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진실을 추구한다는 말은, 곧 그러한 진실을 행하고 있지 않음을 가리킨다. 우리는 진실하고자 하지만, 남김없이 싹싹 긁어 자신을 내보이는 사람은 없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는 용기를 가진 자는, 거짓말할 용기 또한 갖춘 자다. 이는 우리 중에 진실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완전한 진실을 알지 못한다는 의미다.
거짓말은 진실의 반대편에 선 것일까. 거짓말에 대한 선입견은 진실을 선으로, 거짓말을 악으로 나눈 데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모든 거짓말을 막지는 않는다. 흔히 선의의 거짓말은 받아들인다. 이를 좀더 확장해 보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절대 진실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어떤 진실(189쪽)”이다.
『철학자의 거짓말』은 개인으로서의 삶과 철학자로서의 삶이 달랐던 철학자를 끌어와 거짓말이 드러내는 진실을 살핀다. 책은 철학자의 이중적인 삶을 폭로하는 장이 아니라, 거짓말이라는 통로로 분출된 잠재된 인격과 철학에 대한 오해를 보여준다.
문학과 마찬가지로 철학 역시 허구다. “글 쓰는 주체는 허구를 이용할 때만이 아니라 이론 체계를 구축할 때에도 등장인물을 통해 구성(260쪽)”한다. 철학자는 자신의 내면에서 쪼개져 나온 가상의 등장인물을 만들어 또 하나의 세계와 철학을 구축할 수 있다. 그 세계가 반드시 철학자 자신의 삶과 일치할 필요는 없으며, 또 그렇게 나온 철학이 거짓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이는 “자아가 통일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다는 허구(302쪽)”에 기반하며, 키르케고르가 그랬듯 페소아가 그랬듯 자아는 분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태도를 달리한다. 수시로 바뀌는 나의 모습은 당황스럽고, 나이가 듦에 따라 변하는 가치관은 불안을 불러온다. 일관되고자 절대적이고자 애를 쓴다. 언젠가 선포한 말 혹은 쓴 글에 맞게 살기 위해 스스로를 괴롭힌다. 하지만 자기라는 존재가 “분열되고 혼합적이고 다중적(302쪽)”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나의 다양한 흐름 또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자의 거짓말』은 겉으로는 사상가들을 위한 변론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순적인 삶들에 건네는 다독임이다.
“사상가는 다중 인격으로 구성될 수 있다. 자기가 고안한 모든 것의 열쇠를 쥐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는 자기 사상을 여러 다른 시간성과 다양한 리듬에 따라 체험한다. 그는 자신의 일부인 잠재적 인생들, 서로 구분되고 때로는 모순적이기도 한 견해들을 지지하게 해 주는 이 아바타들에 자신을 투사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철학자에게도 나는 타자이다.(3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