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끈질긴 애정에 대한 짧은 이야기
여행을 다녀온 어느 날이었다. 저녁 10시나 되어서 집에 도착했는데, 곤히 잠든 나무는 나와 함께 먼저 집에 들어왔고, 남편은 주유를 하러 다시 차를 돌렸다. 나무는 이미 곤히 잠든 탓에 침대에 내려만 두어도 잠을 잘 잤다.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황금 같은 시간이 찾아오면 너무 굉장히 흥분된다. 뭘 해야 이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만족을 이뤄낼까.
하지만 그새 철이라도 들어버린 건지, 이 짧은 시간에 집 정리부터 시작한다. 레고를 정리하고 바닥에 먼지들을 어느 정도 닦아내고 쓰레기통에 버리려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 여행을 다녀온 탓에 쓰레기통에서 나무 기저귀 등이 섞인 냄새인가 했는데, 그것과는 또 다르다. 음식물쓰레기 냄새인가 했는데도 또 아니다. 쉽게 찾기가 어려워 그냥 쓰레기 냄새였겠지 단정하고 침대에 누워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하지만 영 찜찜하다. 다시 쓰레기통 주위에서 냄새를 맡아봤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냄새의 근원지가 될만한 것이 없었다. 전자레인지도 닦은 지 꽤 된 탓에 냄새가 나곤 했는데 최근에 닦아 이 냄새도 아니었다. 강아지라도 된 마냥 코를 킁킁거리며 쓰레기통 인근을 냄새 맡았다. 그러다 인덕션 아래 주방장을 열어보았다. 워낙 요리를 정성스럽게 하시는 시댁에서 직접 담근 간장이나 식초를 보내주시는데 그 향이 가끔은 꼬릿 하게 올라오곤 한다. 오늘도 정겨운 꼬릿 한 냄새가 주방장을 열자마자 피어올랐다. 워킹맘 아래서 자란 내가 이런 냄새가 베인 주방장을 가진 여자가 되었다니. 상상이나 했을까. 잠시 딴생각을 뒤로하고 다시 냄새를 맡아보았다. 여기다. 하지만 꼬릿 한 냄새랑은 다르다. 아예 자세를 낮춰 쪼그리고 안을 들여다보니 이 괴상한 냄새의 주범을 드디어 만나볼 수 있었다. 호빵이다. 한 달씩이나 유통기한이 지난 호빵 두 묶음이 반쯤 먹어놓고 봉지도 열린 상태로 그대로 방치되어 있던 것이다. 이 부패한 냄새가 주방장을 채우고 넘쳐 내 코까지 와 닿았던 것이었다. 남편의 흔적이었다. 지난날 호빵을 같이 데워 먹고는 여기에 이렇게 깊숙이 넣어둔 것이다. 호빵을 먹고는 당연히 냉동실에 보관했을 것이라 여겼던 나의 생각과 달리 남편은 여기에 방치해두었다.
나의 날 것의 본성은 남편을 탓했을 수도 있다. 내가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은 타인의 실수를 비난한다. 특히 모처럼의 휴식시간에 상한 호빵을 꺼내어 음식물 쓰레기와 분리수거로 정리하고, 주방장을 환기시키고, 그러다 그 김에 주방장 청소도 하고, 점점 집안일을 하기에까지 이르게 되면 더욱 비난한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남편이 참 귀엽다고 느꼈으며, 심지어 한결 더 사랑스러워 보였다.
남편은 나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침착한 타입이어서 주변에서 보면 내가 늘 실수를 많이 할 것 같고, 남편은 차분하게 일을 침착하게 처리할 것 같아 보인다. 실제로 대부분 그렇지만, 이렇게 종종 영문을 알 수 없는 엉뚱한 실수를 하곤 한다. 이것은 나만 아는 남편의 모습이다. 나는 이 모습이 너무 소중하고, 다른 누구와는 달리 나만이 이 모습을 가장 사랑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남편도 이 사실을 안다. 처음에는 내게 자신의 빈틈을 보이는 것에 큰 위협감을 느끼고 방어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편안해져 감을 느낀다. 나는 이 미묘하지만 아주 중요한 차이들이 매우 소중하다. 나에겐 남편이 남편을 향한 나의 관점과 태도를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며, 그 친밀감을 기반으로 한 전인격적 관계가 귀중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자세는 남편의 빈틈에 대해 코멘트할 때 나의 태도를 결정한다. 애정이 있는 코멘트는 남편에게 비난이 아닌 하나의 의견으로 전달된다.
사람은 빈틈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래서 사람이 좋다. 내가 들어갈 틈이 없는 사람과는 관계가 어딘가 머쓱하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혼자 잘 살 것 같은 사람과의 관계는 겉도는 기분이다. 나는 남편과 그리고 더 나아가 나무가 이 중요한 사실을 잘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타인의 빈 틈을 약점 잡지 않고,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부족해도 되고 실수해도 괜찮다. 누군가 끊임없이 사랑해주고 있고, 내가 나를 위해 스스로 사랑해줄 것이기에. 내게 남편과 나무가 있듯이, 나무에겐 나와 남편이 있기에. 그 사랑을 바탕으로 든든한 영양분으로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