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새는 날들
남편과 다투었다. 늘 나를 우선으로 생각해주고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 중 하나인데, 결과적으로 우리의 여유 없음이 다툼을 초래했다.
돌아보면 대부분의 부부간의 다툼은 아무것도 아니거나 충분히 배려할 수 있는 일들인 것들이 많다. 물론 골이 깊은 문제들도 있지만 빈도수를 보면 다툼의 시발점은 사소한 것들이다. 오늘 역시 그랬다. 둘째 임신과 회사에서의 압박으로 집에서 자꾸 늘어져있고 핸드폰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남편은 심기가 불편했다. 나는 요즘 들어 뜸해진 부부간의 대화라던가 첫째 때와는 다른 상황 등에 서운한 마음이 자꾸 더해졌다. 그러던 중에 나무의 마데카솔 사건이 터졌다. 남편이 샤워를 하고, 나는 나무를 보며 아침밥을 하고 있었는데, 잠깐 음식을 뒤집는 사이에 나무가 뭔가 먹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급히 나무의 손을 보니 마데카솔이 뚜껑이 없어진 채로 들려있었다. 혹시라도 그 뾰족한 뚜껑을 먹었을까 놀랐으면서도, 요즘 들어 줄곧 위험한 물건들을 정신없이 놓는 남편이 떠올랐다. 남편이 사용하고 뚜껑을 안 닫았을 가능성도 있어 급한 목소리로 샤워 중인 남편을 불러냈다. 남편은 상황을 듣고는 한껏 찌푸린 인상을 쓰며 수건만 대충 두른 채 거실 곳곳을 찾아다녔다. 나무가 먹었는지를 알아보는 게 더 우선이 아닐까, 이 거실에서 그 작고 흰 뚜껑을 찾는 동안 애가 잘못되면 어쩌려고 하나 등의 마음이 생겨났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일단 화가 잔뜩 나있는 남편 기분을 더 예민하게 돋우고 싶진 않았다. 그러던 순간, 신의 장난 같게도 책장 구석, 그것도 흰색 책장 위에 떨어진 아주 작은 뚜껑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이다 안도하며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남편을 돌아보니 화가 가시지 않은 모양으로 다시 샤워실을 향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남편은 내가 도대체 애를 어떻게 봤길래 이런 상황을 초래했나 탓하는 마음이 들었단다. 워낙에 남편은 나의 모성이라던가 육아방식에 대해 꽤 존중하는 편인 데다가 설령 그렇게 생각했더라도 금세 마음을 다시 정리했을 사람이다. 워낙에 나는 방임형 육아스타일이고, 오빠는 세심하게 나무를 따라다니며 챙기는 스타일로 차이가 있었지만, 서로가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으니 더 좋다고 생각하던 판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순간 감출 수 없는 화가 돋아났다. 그 화는 내게도 전염되어 남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으며, 요새 부쩍 예민해진 남편의 상태로 늘 알 수 없는 눈치 속에 살고 있는 느낌까지도 몽땅 불러일으켜졌다. 결국 “오빠 이리 좀 와서 앉아봐” 로 시작하는 대화가 시작되었고, ‘너는 애를 어떻게 봤길래’ 대 ‘위험한 물건들을 온 집안에 널어놓으면 어떻게 해’ 논쟁으로 번지더니 결국 이게 우리 행복하게 사는 거 맞냐 등의 추상적이고도 아주 형이상학적이며 철학적인 이야기 까지 나왔다. 중간중간 서로는 유치하거나 과한 자기 연민의 표현을 했던 것 같다. 서로 상처되는 말도 하다가 한두 시간의 말다툼은 다행히 중심으로 돌아와서 우리 서로 잘해보자로 끝났다.
부부간의 다툼은 당연한 것일 테고, 이 과정을 통해 또 서로를 더 알아가고 사랑할 수 있게 되는 시간이 생길 거라 믿지만, 역시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가는 소모전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지치는 순간이 오면, 안타깝게도 내 머릿속엔 스멀스멀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워킹맘이라서 그런가. 내가 내 커리어를 욕심내서 가정의 평화를 깨치는 건가. 여유가 깃들 틈이 없는 우리 집이 건강한 모습일까. 이미 회사에서는 쏟아지는 일에 숨이 막히고 늘 긴장과 초조함의 스트레스가 지배적인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등의.
잠시 그런 생각들을 좀 해보다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오늘에 집중해본다. 다툼 후에 서로 힘내서 나무와 함께 공원에서 뛰어놀던 시간과 나무의 함박웃음, 그리고 아름답고 소중하고 신비로운 둘째까지. 매일매일 여유가 없고 손 틈새로 흘러가는 물처럼 새어 나가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손안에 담은 만큼에 감사하며 다시 내일을 위해 오늘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