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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심 Feb 22. 2022

고양이는 정말 요물인걸까

다 알면서 잘 알면서 모른 척하는 너


날씨가 꽤나 쌀쌀해졌다. 집안의 쌀쌀한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온돌 바닥이 없는 하노이의 겨울은 생각보다 춥다. 이곳에 오기 전엔 아주 당연하게 동남아는 겨울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나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하노이에 가는 것을 결정하고 난 후에서야 이곳에도 겨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지 않았다면 아마 영영 몰랐을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하노이의 겨울은 한국의 가을 같다. 어떤 날은 따뜻한데 어떤 날은 매섭게 춥다. 한국보다 흐린 날이 더 많아 해를 보는 게 쉽지 않다. 하노이의 겨울은 다소 을씨년스럽다.


온기가 잦아든 하노이의 이 날씨가 좋았다. 적당히 차가운 이 온도가 좋았다. 집에서 긴팔을 입어도 덥지 않고 전기담요를 틀어 잠마다 등을 지지는 이 느낌이 좋았다. 그것도 잠시, 루이가 걱정되었다. 루이는 사시사철 같은 털옷은 입고 지낸다. 털갈이를 하며 조금 더 얇은 털, 조금 더 두꺼운 털로 갈아입는다고는 하지만 뭐 얼마나 큰 차이가 있겠나 싶다. 그의 털옷은 내가 입어보지 못한 옷이라 잘 모르겠다. 나도, 루이도 온돌이 없는 겨울은 처음 맞이 한다. 나는 사람이니 추우면 이불 속을 파고 들어가 전기담요를 켜고 노곤하게 있으면 되는데 루이는 그저 나를 따라다니는 것 이외엔 추위를 피할 방법이 없다. 다행히도 함께 사는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머무는 곳이 집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라는 걸 나의 영리한 고양이는 안다.   



한동안 침대에 내내 전기담요를 틀어놨다. 추울 때 루이가 찾을 수 있는 곳이 있어야겠다 싶었다. 내 의도대로 루이는 침대를 자주 찾았다. 내가 방에 없을 때도 혼자 침대에 올라가 온몸을 길쭉하게 늘어놓은 채로 잠을 청하곤 했다. 그걸 볼 때마다 흐뭇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했다.


날씨는 점점 더 추워졌고 맨발로 방바닥을 걷을 때마다 한기가 올라와 찌릿했다. 루이는 얼마나 발이 시릴까, 집사의 지나친 걱정은 시작되었다. 마침 한국에서 가져온지도 몰랐던 전기난로를 발견하게 되었고 거실에 틀었다. 그 작은 전기난로 하나 켰다고 집에 온기가 가득 차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루이는 전기난로 앞을 떠나지 않았다. 내내 전기난로 앞에 온몸을 지지고 있기에 더 편하게 지지라고 방석을 가져다 놨더니 그 위에서 내내 잠을 자더라. 저녁에 잠시 사냥 시간을 즐기는 것 외엔 대부분 전기난로 앞에서 시간을 보냈고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에도 그는 전기난로 앞에서 잤다.



그는 어릴 적부터 나와 같은 침대에서 잤다. 내 옆에서 꼭 붙어 잤다기보다는 내 팔과 조금 떨어진 곳이나 발 밑에서 잤다. 집사와 거리두기, 그는 늘 나와 거리를 유지한 채 침대에서 자곤 했다. 그건 하노이에 와서도 같았다. 근데 전기난로가 등장한 이후로 루이는 나에게 오지 않았다. 나는 며칠 내내 혼자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혼자 자는 침대는 편했다. 조심히 몸을 뒤척일 필요가 없었고 5kg 가까이 나가는 고양이의 짓누름에 이불이 끌어올려지지 않는 일도 없었다. 다만 조금 그랬다. 편하지만 서운했다. 허전하기도 하고. 서로 편하게 자는 건 좋은 건데 9년을 함께 했던 잠자리가 바뀌니 조금 그런, 그런 마음이 들었다.


어제도 그는 어김없이 전기난로 앞에 있었다. 거기서 자겠다는 암묵적인 의미겠지. 나는 그를 불러 내 앞에 앉혀놓고 말했다.

"루이야, 이제 엄마랑 같이 안 자는 거야? 원래 엄마랑 매일 같이 잤잖아. 이제 잠자리 독립한 거야? 앞으로 혼자 잘 꺼야? 오늘은 엄마랑 같이 자자"라고 말했더니 어디 도망가지도 않고 가만히 듣고 있더라. 언제나 그랬듯이 잘 알아들었지만 못 알아들은 척하는 거겠지? 나는 그대로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30분쯤 지났을까? 그의 인기척이 들리더니 침대에 훌쩍 뛰어 올라와 내 옆에 자리 잡았다. 그것도 바짝 붙어서 말이다. 그러더니 슬슬 몸을 늘어뜨리고 제대로 자리 잡고 누웠다. 그는 보통 이렇게 있다가 곧 다시 밖으로 나간다. 시늉만 하는 것처럼 왔다가 간다. 하루 이틀 겪은 일이 아니기에 나는 안다. 어제도 그럴 줄 알았는데 루이는 그 상태로 해가 뜨는 아침까지 있었다. 그는 내 곁에 꼭 붙어 잤다. 그리고 오늘 잠깐 낮잠을 잘 때 또한 그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주 꼭 붙어 있었다.




지난밤 그에게 말한 투정을 알아들은 것일까? 지난 9년간 항상 거리를 유지하며 잤던 루이가 어제는 내 옆에 꼭 붙어 잤다. 좋은데 이상했다. 내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아서 좋은데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혹시 루이가 정말 내 말을 다 알아듣는 것일까? 정말로 알아들으면서 모른 척하는 것인가? 내가 그동안 무슨 말들을 했더라? 다행히도 루이의 험담을 한 적은 없어 그동안의 발언을 되짚으며 마음이 쪼들리는 일은 없었다.


고양이를 요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고양이를 9년이나 키웠지만 요물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저 사랑스럽고 나와  맞는 생명체일 .  요망스러운 단어로 고양이를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허나 우습게도 기나긴 밤이 지나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밤새 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옆에서 곤히  그를 보니 요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래서 사람들이 고양이를 요물이라고 하는 걸까? 이리도 요망하게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어디에  있을까?  어린 투정마저  받아주는  깊은 고양이. 이래서 나는 고양이를 좋아할 수밖에 없고 루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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