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사다가 깨달은 인생의 진리
{EP13}
서울살이에서 배운 것
1. 섬세함의 정도가 다른 사람
혈혈단신으로 서울 살이를 하다 보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인생을 살아가는 법' 따위를 제정하게 되곤 한다. 이번 에피소드는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쉽게 상처받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나만의 법칙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상처를 잘 받는 편이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의 의도를 맘대로 곡해해 스스로 상처를 낼 때도 있고, 어떨 땐 그저 상대의 별거 아닌 말에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 가끔은 유난히 내 맘에 쉽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다. 마치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게 재능을 타고난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 속상한 것은 그 사람 때문이 아니다. 다름 아닌 나 자신 때문이다. 상대방이 상처 주려는 나쁜 의도가 전혀 없이 한 행동이나 말에도 상처받기 때문이다. 의도 없는 행동에 유난스럽게도 상처를 받았으니 나를 탓할 수도, 상대를 탓할 수도 없다. 결국 그냥 막연히 상대가 미워져 서서히 멀어지는 형태를 취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하곤 했다.
이렇게 쉽게 상처받고 쉽게 손절하던 내가, 언젠가부터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때면 항상 떠올리는 나만의 법칙을 제정했다. '우리는 섬세함의 정도가 비슷한 사람과 사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사포’였다.
카를로는 평화주의자다. 도파민을 자극하는 활동보다도 조용히 집중해 온전히 끝낼 수 있는 것들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깨알 같은 비즈를 이어 붙여 피카추 따위를 조립하는 '펄러비즈'나, 나무를 자르고 붙이는 '목공'처럼 손으로 하는 취미를 좋아한다. 집중해서 눈이 빠져라 조립을 하고 있으면 잡생각이 안 나고 시간도 빠르게 흘러서 좋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생일선물을 정했다.
'건담 프라모델을 선물해 줘야겠다!'
선물의 항목을 골랐으니, 사는 건 쉬울 줄 알았는데 어째 고를수록 어려웠다. 건담의 세계는 빙산의 일각 그 자체였다. 겉에서 보이는 건담 피규어만 띡 산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유명한 건담 커뮤니티 카페에 들어가서 '입문'을 검색하고 간단한 공부를 마친 결과, 건담 조립을 위해서는 잡다한 준비물이 많이 필요했다.
건담을 자를 때 필요한 니퍼와 나이프
완성된 건담을 코팅할 마감재
건담 사이사이를 까맣게 채울 먹선용 마카
완성된 건담을 전시할 액션 베이스
건담의 자른 부분을 매끄럽게 만들 사포
…
정작 주인공인 건담은 1시간 만에 골랐는데, 적당한 가격과 퀄리티의 부재료를 고르는 게 몇 배는 더 오래 걸렸다. 그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차지한 건 다름 아닌 사포였다.
만들기 능력이 전무한 나에게 사포란, 그냥 문구점 가서 ‘사포 주세요~’하면 손에 쥐어지는 A4사이즈의 까끌한 쥐색 종이었다. 그런데 건담용 사포는 달랐다. 거칠기 정도를 기준으로 열 가지가 넘는 단계로 나누어져 있었다. 가장 거친 180방 사포부터, 매우 부드러운 2,000방 사포까지. 인터넷으로 주문하기 전에 거칠기를 가늠해 볼 수 없으니, 얼마나 까칠까칠할지는 택배가 와봐야 알 수 있는 문제였다. 게다가 하나에 가격이 3천 원에 달했다. 뭘 살지 몰라 여러 개 샀다가는 건담보다 비싸지는 것이었다.
모든 거칠기마다 장점과 용도가 있다. 거친 사포는 잘 갈리기 때문에 넓은 부분을 연마할 때 좋지만, 그만큼 스크래치가 잘 보인다. 부드러운 사포는 세심한 갈리기 때문에 건담을 완성하고 마무리 단계에 사용하기 좋다. 하지만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더 힘이 든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가장 많이 쓴다는 적당한 거칠기의 320번 사포를 하나 구매했다. (원래는 거친 사포 한 장, 부드러운 사포 한 장을 사서, 건담 만드는 초기 단계와 마지막 단계에 각각 쓰는 게 맞지만, 입문용으로 어느 단계든 무난하게 쓸 수 있는 적당한 거칠기를 구매했다)
다양한 거칠기를 가진 사포는 어쩌면 사람의 마음과 닮았다. 내 맘의 입자는 포도알만큼 듬성듬성한데, 참깨만큼 촘촘한 입자를 가진 사람과 무리해서 어울리려고 한다면 자연히 내가 갈리게 되어있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포도알만 한 사포인 내가, 수박만 한 사포를 가진 사람의 맘을 갈아버릴지도 모른다. 마음은 상대적인 거니까. 거칠기 모두 제각기 장단점이 있는 것처럼, 상처를 잘 받는 사람도, 상처받을 일인지 잘 분간 못 하는 무던한 사람도, 그저 거칠기가 다를 뿐이다.
가끔 상대방의 의도와 달리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상대는 악의없이 뱉은 말이, 나에게는 그 말이 화살이 되어서 명중하는 때가 있다. 어느 날 호의를 가지고 가로수길 맛집 정보를 보내줬는데 답장을 못받은 적이 있었다. 게다가 읽씹이었다. 기분이 안 좋았다. 스멀스멀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사람 날 싫어하나?'부터 시작해서 '내가 뭐 잘못했나'하는 불필요한 생각까지 들어 마음이 불편했다.
이렇게 상대의 행동을 자의적으로 멋대로 해석하며 스스로 상처를 주고 있을 때, 이젠 잊지 않고 사포를 떠올린다. ‘이 사람이랑 나랑 거칠기 정도가 다른가 봐~' 하고 넘겨버린다.
물론 상대가 지닌 섬세함의 정도는 부딪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지레짐작으로 피하기보다는 일단 부딪혀 봐야 한다. 부딪혔을 때 나의 섬세함이 갈리는 정도라면, 즉 나의 맘에 상처가 생긴다면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이 좋다. 억지로 어울리기 위해 부딪혀 나를 축내는 대신, 가만히 사포를 떠올리자. 그 사람을 탓할 것 없다. 그냥 우리는 섬세함의 정도가 다른 사람일 뿐. 누군가의 마음이 갈리는 불상사를 만들지 말자.
물론 차이를 인정하고 용감하게 계속 부딪히며 서로 갉고 또 갈기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도 좋다. 하지만 가끔은 내 맘이 갉갉 소리를 내며 갈리기 전에 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도망치는 것도 때론 용감한 일이니까.
우리의 마음이 사포임을 잊지 말자.
나와 맞지 않는 거칠기를 가진 사람과 어울리고자 '너무' 노력하진 말자.
그러다간 내가 다 갈려버릴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