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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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공항 검사대 역주행한 썰 (brunch.co.kr)
온몸에 긴장이 가득한 채로 환승게이트를 역주행하여 드디어 베이징 시내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부모님께 잘 도착하였다는 연락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바로 연결될 줄 알았던 와이파이는 없었고 다행히 안내데스크에서 30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무료 와이파이를 받아 부모님께 연락을 남길 수 있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던 공공와이파이는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오만이었다. 이곳은 와이파이 강대국 대한민국이 아닌 외국이었고 심지어 중국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와이파이 하나만을 믿고 로밍도 유심도 가지고 오지 않은 나에게 와이파이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다는 사실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하던 말들이 떠올랐다.
"맨몸으로 어디를 가던 와이파이만 있으면 살 수 있어!"
반대의 경우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행을 하는데 와이파이가 없다면?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인해 사람들은 책보다는 온라인을 통해 여행을 계획한다. 심지어 더 정확하고 자세한 많은 정보들을 찾아볼 수 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지도 한 장 들고 여행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어만 보았지 2018년에 내가 실행해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결정해야 했다. 영어도, 중국어도 할 줄 모르면서 굳이 시내로 나갈지 안전하게 공항에서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을지.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일단 간다. 언제 다시 올 줄 모르는 중국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오려면 비자발급부터 쉬운 일이 아닐 것이고 환승게이트를 역주행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공항에서만 죽칠 수는 없었다. 마음속으로 나 자신을 응원한 뒤 다시 걸었다.
천안문으로 가려면 공항철도를 타고 공항-둥즈먼역으로 이동, 일반 지하철을 타고 둥즈먼-쩬궈먼-텐안먼뚱으로 이동해야 한다. 지나다니는 공항직원, 승무원분들께 물어물어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무인 티켓 발권기가 있었지만 한자 8급도 제대로 모르는 나는 지하철 티켓 발권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티켓 창구가 있어서 천안문을 외쳤더니 직원분께서 어디서 환승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시며 티켓을 끊어주셨다.
먼지가 섞인 이슬비, 수많은 중국인, 넓은 도로.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정신이 없었다. 너무 넓었고 수많은 중국인들이 모여 있었다. 관광객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관광객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슬비가 오는 줄 알았는데 카메라를 보니 흙탕물 자국이 있어서 곧바로 모자를 썼다. 중국 공기 좋지 않다는 소리만 들었지 하늘에서 흙탕물이 내리다니.. 뉴스에서나 보던 공안들, 주변에서 들려오는 중국어. 이번엔 주변에 있는 공안들에게 물어물어 천안문에 도착했다.
사실 천안문 자금성이 어떤 곳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그저 공항에서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관광지라서 방문했기 때문에 한 번 돌아보기만 할 생각이었다.(내부 관람 티켓을 미리 예약하지 않은 탓도 있다.) 하지만 중국은.. 내 예상보다 훨씬 큰 나라였다. 한 바퀴를 돌아보는데만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발바닥을 못으로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을 정도였다. 돌아봤으니 이제 나가야지 하고 다시 들어왔던 곳으로 갔다. 영어 안내문이 하나 보였다. 내용인 즉 들어왔던 곳으로 나갈 수 없으니 출구로 나가라는 것이었다. 그래 출구가 뭐 얼마나 멀겠어 하고 걸은 시간이 20분이다. 출구로 가는 길 중간중간 물과 간식거리를 파는 리어카가 보였다. 이렇게 넓은데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밥을 먹어야겠다.
지도를 보니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우리나라 '명동'과 비슷하다는 '왕푸징'이 있어 걸어가 보기로 했다. (명동도 가본 적이 없다.) 그렇게 30분을 걸었다. 구글 지도, 파파고 모두 못 하는 상황이라 무작정 도로 표지판만 보고 걸었더니 체력소모가 엄청났다. 그래서 쇼핑몰 하나하나 들어가서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이 중국 번호가 있어야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말. 유심을 파는 곳이 도대체 어디에 있냐고 물어봐도 서로 영어를 잘 못해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결국 와이파이는 깨끗이 포기. 수많은 중국어 간판 속에서 식당 찾기에 돌입했고 딤섬이나 북경오리가 먹고 싶었던 나는 또 다른 쇼핑몰에 들어가 다행히 한국어 메뉴판이 있는 딤섬집을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