를 하면 결제 금액의 50%를 상품권으로 증정하는 행사를 한다. 만 오천 원어치 빵을 산다면, 무려 칠천오백 원어치 상품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한 달 안에만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월초에 빵을 사놓고 먹다가, 월말에 빵이 똑 떨어지면 상품권을 사용해 곳간을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다. 자취생에게 고마운 빵집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빵은 블루치즈가 들어간 식사 빵인 '고르곤졸라 깜빠뉴'인데, 가족들에게 반응이 좋았던 것은 호밀빵이다. 장발장이 훔쳐 간 빵만큼이나 큰 빵 한 덩이를 만 천 원에 파는데, 발효 도우로 새콤하면서 담백한 맛이라 식사 빵으로 제격이다. 


행사 날 샹도르는 붐빈다. 호밀빵 한 덩이와 나를 위한 무화과 깜빠뉴를 들고 5분 정도 줄을 섰다. 호밀빵이 워낙 커서 봉투 두 개로 나눠주시는데, 그걸 그대로 가져가 엄마와 동생에게 한 봉지씩 쥐여주었다. 빵 선물을 받은 동생은 다이어터인 자신이 먹을 수 있는 호밀빵의 등장을 몹시 기뻐하며 당장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와 빵을 찍어 먹었다. 그리고 한동안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쪼리 9,900원

월 80만 원 생활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로 '핫딜 커뮤니티'를 꼽은 적 있다. 생필품을 핫딜로 저렴하게 구매한다면 생활비를 아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저렴한 핫딜 물건을 딱 1개 샀을 때의 이야기다. 저렴하다고 가족 거까지 몽땅 사는 바람에 오히려 돈을 더 쓰게 될 때가 있다. 50퍼센트 할인하는 물건을 싸다고 동생과 어머니 것까지 구매하면 결국 1.5개 구매한 셈이 된다. 벗어날 수 없는 아이러니랄까.


하루에 최소 5번은 핫딜 커뮤니티에 들어간다. 단순히 싸다고 사지 않고 정말 필요한 것만 사려고 노력하지만, 50퍼센트가 넘는 할인율을 발견하면 이성을 잃는다. 며칠 전에는 브랜드 쪼리가 구천구백 원으로 파격 할인하는 것을 발견했다. 마침 여름 슬리퍼가 없던 터라 내 것 하나를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가족들이 아른거렸다. 혹시나 하는 맘으로 가족들에게 쪼리 필요한 사람 있냐고 메시지 보냈더니,


엄마: “까만색 쪼리는 있는데 밝은 색 쪼리가 필요했어. 240이면 될 듯!”

동생: “웅니, 나는 블랙 240! ”


결국 구천구백 원짜리 세 개 사서 이만 팔천구백 원을 소비했다. 요즘 이만 원이면 카페 가서 커피랑 케이크 먹은 정도니까... 나름 합리적인 소비였다며 자기 위로했다.



와일드터키 54,000원

어버이날 선물로 뭐가 좋을까. 고급 한정식집에서 점심 식사? 안마기? 가족여행? 금 목걸이? 용돈 박스? 카네이션 화분?


어릴 땐 어물쩍 서툰 글씨로 쓴 편지로 넘어갔던 어버이날이 언젠가부터 부담스러워졌다. 아니, 정확히 취업 후부터 부담스러워졌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면서 팀 점심 대화 주제는 '무엇을 선물할 것인가'로 흘러간다. 나와 동년배인 팀원은 용돈과 꽃을 선물할 예정이라고 했고, 또 누구는 해외여행을 선물할 예정이라고 했다. 별생각 없던 불효자는 그때부터 망했음을 직감했다. 난. 뭘. 해드려야 하지. 


어버이날 전주, 주말을 맞아 어머니와 접선했다. 마트에 장 보러 갔는데 어머니가 위스키에 관심을 보이는 것 아닌가! 한 병에 5만 원 상당의 위스키, 와일드 터키였다. 어머니는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미국에서는 없어서 못 먹는 위스키'라며 이 술을 추천한 영상을 봤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나도 똑같은 영상을 보았다. 


‘엄마가 갖고 싶은 것이 있다?’ 효자인 척하는 불효자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내가 사줄게!”


어머니는 병을 들어 올리는 내 손목을 만류했지만, 힘이 거의 들어가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갖고 싶은 모양이었다. 쿨하게 일시불로 5만 원이 넘는 위스키를 질렀다. 외로운 엄마의 빈 둥지에 친구가 되어주길 기대하며.


어쩌다 보니 나는 어머니께 주로 술을 선물해 왔다. 송 여사는 좋은 음식과 좋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혼자 살지만 늘 제철 채소로 김치를 담그고, 그 김치를 안주 삼아 저녁에는 홀짝홀짝 안동소주를 곁들일 줄 아는 여자다. 한 마디로 먹을 줄 아는 사람이란 말이다. 사실 취업 선물도 전통주 세트로 했다. '이강주', '느린 마을 막걸리', '문배주 '등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전통주를 주문해 집으로 보내주었다. 어머니는 야금야금 게 눈 감추듯 모두 마셨다. 그리고 그 술병에 참기름을 넣어 내게 돌려줬다.


어버이날 선물이 고민된다면, 남들이 무엇을 선물하는지 살피기보다는 '나의 어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개중 '당신이 돈 주고 사기 아까워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해 보자. 그 시절 당신이 개발새발 쓴 편지 한 장만으로도 행복해하셨던 분들이니 말이다.  


▲ 할인 찬스를 놓칠 수 없다.






{이솔 올림}

작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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