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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심 Mar 21. 2022

누구에게나 서른 살의 로망은 있다

이런 서른 살이 될 줄은 나도 몰랐지


십 년에 한 번 주기로 앞자리가 다른 열 살을 벌써 세 번이나 맞이했다.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 언제 앞자리가 3이 된 거야? 점점 이 주기가 짧아지는 것 같아 조급함이 깃든다. 세 번의 열 살을 받아들일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스무 살은 두근거림, 서른 살은 묵직함이었다. 열 살은 기억도 안 난다. 열 살이 되면 더 재밌게 놀 수 있을 거라는 들뜬 기대감 정도는 있었겠군.


스무 살은 어른이 된다는 막연한 설렘이었고 서른 살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텁텁한 무거움이었다. 스무 살은 아이와 어른 사이를 오가지만 이내 곧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면 서른 살엔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완성형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당연히 현실은 그렇지 않았지. 이미 서른 살을 맞이하고도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매일 밤마다 어른이 되지 못한 나를 자책하곤 한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마흔 살에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물론 그때도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할 것이란 알고 있다. 도대체 어른이 뭐길래!  

초가 많아졌다. 어른일까?



서른 살의 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뾰족하게 솟은 앞 코가 매력적인 높은 하이힐에 정갈한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멋들어진 H라인 스커트를 입은 채 꼿꼿한 자세로 일하는 멋진 팀장님이 되어있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슬리퍼를 신은 채 헐렁한 XL 사이즈 반팔 티셔츠를 입고 목과 어깨를 한 껏 말은 채 구부정한 자세로 일하는 대리 나부랭이가 되었다. 서른 살에도 여전히 처음 해보는 일이 수두룩 빽빽했으며 뭐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여전히 배울 게 많고 알아갈 게 많았다. 서른 살엔 새로 배우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건 큰 오산이었다. 죽을 때까지 배울 것은 차고 넘친다. 죽는 순간까지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배울 것 투성인 내가 팀장은 개뿔. 대리 나부랭이인 건 당연했다.

 

서른 살엔 인생에 노하우가 쌓일 줄 알았다. 뭐든지 능숙하고 능란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직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다. 고로 나에겐 노하우가 쌓였을 리는 만무하며 쌓은 시간보다 쌓아갈 시간이 더 많이 남았다는 말이지. 퇴근 후 개운하게 씻고 나와 Chill 한 음악에 고개를 까딱이며 혼술을 즐기는 낭만 따위는 없었다. 정녕 서른 살의 몸뚱이에서 나는 소리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끙끙한 신음소리로 침대에 드러누워있기에 바빴지.

분명 내가 생각한 서른 살은 어리숙하고 어설픈, 이런 어른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대리 나부랭이 데일리룩



대학생이 된 스무 살 무렵 한 창 페이스북이 유행이었다. 페이스북엔 나의 연애 상태를 기입할 수 있었는데 “자유로운 연애 중”이라는 선택지가 있었다. 이거다,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연애인 것 같아. 이것보다 더 알맞은 표현은 없어! 보자마자 딱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자유로운 연애라는 것은 어찌 보면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는 문란한 연애로 비칠 수 있겠지만 나는 연애 앞에 자유라는 단어가 붙는 게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연애는 자유로워야지 얽매이는 건 딱 질색이다. 암요, 그렇죠. 그때부터 나는 자유로운 연애 중이었고 당연히 서른 살의 연애도 이는 이어질 것이며 결혼보단 비혼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서른 살의 연애는 결혼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서른 살에게 결혼은 떨쳐내려 해도 떨쳐낼 수 없는 아주 강력한 당연함이었다. 서른 살쯤엔 당연하게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고 하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받아들여졌다. 내가 언제, 누구와 결혼을 할 건지에 대한 원치 않는 관심을 여기저기서 지속적으로, 아주 꾸준하게 받는 게 일상이었다. 결혼이란 속박에서 누구보다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내내 자부했던 자유로운 연애 중인 나 또한 그냥 한낱 보통의 인간이었을 뿐이자 당연한 인간이 돼버렸다. 결혼도, 나도 당연해졌다.


서른 살의 연애는 유치한 감정싸움이 줄고 쉽게 질투하는 일이 없었다. 이해하는 척이 아닌 진심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연애가 가능했다. 감정을 자유로이 제어할 수 있었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결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의 자유로운 연애 중은 끝나버렸다. 결혼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은 더 이상 없었다.

내가 생각한 서른 살의 연애는 서로를 옭아매지 않는 성숙한 연애였지, 결혼을 필연적 전제로 하는 당연한 연애가 아니었는데 이게 이렇게 되더라.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나는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지만 결혼에 가까워진 연애를 생각하니 이미 어른인 것 같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생각보다 어른이면서 아니기도 하다. 뭐, 이래나 저래나 내가 꿈꿨던 서른 살과는 거리가 먼 어른의 모습이라 크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네. 여전히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어른도 아이도 아닌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중후한 무게감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이토록 가벼운 생명체여. 어른이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되겠지.


로망은 로망일 , 로망 뒤엔 차가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로망은 그런 것이다. 그 뻔한 결말을 알면서도 나의 마흔 살은 어떨지 상상을 아니할 수가 없다. 마흔 살의 로망도 서른 살의 로망처럼 처참히 무너질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꿈꾼다. 그래, 그럼에도 로망을 꿈꾸는 삶이 아름답고 의미 있지.

마흔 살은 꿈꾸는 대로 될지도 모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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