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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정구 Nov 19. 2024

내이름이박힌책한권

세월 따라 불편해져 가는 친척관계

느닷없이 대구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의 산소를 개장하고 납골당에 모시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난 추석에 잠깐 산소를 개장하여 화장하고 산골 하는 것에 이야기 들었고, 아주 어릴 적에 돌아가신 아버지였기에 그때는 어른들이 다 알아서 산소를 만들었다. 아버지의 묘는 시골에 산에 인접한 밭 한쪽 편에 묘를 썼었다.


예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선산에 있던 할아버지 묘를 개장하여 같이 화장 후 산에 산골 했었기에 언젠간 어머니도 떠나면 그때 개장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번 추석에 묘를 없애는 것에 대해 그렇게 하자고 했었다. 멀리 떠나 있기에 때 되면 해야 하는 벌초도 직접 하지 못하기에 정리하려는 의도로 알고 있었는데...


엊그제 전화는 진행과정이 그것이 아니었다.

그 땅을 작은 아버지가 팔았다는 것이었고, 묘에 대한 개장의 이야기가 나온 배경에는 태양광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 땅을 팔기 위한 것이 깔려져 있었다는 것을 나는 어제 처음 알았다.


어머님의 전화는 작은아버지가 묘가 있는 밭의 땅을 팔았기에 묘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어서 처음에는 뭔 말인지 잘 몰랐다. 그 산속에 공장이 들어선다고 땅을 팔았고 매매계약이 완료되었다며 조만간 옮겨야 한다며 묘지이장에 대한 부분과 땅에 대한 매매에 대해 작은아버지에게 통보전화받았다고 직접 전화해서 알라보라고 한다. 납골당에 모시려면 1000만 원 정도 한다시며 모실 납골당을 알아 보러 가신다며 동지가 지나면 한번 오라 하셨다.


아주 오래전엔 묘를 썼지만 지금은 다들 화장하고 납골당에 모시기에 그러한 현재 상황에 따라 진행하는 것으로 알았던 것과 땅을 필기 위해 개장을 이야기한 건 느낌이 달랐다.


나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작은아버지에겐 바로 형인데 형의 묘가 있음에도 매매가 이루어지는 것에 사전 아무런 이야기 없이 땅을 팔았다는 통보와 함께 지금 당장은 아니니 한식 전에 옮기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슬펐다.

묘지이전에 대한 비용을 물으니 그 사람들이 안 준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하셨다.


세월이 가니... 어릴 적 작은아버지도 세상에 많은 경우가 남처럼 되듯 서로 간의 돈의 경계가 생기는 것 같아 서운했다. 아버지가 남겨주신 동네 마을과 바로 인접 포도밭 1000평을 작은 아버지는 그 밭을 샀을 때부터 지금까지 본인의 밭처럼 사용함에도 전혀 불편한 마음이 없었다. 어린 나이 20살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작은 아버지가 곧 아버지인양 그렇게 생각했었기에 그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 적도 없다. 엄마는 매년 200만 원의 사용료를 받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대를 이어 사시기에 집안의 어른으로 집안 모든 가족들에게 구심점 역할을 하신다고 생각했었기에 그 돈의 액수가 충분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단 한 번도 서운 한 적이 없었는데...


마을과 한참이나 떨어지고 야산과 붙은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유산이라 할 수 있는 밭을 파는 것에 있어 그곳에 아버지 묘가 있는데 아무런 이야기를 사전에 해주지 않았다는 건... 나의 가족은 아닌 줄 알았는데 우리 가족도 어느덧 각각의 자기식구들에 국한된 또 하나의 구역으로 나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과 돈의 관계

작은아버지는 삼촌이었는데 사촌들이 다들 어른이 되고 5촌. 6촌. 8촌이 형성되며


할머니를 구심점으로 어릴 적 나에겐 하나의 울타리였지만

이젠 세월이 흘러간 만큼

할머니의 울타리는 없어지고

그 삼촌이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나의 삼촌은 없어져감을 실감하게 되니 참 기분이 아쉽다.


땅을 파신다고 아버지 묘가 있는데 팔면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텐데... 그 땅에 아버지 묘가 있으니 나눠달라고도 하지도 않을 텐데... 그렇게 하시죠. 그 산간에 묵혀 둔다고 더 비싸지지도 않을 것이고, 마침 태양광 사업으로 누군가 필요로 할 때 파시는 것이 좋다고 하였을 텐데... 사전 한마디 의논도 없이 팔았다고 통보받음에 서운함이 크다.  


할머니의 가족이었던 때는 가까웠는데

내가 어른이 되고

그때 삼촌이 할아버지가 되니 어쩔 수 없이 서로 간의 경계가 생기나 보다.


나의 가족은 아닌 줄 알았는데 나의 가족도 내 생각과 달리  세상의 가족관계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아쉽고 아쉽다.


어릴 적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이니까 이래 때 되면 찾아오고 만나고 하지 세월이 가면 나(할머니) 죽고 나면 그때는 여기에 지금처럼 오지도 않을 거라고...


할머니집이니까 오는 것이지 삼촌집이면 그렇지않을꺼라시던

그때 할머니 말씀처럼 나이가 들어감에 삼촌의 집은 멀어져 가고 있었다.


가족이었는데 세월 따라 친척이 되고 이제 또 세월 따라 잊히겠지.

나는 아닌 줄 알았는데

불편한 가족관계가 내게도 찾아온 현실이 되는 것...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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