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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스터 May 14. 2018

'해피투게더'라니, 뻔할 거라 믿었어

영화 <해피투게더>

주인공이 아픈 옛 사랑을 잊고 새 인연을 만나는 이야기.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 이야기를 한 데 모은다면, 적어도 절반 이상이 이렇게 압축될 것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은 언젠가 끝나버리고, 또 다른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그 뒤를 잇는다. 가수 하림은 아예 노래에서 공언했다.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라고. 그만큼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또 다른 만남은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다.     


보영과 아휘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는 그 뻔한 이야기를 구태여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 보영과 아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하지만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는 보영과 내성적이고 묵묵히 제 할 일하는 아휘는 자주 다투고, 결국 이과수 폭포를 보러 가던 도로 위에서 두 사람은 헤어진다. 물론 오랜 연인 사이가 대개 그렇듯, 둘의 관계가 단번에 끝나버리는 것은 아니다. 이후 보영은 크게 다친 채 아휘의 집을 찾아가고, 보영에게서 받은 상처를 잊으려 살아가던 아휘는 보영을 외면하지 못한 채 그를 치료해주다 다시 한 번 마음을 연다.


하지만 보영은 애초부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기질의 사람. 그는 아휘의 집에 머물면서도 다른 사람을 만나러 잦은 외출을 하고, 결국 아휘와의 큰 싸움 뒤 집을 나가버린다. 다시 한 번 홀로 남겨진 아휘는 이리저리 방황한다. 그러나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직장에서 만난 청년 장에게 왠지 마음이 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꿈꾸고, 영화는 끝이 난다. 여느 신파극과 크게 다르지 않은 줄거리다. 심지어 제목조차 ‘함께 하면 행복하다’는 다소 유치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아휘를 찾아온 보영


하지만 <해피투게더>는 그 이야기 속 순간들을 세심하게 포착해, 뻔한 이야기를 살아 있는 이야기로 만든다. 영화 속 장면 장면은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을 극대화 하여 풀어내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을 적절히 활용해 보영의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고독감을 담아낸다거나, 때때로 소리를 의도적으로 제거하고 움직임에 따른 잔영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방황하는 인물의 심리를 이미지화 한 것이 그 예다.


소품의 활용도 인상적이다. 내성적이고 다소 무뚝뚝한 성격의 아휘는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다시 찾아온 보영을 정성스레 간호할 때에도, 그것이 과거 연인이었던 사람에 대한 예의 때문인지 아니면 다시 보영을 사랑하게 됐기 때문인지는 모호하다. 이 때, 확인할 길 없는 아휘의 마음을 대신 보여주는 것이 바로 담배 뭉치들이다. 상태가 나아진 보영이 담배 사러간다는 핑계를 대며 외출을 하기 시작하자, 아휘는 담배를 한아름 사온다. 보영이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아휘의 마음이 수납공간을 가득 채운 담배로 드러나는 셈이다.   


담배를 진열하는 아휘와 그 모습을 바라보는 보영


그 외의 장면들에서도 영화는 대사보다 장면들로 주인공들의 마음을 드러낸다. 보영이 떠나 버린 뒤 아휘가 방황하는 부분에서 특히 그렇다.


그는 식당일을 그만두고 이곳저곳을 떠돈다. 소 도축장도 그 중 하나다. 그는 바닥 청소를 맡는데, 아무리 물줄기를 뿌려대도 핏물은 잠시 사라지는가 싶더니 다시 바닥을 메운다. 그 핏물은 마치, 마음 속에서 애써 밀어내려고 하지만 다시 마음을 채우고마는 보영에 대한 그리움 같다.


아휘의 새 시작을 암시하는 부분도 인상 깊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아휘가 마지막으로 들리는 곳은 이과수 폭포다. 과거 보영과 아휘가 함께 가자고 약속했던 장소다. 이과수 폭포의 물방울을 맞으며 아휘는 가만히 서 있다. 얼굴에는 눈물과 물방울이 동시에 섞여 흐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관객은 알 수 있다. 보영과 함께 그린 미래로부터 이제는 그가 벗어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워지지 않는 핏물, 이라 쓰고 그리움이라 읽는다


이후 아휘는 이전부터 왠지 관심이 갔던 청년 장을 찾아 나선다. 아픈 옛 사랑을 잊고 새 인연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 역시나 너무 익숙하게 보아온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아휘가 느끼는 감정들을 함께 거쳐 온 관객들에게 그의 이야기는 결코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아휘의 새로운 삶은, 이미 수없이 반복 되어온 사랑 이야기를 또 한 번 완성하기 위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아휘 스스로 아픔과 방황을 견뎌낸 끝에 얻게 된 결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 삶의 주요 사건들만 나열해보자면, 각자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다. ‘여러 번의 고비에 맞닥뜨렸고 때론 좌절했지만, 결국엔 이겨냈다’라는 단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순간순간의 감정들과 깨달음이 모여 현재의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개별 순간들을 오롯이 견뎌낸 덕분에 다음 순간으로 나아갈 수 있었음을 말이다. 따라서 인생이라는 것이 결국 ‘해피투게더’나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와 같은 말로 귀결된다하더라도, 우리의 삶이 시시하거나 빤하거나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홀로 이과수 폭포에 도착한 아휘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순간들을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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