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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스터 Mar 26. 2018

결국 폭발했다, 쌀국수 하나에

엄마와 단 둘이 떠난 여행

2018.01.30.~2018.02.03.    

베트남 다낭&호이안     


지난 1월말 엄마와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났다. 단 둘이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여행 3일차에 접어든 아침, 동생에게서 카톡이 왔다.     


“둘이 찍은 사진 좀 보내봐”

“없는데?”

“엥, 둘이 싸웠어?”

“아니”

“근데 왜 사진을 안 찍었어? 그나저나 안 싸운 게 더 놀랍다.”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가 3일차 되도록 사진 하나 함께 찍지 않았으며,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단 사실을. 사실 함께 찍은 셀카가 한 장도 없단 사실이야 크게 새로울 것이 없었는데, 우리 둘 다 셀카를 잘 안 찍는 편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단 한 번의 말싸움도 하지 않았단 사실은 꽤나 놀라웠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여행 가면 싸운다는 말은 가족관계에서도 성립하니까. 대표적인 예로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이 함께 떠난 인도 배낭여행에서 우리는 ‘오지게’ 싸웠다. 낯선 곳에서의 여행은 선택의 연속이기 마련인데, 각자의 기준이 있다 보니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속마음은 언젠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법.  결국 우리는 고작 쌀국수 하나에 폭발하고 말았다. 그것도 여행을 다 끝내고 난 뒤,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다낭 공항에서.      


발단은 닭고기 쌀국수였다. 우리는 배고픈 상태로 공항에 도착했고, 공항 내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할 겸 남아 있는 베트남 화폐도 모두 사용하기로 했다. 카운터 위 그림을 보고 우리가 시키기로 한 메뉴는 소고기가 푸짐하게 든 쌀국수. 엄마가 그 메뉴를 선택했고, 나는 쌀국수라면 뭐든 좋아서 오케이였다. 남아 있는 베트남 화폐로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이라 딱 알맞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카운터에 가서 주문하려고 하니, 우리가 선택한 것이 내장고기 쌀국수이며 소고기만 든 쌀국수는 훨씬 비싸다는 게 아닌가. 남아 있는 베트남 화폐로는 지불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고민하던 나는 예산에 맞는 닭고기 쌀국수를 시켰고, 나의 융통성을 내심 뿌듯하게 생각하며 엄마에게 메뉴 변경을 알렸다.     


그런데 그 순간 엄마가 불만을 터뜨렸다. 닭고기 쌀국수는 못 먹겠다고 말하지 않았냐고. 배도 너무 고픈데, 제대로 못 먹게 생겼다고. 그제서야 떠올랐다. 며칠 전 숙소 아침으로 나온 닭고기 쌀국수에 엄마가 손을 거의 대지 않았던 사실을.


그 때 엄마는 닭고기 국수는 별로다, 그래서 닭 칼국수도 별로 안 좋아한다, 말했었다. 나는 엄마와 이십여 년을 함께 살면서도 한 번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라 크게 놀랐으면서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다. 엄마랑 가깝다고 자부하는 내가 처음 안 사실이라면,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음식은 아니겠지 하고.


그런데 알고 보니 엄마는 닭고기 쌀국수를 정말로 싫어했던 거였다. 공항에서 굳이 닭고기 쌀국수 옆의 소고기 쌀국수(알고 보니 내장고기 쌀국수였던)를 콕 집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사실을 전혀 캐치하지 못하고, 예산 내에서 알차게 잘 시켰다고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국, 카드로 소고기 쌀국수를 하나 더 결제했다. 그 날 따라 나의 판단 미스로 엄마를 좀 고생시킨 상황이었던데다 엄마의 입맛 하나 기억하지 못한 것이 좀 미안하기도 해서. 하지만 그렇다고 여행 내내 어디 갈지 선택하랴, 지도 보랴, 주문하랴, 신경쓰느라 정신 없었던 나의 억울함이 가신 것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조금 더 상승했다. 그러면 엄마가 시키던가! 하는 억울함.


결국 쌀국수를 먹던 중에 속으로 삭이던 불만이 더해지고 커져 나는 울분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나대로 엄마를 이끌며 정신없이 다녔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나도 지친다고. 그러면서 여행이 다 끝나가는 마당에 쪼잔하게 여행 초반부터 있었던 일까지 들먹였다.


엄마는 잠자코 있다가 갑자기 성을 내는 나의 모습에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그래, 그래 달래주었는데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았을, 우리와 마주하여 앉아있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국인 여자 셋에게는 참 재밌는 볼거리였을 거다. 한 번은 엄마가 화를 내고, 그 다음엔 딸이 화를 내고.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그래, 역시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은 무리야, 하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뒤늦게나마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니 한국에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올 수 있었다. 나만 참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것. 엄마는 엄마대로, 그리고 나는 나대로, 우리 서로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억울하고 지친 마음은 죄다 베트남에 묻어 놓고 올 수 있었던 셈이다.


다만, 그 때문인지 베트남 자체는 별로 좋은 여행지였다고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 한국 여행객이 너무 많아 해외여행이 주는 생경함을 충분히 누리기 어려웠던 것도 우리가 느낀 단점 중 하나다.)       


언제 또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음의 여행에서는 우리 둘 다 기운을 회복해서,(이번 여행은 각자의 세상살이에 지친 우리 모녀의 '힐링'이 컨셉이었다) 이번보다 훨씬 더 자주 충돌하고 싸울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 과정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서로의 몰랐던 점들을 확인하게 될 거란 것.      


그리고 또 하나의 분명한 사실.

이제 우리의 식사 메뉴에서 닭고기 국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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