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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Aug 10. 2023

집을 꾸미고 살아야 하는 이유

25만 원짜리 월세방에 조금씩 취향을 담기 시작했다.

{EP10} 


미니멀 언니


25만 원짜리 월세방에 이사 오자마자 다짐한 것이 있다. 바로 최소한의 것들만 들여놓고 살자는 결심이다. 이 집에서 몇십 년 살 것도 아니고 내가 매매한 집도 아니니까,  괜히 이사할 때 귀찮지 않도록 최소한의 것들만 놓고 살고 싶었다. 


1년간은 이 결심을 잘 지켰다. 자취 생활을 시작하면서 사들인 가구가 손에 꼽을 정도다. 매트리스를 샀지만, 침대 프레임은 사지 않았다. 당근마켓에서 부엌용 팬트리를 나눔 받았고, 오늘의 집에서 침대 옆에 둘 서랍을 샀다. 그리고 왕자 행거와 앉은뱅이 테이블을 하나 샀다. 그뿐이다. 이렇게만 삶에 필수적인 것만 부족함 없이 들여놓았다.


심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최소한의 투자만 했다. 전 세입자가 두고 간 가스레인지는 점화 손잡이를 30초 이상 잡고 있어야 불이 붙어 요리할 때마다 매우 번거로웠지만, 그냥 쓰기로 했다. 심지어 손바닥만 한 팬 두 개가 붙어있는 차량용 선풍기로 여름을 나기도 했다.


이렇게 최소한의 것만 꾸리고 산다고 해서, 집을 꾸미고 싶은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진짜 내 집에 살게 되면 그때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차일피일 미루면서 살았다.


맥시멀 동생

언니가 미니멀 자취 생활을 할 때, 동생은 맥시멀 그 자체를 보여줬다. 동생은 스파크가 튀는 ENFP인데, 자신의 취향이 분명하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저스트 두잇 해버리는 친구다. 언니가 인턴 한다고 회사를 기웃거렸던 나이에, 동생은 하고 싶은 예술 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 (그 부분이 억울하긴 하지만, 나중에 호소하도록 하겠다)


그런 동생이 자취를 시작했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온갖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들여놓고, 하얗고 예쁜 침대 프레임 위에 매트리스를 놓고, 예쁜 원목 책상까지 구비했다. 무려 소파와 TV도 있다. 반려식물과 각종 소품은 얼마나 많은지. 소파엔 멋스런 담요를 깔아 두었고 카펫과 스탠딩 조명까지 갖추어 놓고는 아주 겁도 없이 진짜 집처럼 꾸며 놓고 멋들어지게 살기 시작했다.



동생의 책상 전경. 감각은 좀 있는 것 같다.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소한의 인테리어만 두고 실용적으로 사는 나의 집과 달리, 동생의 자취방은 진짜 '잡'스러웠다. 동생 집에만 가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언젠가는 이거 다 정리해야 할 텐데... 얘는 왜 이렇게 대책 없이 집을 꾸밀까'

 

동생이 참 미련해 보였다. 어차피 여기서 오래 살 것도 아닌데 이렇게 제대로 갖춰놓고 살면 나중에 이사 갈 때 얼마나 힘들려고 이러나.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생은 반대로 나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언니 집 보면 속상해. 언니도 예쁘게 잘 꾸며놓고 살면 좋겠어’
슬픈 눈으로 나를 (약간은) 불쌍하게 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감정이 실린 말에 사람은 약해진다. 그 말이 너무 진심 같아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살 빼면 이렇게 저렇게 입어야지'라는 생각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오지 않을 미래를 떠올리며 살다가, 결국 오늘도 내일도 미래도 제대로 살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어쩌면 나는 지금 '나중에 살 빼면 저런 원피스 입어야'라고 생각하면서, 살 뺄 노력이라곤 하지 않는. 그냥 '살 빼면~ 돈 벌면~ 부자 되면~'을 입에 달고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을 내일로 미루는 한심한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공식을 집 꾸미기에도 적용한다면, 나의 욕구에 충실해 집을 꾸미는 것이야말로 오늘을 제대로 사는 거다.



결국 오늘을 제대로 살기 위함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책의 교훈은 단 하나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살아라' 

내가 존경하는 직장 상사분께서 말씀해 주신 명언이다. 누구나 하는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막상 실천하면서 살기엔 무엇보다 어려운 진리. 


'2년 월세 계약 기간이 끝나면 얼마나 더 살게 될지도 모르는데, 내가 왜 집을 꾸미고 살아야지'라는 생각은 마치 '똥 쌀 건데 왜 먹어', '헤어질 건데 왜 사랑해', '죽을 건데 왜 살아'와 같은 말이었다. 


그래서 25만 원짜리 월세방에 조금씩 취향을 담기 시작했다. 취향을 담는다는 게 어려워서 처음엔 냉장고에 내 취향인 자석과 스티커를 마구 붙였다. 그다음엔 벽지에 사진을 붙이고, 가스레인지와 선풍기를 새로 샀다. 그리고 동생이 줄기를 잘라 물에 담가 뿌리를 내린 뒤 나눠준 유칼립토스를 키우기 시작했다.


동생의 맥시멀 하우스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조금씩 담아내기 시작했다. 이사 갈 미래를 걱정하느라 하고 싶은 걸 안 하며 사는 게 아니라, 오늘의 취향이 묻은 집에서 사는 것이 진정한 오늘을 사는 법이니까. 


일단 덕지덕지 냉장고에 자석과 스티커를 붙여 보았다.
창문에는 맘에 드는 나무가 프린트된 커튼을 달고, 선반에는 예전에 스크랩해 둔 영화 포스터를 넣은 액자를 올렸다.
유칼립투스 근황: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날이 더워 반쯤 말라버렸지만, 열심히 다시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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