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누군가는 '엄마 찾아 삼만리'를 그렸는데, 나는 직업 찾아 삼만리로 청춘 드라마를 찍었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고민할 때, 나는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서 한 가지 택하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20대 시절 내내, 좋아하는 모든 걸 다 해보기 위해 나그네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스타트업 회사로, 학교로, 방송국으로, 그리고 해외로.
어떤 직장에 가던 지간에 항상 갈증이 났다. 욕심 많고 야망이 넘쳐서 하는 일들이 성에 차지 않았다.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싶었고, 더 주목받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내 안에서 무언가 꿈틀대는 것 같은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실체 없는 무언가를 찾느라 남들이 제 갈 길을 찾고 한 업계에서 신입-대리-팀장 직급을 달아 가는 동안, 나는 직업 체험을 하고 있었다.
02. 갈증이 났던 20대와는 다르게, 30대.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숨이 찼다. 숫자와는 거리가 먼 내가 손익계산서를 작성해야 했고, 마진과 수수료를 계산해야 했다. 영업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내가 여러 담당자들과 계약 여부를 논의하고 결정해야 했다. 재능 없는 일도 다 해내야 하는 게, 1인 사업이었다. 팀원 없이 혼자 하는 1인 사업이라 모든 일을 내가 다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자주 한계에 부딪혔다. 내게 부족한 재능을 자주 마주해야 했다.
그럼에도, 직업 체험이라는 얕은 경험을 하면서도 내게 쌓인 게 있었다. 경험이라는 귀한 재료들을 모았더라. 아이들과 어른들을 대면하고, 많은 사람들을 리드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홍보글을 작성하고, 기획안 PT를 하는 등등... 사업은 그동안 모아뒀던 온갖 경험과 능력이라는 재료들을 펼쳐두고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좀 더 재료를 많이 모아볼 걸, 혹은 재료를 더 잘 손질해 볼 걸, 재료를 더 묵혀볼 걸 하는 후회 가끔 일었다.
03. 그렇게 사업을 한 지 6개월째. 슬럼프가 찾아왔다. 정확히는,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서 의기소침해진 것. 밤마다 잠이 오질 않았다.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고. 매출이 일어나긴 하는데 들어오는 돈은 통장을 스치기만 하는 나날의 연속. 쌓이는 돈이 없으니 초조해져만 갔다. 그때쯤, 머릿속에 콕 박힌 썩은 내 나는 생각의 씨앗.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 고개를 내밀었다.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아...? 사업할 자격이 있긴 한 거야?'
이 정도의 마진을 남기면서 계속하는 게 맞나...? 내가 손익분기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박리다매로 가야 하나? 마진 높은 신상품을 만들어야 하나? 물음표가 끊임없이 생성됐다. 정답 없는 게임의 함정에 빠진 것만 같았다. 위대한 사업가들의 책을 읽어나가 보니 정답은 분명 내 안에서 있다고 하는데, 물음표에 대답해 주는 나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내 안의 나는 그저 물음표만 그려낼 뿐이었다.
04. 한 가지 일에 제대로 올인해 본 적 없는 20대 시절의 나를 자책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신입 주제에 욕심만 많았던 게 아닐까? 너무 자만했던 건 아닐까? 싶었다. 누군가는 '지속이 능력'이라고 하던데, 그런 기준에서 나는 어떤 직업을 하더라도 자격박탈이었다.
그날 밤도 쉼표와 마침표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