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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Sep 20. 2023

그래 나 친구 없다! 20년 만의 인정

내향적인 나와 잘 지내는 법

{EP14}


서울살이에서 배운 것
2. 내향적인 나와 잘 지내는 법



나라는 인간과 이십여 년을 사귀며 알게 된 바가 몇 가지 있는데 가장 주요한 발견은 이것이다.

'나는 분명 외향적인 타입의 사람은 아니다.'


'기안 84와 같은 MBTI(INTP)를 가지고 있다'는 말만으로도 어느 정도 나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만의 세계가 분명해서 사람과 어울리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TV에 나오는 또래 아이돌처럼 꺄르륵대며 마냥 밝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은 아니다. 평소에도 긴장감이 심한 편이며, 감정 기복이나 표정 변화가 크지 않다. 안심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할 때 비로소 편해진다. 에너지가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내 일정 범주 외의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써가며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다.

1학년 화성반 친구 없는 솔이

사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내향적인 성격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급식 먹을 때도 체육 시간 때도, 반 전체가 함께하는 단체 생활이기 때문에 '친구 없음'은 그닥 큰 문제가 아니었다. 비록 나의 어머니 송여사는 친구가 없는 딸을 걱정했다. 친구를 사귀길 바라며 십만 원이란 거금을 들여 걸스카웃 단복을 사입혀 캠프에 보내기도 했다. 하긴, 딸의 첫 운동회를 보러 갔는데 친구들이 응원가를 부르고 있을 때 딸이 뒤에 혼자 앉아 개나리 나무껍질을 벗기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면, 나라도 걱정했을 것 같긴 하다. 내가 친구를 사귈 맘이 딱히 없었던 것도 맞지만, 반대로 친구들 입장에서도 나는 딱히 사귀고 싶은 친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체육 시간에 피구를 하기 위해 가위바위보에 이긴 사람이 원하는 팀원을 선택할 때도 나는 항상 마지막에서 두 번째쯤 선택되는 아이였다. 초등학생은 인간이 아니고 (사회화가 덜 된) 짐승이라고 했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상처받을 만한 일인데, 당시에는 크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부터는 달라졌다. 세상을 보는 눈이 '나 자신'에 갇혀 있던 초등학교 시절과 달리, 내 주변으로 시각이 넓어지면서 비교가 시작됐다. 똑같은 교복을 입혀놔도 남들과 다른 점은 귀신같이 티 나던 시절, 나의 서투름은 귀신같이 티가 났다. 항상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내 동생만 봐도 나의 발가벗은 서투름은 쉽게 들켜버렸다. (ENFP인 동생은 사람 좋아하고 인기도 많은 타입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도 이제는 친구 사귀어야 할 것 같은데, 세상 어려운 일이었다. 서투른 탓에 크고 작은 실수도 잦았다. 그 덕에 교우 관계는 극히 좁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각자 맘을 터놓을 수 있는 친한 친구를 최소 한 명씩은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잘못된 성격을 가진 틀린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시작되었다. 내향적 성격을 가진 나 자신이 몹시 못마땅해했다.


바꾸고 싶었다. 외향적인 친구를 부러워하기도, 따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태생부터 타고난 내성적 성격은 바꾸려야 바꿀 수 없는, 이를테면 배꼽 모양 같은 존재였다. 비유가 좀 날것(Raw)이긴 하만 아쉽게도 이만한 비유가 없다. 


이런 내향적인 성격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무지한 어른들은 종종 나의 내향적인 성격을 '밝지 않음'으로 해석하곤 했다. 살면서 딱 두 번, ‘너는 좀 밝아질 필요가 있다’는 오지랖을 들은 적 있다.





#첫 번째 오지랖

첫 번째 오지랖은 19살 때의 일이다. 수능이 끝난 겨울, 은근한 로맨스를 꿈꾸며 이천의 한 스키장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내가 맡은 파트는 ‘판매 부스'업무였다. 스키장에 입장하는 손님의 표를 끊어주고 인사하면 되는 간단한 역할이었다.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산 넘고 물 건너 이천에 도착했다. 20인치짜리 캐리어를 끌고 입사 교육을 듣기 위해 허름한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끽해봐야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앳된 아이들이 가득했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겠지. 나이 든 관리자가 하나씩 이름을 호명하며 맡은 업무를 말하며 주의 사항을 얘기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2시간에 걸친 이동시간에 에너지가 고갈되어 삶은 가지처럼 축 처진 상태였지만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앞으로 펼쳐질 장밋빛 스키장 생활이 잔뜩 기대되었다. 물론 이런 설렘을 표정에까지 드러내진 않았다. 표정 따위에 신경 쓸 힘도 없었을뿐더러, 딱히 무슨 표정이어도 상관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사실 지루한 교육을 듣는데 밝은 표정인 사람 찾기가 더 어려웠다) 적당한 무미건조함으로 '네'라고 대답하자 관리자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의 업무를 '리프트 관리'로 바꾸었다. 의도가 뻔히 보였다. 원래 배정받았던 판매부스 업무와 달리, 얼굴을 보일 일이 없는 업무였다. 


스키장 오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업무를 갑자기 바꾸는 처사에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는 교육이 끝난 뒤 나를 불러 세웠다.

'고작 19살밖에 안 됐는데 왜 이렇게 애가 어둡냐, 밝아도 모자를 나이에 왜 이렇게 어두워. 좀 밝게 살아.'


그 시절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내향적인 성격이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해 잔뜩 주눅이 들었다. 내가 한 거라곤 한 음절짜리 대답과 무표정밖에 없는데, 내향적이었던 것일 뿐인데, 어둡다는 오명을 들었다. 내가 만약 남자였다면 이런 소리 분명 안 들었겠지 싶다가도 그냥 재수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더 어이없는 건, 알고 보니 담당자의 실수로 빠른 연생이어서 만 18세였던 나는 계약이 불가한 나이였고, 그날로 캐리어를 싸서 집에 돌아왔다는 것이다.


#두 번째 오지랖

두 번째 오지랖은 22살 때였다. 나는 대학 생활 내내 뭔가에 쫓기기라도 하듯 대외활동을 끊임없이 했고, 한 번도 충분한 인턴을 세 번이나 해댔다. 한 번은 5개월간의 인턴 생활을 끝낸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바로 다음 인턴을 계약한 적이 있었다. 그림자처럼 쫓아오는 불안에 뇌가 절여져서 한 잘못된 선택이었다. 번아웃으로 인해 정신과 육체에 병이 들어 계약 기간보다 일찍 그만둬야 했다. 관련 상사와 퇴사 면담을 했다. 그는 스키장에서 들었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나이에 비해 너무 어둡다며, 좀 밝아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말.


머리가 좀 컸다고 첫 번째 오지랖 때와 달리 화딱지가 났다.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 맘대로 속단하는 태도도 싫었지만, 내가 타고난 성향이나 상황을 알지 못하면서 멋대로 '밝지 않음'으로 라벨링 하는 게 화가 났다.


그럼에도 내가 틀렸단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또래 친구들과 달리 매일 연락을 하는 베프도 없었고, 대학 친구들과 친하지도 않았으며, 남자친구도 없었다. 이상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 지배당했다. 노력하면 점수가 오르는 공부처럼, 외향적인 성격도 연습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0대 초반엔 내내 일부로 외향적인 공간에 나를 밀어 넣었다. 연합 동아리라던가, 미팅이라던가, 각종 또래 모임이라던가... 억지로라도 그런 상황에 처해 외향성을 좀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마치 클럽에서 모두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멋들어지게 리듬을 타고 있는데 나 혼자 두둠칫 뚝딱거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점점 외향적인 옷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바야흐로 2020년대가 되었고, 나는 Love yourself가 한바탕 휩쓸고 간 시대를 살게 되었다. 소중한 이십 대를 외향적이라는 틀린 정답에 맞추기 위해서 노력했던 나는, 더 늦기 전에 다른 사람처럼 되는 게 아니라 나를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글을 쓰며 내 머릿속에서 떠다니던 감정이나 생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배낭여행을 떠나 나와 더 친해지기도 했다. 점점 내향적이고 소극적인 나 자신을 인정해 주게 되었다. 친구 없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생긴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주 당연하게도 나는 나를 제일 잘 안다. 세상의 그 어떤 누구도 나만큼 오래 나와 시간을 보내 본 적이 없으며, 그 누구도 나만큼 나의 단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을 것이다. 어쩌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또 자기 자신과 잘 사귀는 것이 모든 인간이 이번 생(生)에 부여받은 미션일지도 모른다.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공통점을 지닌 비슷한 인간상일지라도, 우리 모두 다른 질문이니, 정답도 다르다.


오히려 외향성을 향한 강박이 사라지자 자연스레 주위에 사람들이 생겼다. 괜히 인싸인 척하려고 어색한 모습을 보이는 일이 줄었고, 나만의 찐따 매력으로 자연스레 관계를 맺게 되었다. 물론 그 수가 많진 않다. 그럼에도 매일 연락하진 않지만, 귀여운 고양이 영상을 보내줄 수 있는, 막창 맛집을 보내며 같이 가보자고 물어볼 수 있는 그런 소중한 인연들이 생겼다.




대한민국에서만 20여 년간 살아본 결과, 우리나라는 외향적인 성격에 대한 강박이 있다. 내향적인 성격은 틀린 것이며 고쳐야 하는 단점이다. 특히 젊은 여성이 내향적 인간으로 사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젊은 남성이 그랬다면 과묵하다며 좋아했을 거면서, 젊은 여성은 깨발랄하고 활동적이길 기대한다. (이 얘기는 길어질 것 같으니, 다른 글에서 풀어보겠다)


'그래 나 친구 없다!'라고 인정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이렇게 공개적인 공간에서 친구 없는 인간임을 공표하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자기반성. 내향적인 스스로를 평생 괴롭혀 온 것에 대한 사과이다. 그리고 끔찍이도 싫어했던 나를 좀 아껴주겠다는 약속이다. 두 번째는 나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이들을 위해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받아들이듯, 외향성이 맞고 내향형은 틀리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봐 걱정된다. 그런 이들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냥 맘 편한 대로 살자고. 노력할 거 많은데 성격까지 노력해서 바꿔야 한다면 너무 가혹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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