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시간
며칠 전에 꽤 규모가 있는 출판사의 거의 수장이라 할 만한 분이 볼로냐 수상작을 검토하다, 볼로냐 어워드에 어떤 상들이 있고 몇 명이나 주는 거냐는 질문을 했다. 누구보다 출판사들이 볼로냐 수상작을 오랫동안 지켜봐왔기에 이 질문은 많은 생각을 가져왔다.
사실 누구 하나 콕 집어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수상작을 직접 진행하고 편집하며 신간 기사를 내는 담당 편집자가 아닌 이상 아무리 유명한 상이라 해도 명쾌히 이해하고 있기에 출판계는 너무 바쁘다.
그래서, 국내외에서 알아주는 몇몇 상들이 있지만 오늘은 어느 것보다 환대 받는 볼로냐 라가치 어워드 (Bologna Ragazzi Award)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볼로냐 라가치 어워드의 역사는 50여 년이 된다. 오직 참가자들에게만 수여하는데, 어린이 출판의 국제 시상에 있어서는 제일 인정 받는 상 중의 하나다.
수상의 기준은 멋진 그래픽, 참신함, 독자들과의 소통과 균형이다. 카테고리는 픽션 Fiction, 논픽션 Non-Fiction, 오페라 프리마 Opera Prima 세 가지인데, 해에 따라 한두 개의 특별한 카테고리를 만든다. 올해에는 아트 앤 아키텍쳐 Art & Architecture와 북스 앤 시즈 Books & Seeds 라는 카테고리가 추가되었다.
올해 볼로냐 라가치에 접수된 그림책은 총 1417권, 모두 41개국에서 왔다. 심사위원들의 말에 따르면, 그림책들은 아이들 스스로 강한 해석력을 갖고 있다는 전제 하에 점점 은유적인 스토리를 갖는 추세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만 봐도 이야기가 점차 생략되고 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의 개인적 해석으로 표현되는 그림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이로써 독자 자체가 어른들을 겨냥하는 경우도 많다.
올해 볼로냐 라가치에 접수된 그림책의 주제들은 대체로 세 가지로 모아졌다고 한다. 여성을 향한 문제 제기와 시, 그리고 이전에는 없던 완전히 새로운 형식인 책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볼로냐 라가치 어워드의 세 개 카테고리 안에서는 각각 하나의 수상작만 나온다. 올해는 픽션 부문에서 <L’Oiseau Blanc>, 논픽션 부문에서 <Loudly Softly In A Whisper – I See That>, 오페라 프리마 부문에서 <La Plage>가 수상했다. 하지만 같은 카테고리 아래 서너 개를 더 언급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스페셜 멘션 Special Mention 이다. 이외 카테고리 중 뉴 호라이즌 (New Horizon)이라는 것이 있는데, 웨스턴 국가 외에서 한 권을 뽑아 시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뉴 호라이즌 부문에서 배유정 작가의 <나무, 춤춘다>가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이 수상작에 대한 반응은 국가별로 조금씩 다르다. 해외 출판사들과 거래할 때, 볼로냐 라가치라고 해서 더 플러스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흥미롭다. 오히려 수상작을 빼고 검토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상작을 선점하고 보는 우리 상황과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특히 북유럽에서 그 성향이 두드러졌다. 그들이 더 가치 있게 보는 어워드가 있는지는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볼로냐 도서전엘 가면 일러스트레이터 월 (Illustrators’ Wall)이라는 벽이 있다. 거기에는 온갖 낱장짜리 그림들과 일러스트레이터들의 명함이 수북이 꽂혀 있다. 관계자들은 꼭 한 번은 거기에 들러 훑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예전보다 우리 작가들의 자취도 많이 눈에 띈다. 그만큼 무대를 한국에서 세계로 옮기는 작가들의 대범함과 좁은 한국에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뜨거운 절실함, 그리고 좀 더 다양한 도전을 해 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열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작가들과 출판사들 모두에게 유연성 있는 시장의 변화가 사뭇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