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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스터 May 22. 2018

홍콩에서 나를 놀라게 한 것들

홍콩 친구들의 이야기

2017.11.28.~2017.11.30.

홍콩


지난 해 말 즉흥적으로 결정된 홍콩 여행.


사실 주변 사람들이 홍콩으로 훌쩍 떠나곤 할 때에도 나에게 홍콩은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었다. 보통 홍콩은 쇼핑하러 간다고 하는데, 나는 쇼핑에 영 소질도, 흥미도 없는 사람이라서다. 홍콩 친구들이 놀러오라 했을 때에도 미안하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너네가 한국 오면 되지~하면서.


하지만 그 사이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바로 홍콩 배우 양조위의 매력에 빠져버린 것.


<중경삼림>의 한 장면


이후 참 간사하게도, 홍콩이란 곳이 가보고 싶더라. 그래서 비록 양조위를 직접 만나기는 어렵겠지만, 그와 같은 땅을 밟고, 같은 공기를 마시고, 그가 머물렀던 공간에 가 볼 수만 있어도 괜찮단 생각으로 홍콩행 티켓을 끊었다.


실제로 홍콩에 머무는 동안, 양조위의 단골식당에 가서 그의 입맛이 어떤지 (나랑은 비슷한지) 확인해보기도 하고, 스타의 거리에서 그의 손(도장)에 나의 손을 맞대보기도 했다.


양조위와의 손맞춤


야경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겠지,하고 넘겨버렸던 홍콩의 야경도 생각보다 훨씬 멋졌다. 개인적으로는 빅토리아 피크에서 내려다본 야경보다 침사추이에서 강 너머로 바라본 야경이 더 좋았는데, 내가 생각해온 도시 야경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였다. 시야의 왼쪽 끝에서 오른 쪽 끝까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불빛들이 끊이질 않고 쭉 이어진다. 홍콩 친구 탐은 아침이 되면 그 민낯을 보고 실망할거야,라고 내게 충고를 했지만 아침 물안개가 낀 모습도 충분히 운치 있고 멋있더라.


침사추이에서 바라본 야경


하지만 홍콩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들은 사실 따로 있는데,

그 몇 가지를 써볼까 한다.


1. 홍콩 친구 릴리안이 한국 생활을 두려워 하는 이


버스에서 내려 홍콩의 거리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나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수많은 사람들. 그것도 정말 다양한 외모와 특색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이곳은 번화가라 특히 그렇겠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빠른 속도로 바뀌어 가고 있지만, 여전히 거리에서 마주하는 한국 사람들은 서로 유사한 점이 많다. 다들 비슷비슷한 차림새를 하고 있다라는 의미라기보다,  혈통 혹은 민족 혹은 인종적 차원에서라고 해야 할까, 흔히들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을 섞어 놓아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하게 해주는 우리나라 국민들만의 외모적 유사성 같은 것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홍콩의 거리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정말 제각각이어서, 이곳에서는 다양한 지역과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의식하지 않아도 물씬 든다. 따지고보면 나의 홍콩 친구들만 보아도, 탐은 내가 처음 봤을 때 당연히 한국인이라 생각했을 정도로 동북아시아인의 느낌이 많이 난다면 코트니는 조부모님이 말레이시아 출신이라 그런지 이목구비가 나나 탐에 비해 훨씬 뚜렷하고 진한 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홍콩에서는 누가 이방인이고 누가 현지인인지, 어떤 외모가, 어떤 옷차림이, 어떤 행동이 더 괜찮고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쉽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홍콩 친구 릴리안이 털어놓은 고민과도 맞닿아 있었다. 그녀는 한국인 남자친구와 사귀고 있는데, 그 남자친구가 결혼한 뒤 한국에 들어와 살자고 그녀에게 제안했단다. 릴리안은 한국 드라마와 노래를 좋아하는 데다가 한국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당연히 긍정적으로 답했을 줄 알았는데, 그녀는 한국이 좋기는 하지만 들어와 사는 것은 두렵다 했다. 단순히 외국생활이 걱정 되어서가 아니라 한국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배타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라는데, 나는 '이제는 아니다', '특히 요즘 세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열심히 주장해보았지만, 이틀 간 홍콩에서 목격한 그렇게나 다양한 외모와 문화권의 사람들을 보고나니 그와 같은 곳에서 살아온 릴리안으로서는 걱정이 생길 법도 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2. '나를 만난 것이 한 달 중 유일한 기쁨이라고?'


여행 첫 째 날에는 탐을 만났다. 그는 우리가 만난 영국 대학에서부터 성실하고 공부 잘하기로 유명한 친구였다. 영국인들을 제치고 장학금까지 탈 정도로 똑똑했으니, 홍콩에서도 당연히 잘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내게 한 말이 그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너를 만난 것이 지난 한 달 간 있었던 일 중 유일하게 기쁜 일이었어'  


오해할까봐 덧붙이자면, 우리가 뭐 엄청나게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다. 홍콩인이라면 수 십 번은 족히 보았을 야경을 감상했고, 그의 단골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했으며, 밤거리를 산책한 게 전부다. 그럼에도 그것이 한 달 간 있었던 유일한 즐거움이라면 평소의 일상은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하다는 걸까.


탐이 데리고 간 식당. 전형적인 홍콩식 한 끼란다. 컵에 담긴 물은 식수가 아니라 수저 세척용이다.


물론 탐이 좀 짓궂게 자기 처지를 말하는 냉소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리 큰 과장은 아닌 듯했다. 취업난이 심해 그는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전부 탈락한뒤 어느 평범한 회사에 들어가게 됐는데, 일 년 여만에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단다. (이유는 잘 생각나지 않는데, 친구가 결정적인 잘못을 저질렀다기보다는 구조조정의 차원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다른 회사에 들어가게 돼서 현재 일을 하고는 있지만, 야근이 잦고 통근 시간이 길어서 개인 시간이 너무 없다고 했다. 홍콩의 경우 살인적인 집값 때문에 친구를 포함한 대부분의 홍콩 사람들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출퇴근을 하는데 (그나마도 집이 매우 좁다), 회사 근처는 식비가 너무 비싸서 집에 들어온 후에야 밥을 먹을라치면 아홉시나 열시나 되어서 저녁을 먹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자기 친구들의 90%는 각자의 바램과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사실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제대로 모르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물론 탐은 유독 여유없이 열심히 사는 유형의 친구이긴 하지만, 그의 이야기가 홍콩은 물론 마찬가지로 취업난이 심각하고 삶의 여유가 부족한 한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리고 나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는 측면이 있어서, 공감됐고 가슴도 아팠다.


3. 홍콩에는 '앉는 곳'이 따로 있다.


홍콩 도심을 이리저리 걷다 발견한 'sitting out area'.

앉는 곳,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싶은데 돈을 내고 들어가는 밀폐된 공간은 아니지만

공원이라기엔 나무나 풀이 너무 적고 광장이라기엔 규모가 매우 작다.

 

도심 속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sitting out area'
내부는 이렇다
좀 더 안 쪽의 모습


대충 눈치껏 보아서는,

뭐든지 바쁘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홍콩 도심 속에서 사람들이 여유를 가지고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인 것 같았다. 다양한 나이와 직업군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어와 테이크 아웃 음식을 먹거나, 낮잠을 자거나, 휴대폰 게임을 했다. 친구들끼리 들어온 여학생들도 있었는데, 목소리를 죽여 대화하는 걸로 보아 실외임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해야 하는 공간인 듯 했다. 표지판을 보니, 흡연-벤치 위 눕기-자전거 및 스케이트 타기-반려동물 출입 등이 금지 돼 있다.


얼마 전 한국에 놀러온 코트니의 말을 떠올려 보면, 홍콩에는 카페가 얼마 없기도 없거니와, 카페에서 1시간 30분 이상을 머무를 수 없다고 한다. (법으로 정해진 것인지, 암묵적 규칙인지는 모르겠다.) 식당 또한 합석이 당연하게 여겨질만큼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니, 공원을 따로 조성하기 어려운 도심 속에서도 사람들이 눈치보지 않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둔 게 아닌가싶다.


'sitting out area'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사람들이 바삐 지나다니는 한 가운데 철조망과 각종 금지 팻말로 둘러싸여 홀로 고요한 이 공간을 보고 있자니,

이곳이야 말로 '망중한'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저 철조망은 정신없고 복잡한 도시생활 속에서도 최소한의 여유를 누려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물정 모르고 한가롭게 앉은 사람들의 여유가 도심 속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 등이 모두 섞여 들었다.




이상하게도 홍콩은 여행이 끝나고 시간이 지날 수록 생각이 더 많이 난다.


막상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에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다시는 안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여행지로서의 매력을 크게 느꼈기보다는

그 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더 많이 보고 들었기 때문인 듯하다.


아무튼 한국과 홍콩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우리 모두들,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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