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주훈 Apr 21. 2024

조지오웰이 1984를 쓰기까지

<1984> -  조지 오웰

<1984>, <동물농장>은 천재 소설가가 집에 박혀 몽상 속 재료를 버무려 써 내려간 줄로만 알았다. '소설'이라는 방식을 제외하곤 현실과의 교류가 소원할 줄 알았다. 그게 내가 생각한 '천재 소설가'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조지 오웰의 에세이 선집 <나는 왜 쓰는가>와 리베카 솔닛이 그려낸 <오웰의 장미>를 읽으며 그 생각이 깨졌다. 조지 오웰은 누구보다 현실에 깊게 참여한 사람이며, 글과 행동으로 그 점을 보여줬다. 또한 메시지를 ‘수필’로 명료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은유적인 ‘소설’을 선택한 게 아니다. 메시지를 '수필'로 너무도 명료하게 풀어낼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런 수많은 글을 발표했다. 단지, 더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소설’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오웰은 ‘소설을 써야지~’하고 <1984>를 짜낸 것이 아니라. 많은 사유와 경험, 읽은 텍스트가 누적되어 <1984>의 형태로 터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오웰이 어떻게 <1984>에 도달하게 됐는지 간단히 살펴보자. <1984>를 쓰기 시작한 1946년 이전의 행적에서 말이다. 


오웰은 가난한 시절 실제로 공원이나 야외를 성적인 활동의 장소로 삼았다고 한다.


<동물농장>의 돼지 스노볼은 그 뒤 <1984>에 쓰게 될 골드스타인과 유사하다. 그리고 이 둘은 현실에서 스탈린에 의해 악마로 몰린 트로츠키와 유사하다


스탈린이 소련에서 벌인 유전학 논쟁은, 오웰에게 진실과 거짓에 대해서 고찰할 기회가 되었다.


한 미국 기자가 1937년에 쓴 책에서 “2 + 2 = 5”라는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이것은 <1984>를 쓰기 4년 전 기고한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에서 직접 다루기도 한다.


1932년 소련에서 아버지를 당국에 고발하여 처형에 이르게 한 소년 파블리크 모로초프는 영웅으로 선전된다. 이 사건은 <1984>에서 이웃 톰 파슨스가 딸에 의해 고발되는 부분에 영향을 준다.


<1984>에서 줄리아가 처음 윈스턴에게 쪽지를 주려고 할 때, 윈스턴은 줄리아를 쳐 죽이려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결국 넘어져 괴로워하는 줄리아를 보며 똑같은 인간임을 느끼고 욕망을 행하지 않는다. 이 대목은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파시스트를 쏘려다가 바지를 추스르며 도망가는 상대가 자신과 다름없는 인간으로 느껴 총을 쏘지 않았던 경험과 유사하다.


에세이 <당신과 원자탄>에서 핵에 대해 많은 고찰을 했고, 이것은 <1984>세계관의 밑거름이 된다.


오웰은 2년 동안 BBC 라디오 프로듀서 생활을 했다. 이후 <시와 마이크>라는 에세이도 기고했듯이, 오웰은 라디오와 같은 전파 수단에 관해 깊은 고찰을 했을 것이다. 이것이 <1984>에 텔레스크린을 설정하는 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오웰은 제임스 버넘의 <관리 혁명>을 읽고 오세아니아, 이스트아시아, 유라시아라는 3대 강국을 설정하게 되는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오웰은 에세이 <당신과 원자탄>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버넘이 그린 새로운 세계의 지형도는 옳은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표면은 갈수록 3개의 거대 제국으로 나뉘어가고, 각 제국은 자족적이고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으며, 각각 이래저래 위장을 하지만 결국 자기가 자기를 선출한 과두정치의 지배하에 있다.”


오웰은 <문학 예방>이라는 에세이에서 이미 “인간의 자주성을 극도로 축조시키는 컨베이어 벨트식 제작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모정의 저급하고 자극적인 소설이 살아남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한다.


2권의 책에서만 이 정도를 찾을 수 있었다. 오웰이 썼던 방대한 에세이, 르포를 다 읽는다면 훨씬 더 많은 연결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나도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다. 범접할 수 없는 천재의 영역으로만 여겼던 ‘소설’이, 경험과 사색의 누적으로 분출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적의 힘은 세다. 그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케 만든다. 나도 깊은 사유를 쌓아가고 경험을 해나간다면,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게 확고해진다면, 그것이 소설이란 형태로 폭발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워라밸 대신 빵장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