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가 읽은 에세이 - 신예희,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는 프리랜서 활동을 20년간 지속해 온 신예희 님이 2019년에 집필한 에세이다. 책은 총 6개의 챕터로 '지속가능한, 태도', '지속가능한, 휴식', '지속가능한, 재능', '지속가능한, 돈', '지속가능한, 자립', '지속가능한, 나'로 신예희 님이 프리랜서 활동을 하며 겪은 일화들을 읽기 편한 어체로 쓰여 내려간 책이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을 집필한 일에 대해 감사함을 전하며 '끌고 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을 다 읽고 내게 남은 단어는 주체성이다. 내 인생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는 삶. 주체적으로 살기 위한 태도. 원할 때에는 휴식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완벽주의로 나를 괴롭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며 산다. 책은 내 삶의 주체성을 나에게 두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하겠다는 다짐은,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끌고 가는 삶'을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몇 년 전 자본주의를 공부하는 세미나 모임을 참여해서 '이진경, 『자본을 넘어선 자본』'을 읽은 적이 있다. 머리에 잘 남아있지 않지만, 자본주의가 이용자와 노동자라는 계층을 만들고, 이로 인해 노동자가 박탈당하는 것 중 하나가 '내가 일할 공간을 내가 정할 권리'라는 것이 어설프게 기억난다. 당시에 나는 SI 회사에서 대전 프로젝트를 맡아 일주일에 두 번씩 대전의 모텔에서 자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저 부분이 인상 깊었다.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의 첫 장은 '강남 사모님 팔자에 대하여'이다. 작가의 부모님께서 일전에 역술인으로부터 자식들 사주팔자를 받아왔는데 그 내용이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시간에 한가하게 미용실도 다니고, 백화점도 다니게 될 거'란 이야기를 듣고 오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딸, 강남 사모님 팔자다'라고 하셨는데 프리랜서가 되어 평일 대낮에 머리를 하고(내 돈으로), 집 가는 길에 고등어 한 마리도 사니(내 돈으로), 역술인의 말이 반은 맞았다는 것이다.
나 또한 프리랜서 개발자가 된 이래로 평생에 겪어본 적 없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대낮에 애견카페에 가서 강아지는 뛰어놀게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출퇴근 시간이 없으니 그 시간에 내 일에 더 집중할 수도, 글을 쓰기도 한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집었던 계기도 나의 이 프리랜서 개발자 생활이 유지될 수 있기를 바라는 다짐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프리랜서의 가장 큰 장점은 '나의 업무 공간과 시간을 내가 정한다'는 것 아닐까 싶다.
사실 회사에 근로계약으로 소속되어 월급을 받고 있는 개발자라고 하더라도 업무 공간과 시간을 내가 정하지 못하란 법만 있지 않다. 9 to 6, 10 to 7 등 내가 원하는 시간으로 출퇴근하는 탄력근무제(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하는 회사도 있으며, 어떤 회사는 주간 근무시간만 지킨다면 자유롭게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게 해준다고도 한다. (정말 부럽군) 코로나가 남긴 그나마 이로운 점이 재택근무 환경이 대중화되는 것에 일조한 점이지 않을까 싶다.
반대로, 프리랜서이면서 업무 시간과 공간을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발주사가 요구하는 사무실에서 정해진 시간을 일하는 개발상주 프로젝트들도 많다. 하드웨어가 포함된 개발이나 보안이 필요한 분야의 프로젝트는 대부분 개발 상주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실 필요의 이유가 아닌 안심의 이유로 개발상주를 요청하는 프로젝트들이 많다. 발주자 본인조차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잘 모르고, 개발지식이 부족하다는 명분하에 말이 계속 바뀌는 것이다. 그저 내 눈앞에 개발자들이 출퇴근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안심을 위한 선택이다.
전 회사에서 개발책임으로 있을 때에 나는 경영진에게 프리랜서와 일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프리랜서 개발자를 관리하는 경험도 능력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또한 이제 막 서비스 개발을 시작하는 단계였기에 함께 조직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도 했다. 나와 유사한 결정을 한 다른 개발책임들도 많을 것이다. 또한 재택근무를 하지 않는 회사가 많아지는 추세이며, 게다가 점차 발전하는 AI는 프리랜서를 넘어서 개발직군 전체에 대한 위협이 되어 반백수의 지속가능성을 헤치는 위험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개발자 반백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나의 선택은 구스피크다. 구스피크는 나의 브랜드이며 나의 서비스다. 함께 하는 기획자 친구가 있다. 내가 일하지 않아도 나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개발은 결국 비즈니스를 위한 것이니까. 당장 생활을 위해 프리랜서 외주 작업을 하고, 지속가능성을 위해 구스피크를 키우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시작하여 3개 주제로 시장검증을 진행 중이고 4번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조급하지 않게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가 김영하 작가의 인용구이다. 이 문장에서 내 삶의 방향성과 구스피크 시도의 사회적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견고한 내면을 가진 개인들이 다채롭게 살아가는 세상이 될 때,
성공과 실패의 기준도 다양해질 겁니다.
엄친아나 엄친딸 같은 말도 의미를 잃을 것입니다
- 김영하,『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