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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림 Nov 20. 2020

본캐, 부캐?!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세계

 #4. <데미안> + <이게 정말 나일까?>

 부캐(부캐릭터)신드롬은 현재진행형이다. 유재석이 국민MC라는 본캐(본 캐릭터) 대신 트로트 신인 가수 ‘유산슬’이라는 부캐로 성공한 이래, 린다G(이효리), 비룡(비), 이다비(김신영), 마미손(매드 크라운) 등 많은 연예인이 부캐의 대열에 합류했다. 부캐는 비단 연예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수많은 SNS에서 우리는 이미 수많은 부캐들과 만난다. 유투브나 블로그, 인스타그램에서 마주하는 지인이 내가 알던 그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이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미 부캐는 우리 생활 속 문화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왜 부캐를 원할까. 이러한 사례는 작가의 필명에서도 발견된다. 작가 헤르만 헤세도 무명작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데미안>을 세상에 발표했다. ‘에밀 싱클레어의 청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데미안>은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세계를 그린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어미 닭이 그 신호를 알고 밖에서 함께 쪼아주어 생명의 탄생을 맞이하는 것처럼, 기존의 세계를 넘어선 세계로의 도약, 나에게로 거듭나는 길을 싱클레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동경하는 친구이자 부캐, 싱클레어가 닮고 싶은, 도전하고 싶은 인물이다. 도전에 성공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세계의 균열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있음을 아는 것이다. 밝음, 선, 맑음, 깨끗함, 규범과 질서의 세계가 하나의 세계라면 또 다른 세계는 어둠과 혼돈, 무질서와 같이 대비되는 세계다. 그 두 세계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함을 아는 순간 균열은 시작된다. 싱클레어는 현재까지 살아온 삶과는 다른 삶을 욕망했다. 그가 크로머에게 시달리며 꾸었던 꿈은 다름 아닌 ‘부친살해’. 신화에서의 부친살해 모티프가 무엇을 뜻하는가. 새로운 세상으로의 세대교체를 꿈꾸는 것이다. 싱클레어는 새로운 세계를 탐색한다. 불안과 죄책감,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자기파괴를 통한 각성과 위기에서 그는 데미안과 만난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 <이게 정말 나일까?>에는 데미안의 역할로 로봇이 등장한다. 용돈을 털어 로봇을 구매한 아이는 로봇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탐색해간다. 로봇은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모두 해낼 수 있는 존재다. 데미안처럼, 내가 힘든 것을 해결해줄 존재이자, 나를 알아가는 길을 안내하는 조력자다. 아이가 버거워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구매했지만, 싱클레어가 데미안과 일치를 이루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듯, 로봇과의 싱크로율을 높이기 위한 준비과정도 만만치 않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로봇에게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나를 살펴보는 일, 타인의 눈에 비친 제각각의 나를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내 안에는 다양한 나의 세계가 있음을 아이는 깨닫는다. 나의 세계 안의 다양한 부캐, 본캐를 알기 위해 부캐는 필수다.

 부캐의 또 다른 이름은 페르소나, 바로 사회적 가면이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는 더욱 복잡해진 현대사회를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의 시대로 규정한다. 다매체의 시대에 급변하는 사회 속에 현대인들은 각자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는 양상으로 시대의 요구에 화답한다. 학교와 집에서의 내 모습이 다르고, 이 사람을 만날 때와 저 사람을 만날 때가 다르다. 저자는 이러한 측면으로 인해 현대인의 정체성이란 단수(myself)가 아닌 복수(myselves)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야흐로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가 도래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놀이처럼 즐겁지만 위험하다. 부캐로 대표되는 인간의 다원성이 확장될수록 인간 본연의 정체성 기반은 불안정해질 수 있어서다. 부캐의 무분별한 확장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페르소나와 관련해서 학생 A는 이렇게 말했다. “제 성격은 내성적이고 조용한 것을 좋아해요. 하지만, 반장이라는 역할에 맞게 짐짓 밝은 척 분위기를 띄우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에도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행동하곤 해요. 집에서는 효녀라는 가면을 써요. 워킹맘으로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동생 밥을 챙기고 신나게 놀아줘요.” B 학생은 “인스타그램에 좋은 일, 자랑하고 싶은 일만 과장해서 올릴 때가 있어요. 때때로 ‘이건 진짜 아닌 거 같은데, 괜찮을까?’ 올리기 전 고민하는 순간이 있어요.”


 내가 흔들리는 중이라는 것을 느낄 때 <데미안>이 필요하다. 그리고 싱클레어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마음은 매우 불편해진다. 그의 방황과 고민과 고통 속에서 나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돌아서서 그냥 되는대로 살면 편한데, 왜 나의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는가.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낯익은 감정의 찌꺼기를 들추는 일, 데미안은 나의 그림자와 대면하게 하는 이다. 선과 악, 신의 존재와 인간의 믿음, 가치 판단과 선택 등 철학적 담론 앞에 우리를 세운다. 싱클레어가 유년기를 거쳐 자아를 형성해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위기를 본다. 그 위기의 순간에 만난 사람들은 조력자가 되어 내가 가진 정체성과 주체성을 점검하고 나아가게 한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 이야기와 같이 내게 익숙한 이야기들의 가치를 새롭게 해석한 데미안으로 인해 싱클레어는 당황하지만 그 자극이 기폭제가 되어 세계의 양면성을 관조하도록 이끈다. 그리고 그 양면성과 함께하는 것, 공존함으로써 성장한다.


 그의 성장을 이끈 조력자는 데미안만이 아니다. 그림자를 이끌어낸 크로머, 깨우침의 디딤돌이 되어준 피스토리우스, 사춘기의 방황에서 유턴하게 했던 첫사랑 베아트리체, 모든 것을 포용하고 받아준 에바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맞닥뜨리는 전쟁이 있다. 데이안은 말한다. “싱클레어, 이건 시작일 뿐이야. 어쩌면 큰 전쟁이 될 거야. 아주 큰 전쟁이. 하지만 그것도 그냥 시작일 뿐이야. 새로운 것이 시작될 거야. 그리고 옛것에 매달린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은 끔찍할 거다. 넌 뭘 할 거니?” 실제로 <데미안>은 출간 당시 전쟁에 참여한 젊은 층의 열렬한 호응과 지지를 받았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를 읽다 보면 싱클레어가 겪은 내면의 체험과 전쟁이라는 크나큰 시대적 아픔을 함께 엮어낸다. 데미안의 질문은 ‘나다움’을 묻는다. 싱클레어가 하나의 은유라면 우리는 어떤 체험으로 이어가면 좋을까.


 그림책 <이게 정말 나일까?>는 구체적으로 유쾌하게 나에게 다가가는 면면을 제시한다. 나에 대해 알리는 법,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는 ○○. 하나씩 하나씩 살핀다. 주인공 지후가 "알았지?"라고 얼버무려도 대충 넘어가지 않는 도우미 로봇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자세하게 설명’하길 유도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옛날의 추억들, 사람들과의 관계, 나의 흔적, 기계, 만들어지는 중인 것, 변화,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 역할, 비밀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다움’의 세계를 알아간다. 그리고 완벽한 지후로봇의 결과는, “넌 누구니?”라는 엄마의 반응으로 유쾌한 결말을 맺는다. 나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정체성은 대체 불가라는 것,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에 ‘나다움’을 확인해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유명한 <데미안>의 문구는 오늘 우리에게 줄탁동시의 세계로 안내한다. 매 순간 변하는 사회적 가면이 부캐인지 아닌지, 흔들림 없는 본캐의 중심을 잡아야 할 때 <데미안>을 꺼내어 다시 읽으면, 내 안의 데미안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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