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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Aug 11. 2023

서울 상경, 그 저평가된 행위에 대하여.

서울에 자리 잡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코찔찔이

{EP11} 


서울살이는 다소 저평가 받는 측면이 있다. 일명 서울 공화국 대한민국에서는 이십여 년간 살아온 고향을 떠나 서울에 자리 잡고 사는 삶의 형태가 너무 흔하다 보니 너무 쉽게 별거 아닌 행위로 여겨진다. 왜냐면 너무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니까. 다들 그렇게 하니까.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말이 통하는 같은 나라에서 지역만 옮긴 것일 뿐이지만, 평생 살던 동네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공부하고 인연을 만들고 밥벌이를 하며 사는 것은, '누구나 하는 평범한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대단한 일이다.




추운 겨울, 야근을 마치고 탄 택시에서였다. 나의 본가인 경기도 외곽으로 향했다면 1시간은 족히 걸렸겠지만, 서울 자취생이 된 내겐 이제 고작 사색할 시간 20분이 주어졌다. 강남과 강북 그 사이, 성수에 자리 잡은 나의 자취방은 속된 말로 '존버'의 결과물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인턴 시절까지, 나는 늘 편도 한 시간 반 이상의 통학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약 8년의 버티기 끝에 겨우 서울에 몸을 뉘이게 된 것이다.


원래 몸이 편해지면 정신머리가 불편해지는 법이다. 따듯한 히터가 틀어진 자동차 시트에 눕듯이 앉자마자 힘들었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늘 왜 이렇게 힘들지? 근데 오늘만 힘든 건 아니잖아. 내 삶은 왜 이렇게 고되고 힘들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동네에서 자리 잡으려고 노력하느라 힘들었나 봐 ‘




[상경]이란 단어의 의미는 '지방에서 서울로 감'이라고 한다. 여기서 [지방]이란 단어는 '서울 이외의 지역'을 뜻한다. 즉, 경기도인의 서울살이도 나름의 상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다.


지방인의 서울 상경 중에서도 특히 경기도인의 서울 상경은 아무것도 아닌, 지극히 당연한 행위로 여겨진다. 경기도는 서울과 함께 수도권이란 이름으로 묶이기 때문이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직장 다니고 있어요'라는 말을 바꿔보면 어떨까. '집에서 26km 떨어진 지역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요' 뭔가 새롭고 낯선 지역에 가서 적응하고자 노력하는 청춘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서울 상경 생활이 길어질수록 점점 눈에 익은 동네가 늘고 있다. 여기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정확한 지명을 대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길 돌아다녔던 과거의 나를 대답할 수는 있다.

대출도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전셋집을 구하러 갔던 이태원의 달동네,

아빠 연극을 보러 왔던
대학로 혜화 칼국수 골목,

면접을 보러 왔다가
떨어졌던 빌딩 숲 사이,

직장인들 사이 대학생 티를 벗지 못해
잔뜩 눈치를 보며 인턴 생활을 했던 동네,

대학생 때 4:4 미팅을 하러 왔던
어느 먹자골목,

필름 사진을 인화하러 왔던
종로 골목 ...

‘아, 저기서는 핫도그를 먹었는데. 맞아 그날 종로는 시위한다고 정신없었지.'

'이 빌딩에 면접 보러 왔다가 떨어졌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불합격해서 다행이다..’


기억은 문방구에서 팔던 테이프껌처럼 네모나고 동그랗게 말려서, 결국 어릴 때 엄마아빠 손을 잡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 채 서울 어딘가로 끌려왔던 나의 어린 시절까지 회귀한다. 기억나는 장소가 늘어갈수록 땅따먹기 하는 것 같은 기분에 짜릿해지다가도, 서울이란 낯선 도시에 적응하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코찔찔이가 생각나 가슴이 저릿해진다.


서울 상경, 남들이 다 하는 거라니까 어찌어찌해내고 있지만. 사실 나의 서울살이는 고군분투 그 자체였다. 사는 동네 이름만 들어도 부자인 게 뻔한 사람들을 만나 기(氣)도 죽어봤고, 늘 경기도-서울 통학이 어렵지 않은 양 거짓말을 떨었다. 눈칫밥 먹는 건 생활이었고, 아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는 서울에서 친구 사귀느라 고생하기도 했다.




떠오른 주마등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밝은 빛에 놀라 불현듯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택시는 모 백화점 앞에 정차하고 있었다. 연말을 기념하여 사람들의 소비를 촉진시키고자 붙였을 LED의 붉은빛이 어두운 차 안까지 스며들어 왔다. 가만히 네온사인을 바라보았다. 개인이 평생 벌 수 있는 부의 수준을 한참 넘어선 거대한 자본력이 결집된 백화점을 보다가 문득,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백화점이? 아니, 겁도 없이 연고도 없는 서울로 올라와서 용감히 살아 내고 있는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멋지게 살아 내고 있는 네가. 그냥 새로운 매일 살아 내고 있는 우리가.


서울이란 낯선 공간을 나의 세계로 만들고 있는 세상의 모든 내가, 모든 사람이. 너무 기특하고 대견해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러니까 결국 긴 글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 이미 너무 대단하니 지지 말자.


남들 다 이렇게 산다는 이유로 힘듦을 묵살하지 말고 적어도 자기자신은 과대평가하도록 하자. 새로운 지역이든, 직장이든, 학교든, 관계든, 모두 새삼스레 어렵고 또 대단한 일이다. 우리 스스로에겐 좀 더 관대해져서 적어도 자신의 대단함은 스스로 알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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