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출근했을 때, 이상하리 만치 일이 없을 때가 있다. 예상치도 못한 한가함은 항상 기대하던 것이지만 되려 불안하기도 하다. 내가 혹시 잊은 것은 없는지, 이전에 했던 일에 혹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일에 대해 걱정하면서. 물론 그러다가도 '이럴 줄 알았으면 휴가를 낼 걸 그랬나', '이런 날이면 팀장 재량으로 쉬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하며 괜히 직장 탓을 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유연한 조직이 있을까 싶지만, 있어도 얼마 안되겠지 하며, 항상 같은 상황에서 같은 결론에 이르고 이내 점심을 먹으러 간다.
조직과 팀 내에서 각자가 하는 일이 다 다르고, 맡은 바가 다 다른 만큼 일의 템포도 같을 수 없다. 총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가장 바쁠 것이고, 가장 비중이 적은 팀원의 일이 가장 빠르게 끝날 것이다. 이럴 때 일이 빨리 끝난 팀원은 아마 해당 일이 종결될 때 까지 대기의 시간이 있을 것이며, 그 시간이 조금은 지루할 수 있다. 당연히 본인이 한 일에 대한 피드백이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대기 시간의 지루함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훌륭한 팀원의 행동유형 중 하나는, 다른 팀원의 일을 도우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맡은 일의 비중이 컸을 수도 있고, 작았을 수도 있지만, 내가 빨리 끝난 만큼, 다른 팀원이 아직 끝내지 못한 일에 대해서 도우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팀원의 사기진작에 도움을 주는 것 같다. 팀이 다 함께 움직인다는 인식을 주며,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일체감을 주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는 팀원은 본인의 일을 수월하게 끝낼 수 있으며, 도움을 주는 팀원은 대기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동시에, 본인의 역량도 한 단계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 대기만 하고 있는 팀원도 있을 수 있다. 팀장의 지시에 따라 일을 마쳤고, 그 외 추가지시가 없으니, 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의 측면에서 봤을 때,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구조적으로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한 대책이 없다면, 팀원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할 일을 찾는 것을 바라는 건 아마 경영자들의 욕심 아닐까. 그래서 사장님들이 좋은 직원을 뽑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일텐데, 사람이란게 편한 쪽에 중력이 작용하는 동물이고, 그런 사람이 대다수라 어쩔 수가 없다.
그런다고 사람이 항상 훌륭하거나 항상 아쉬운 법은 없다. 어떤 계기로 대기만 하던 팀원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팀을 돕고 같이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날도 있을 것이다.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은 처음에는 팀의 업무에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부장과의 일련의 사건 이후로 팀의 업무에 참여하고, 자발적으로 야근을 한 후 막차를 타기 위해 팀원 모두와 뜀박질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 역시 컨디션이 좋고 일이 잘 풀리는 날에는 다른 팀원들의 업무가 눈에 들어오고, 더 효율적인 방안이 생각나면 팀원과 함께 협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그럴 때면 나 스스로도 지금이 아주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내 상황과 일정의 피로도가 날 무디게 하는 날인 것이다.
더 나이지길 바라고, 성장하길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언제든 나의 할 일을 찾고, 혹은 내가 했던 일을 자가적으로 피드백해가며 나아가아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오늘만은 이 여유로움을 즐겨보고 싶다. 어쩌면 내 지난 날들에 대한 한 스푼 꿀같은 보상이자, 별거 아닐 수도 있는 나의 노력에 대해 스스로가 인정해주는 행위이다. 오늘의 휴식으로 인해 내일 더 나아질 나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지금까지 나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써왔다고 자신하기에 하루 정도 미뤄보려고 한다.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