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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깃 May 27. 2024

하찮은 자부심

자부심이 뭐기에

자부심. 나는 어떤 자부심이 있을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 일단 검색부터 해본다. 글자 그대로 자부하는 마음, 사전적 의미로는 스스로 자신의 가치나 능력을 믿고 떳떳이 여기는 마음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프라이드(pride). 


자존감, 자존심, 자부심의 정의와 차이를 정리한, 이름 모를 자기 계발서에서 발췌한 것 같은 내용이 검색된다. 필요한 것은 자부심이니까 자부심에 관한 내용만 적어보자. 특정한 만족감, 특히 자신의 행동과 성취로 인해 더 분명히 인식하는 만족감이라고 한다. 자신이 이룬 성과를 생각한 다음, ‘해냈다’고 말하는 것이 자부심이라나.


그 외에도, 한자를 그대로 직역하면 ‘自負心, 스스로 짊어지는 마음’이라는 말도 있다. 남이 짊어져 주는, 즉 알아봐 주거나 치켜세워 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자신을 치켜세우고 알아봐 줘야 한다는 것이다.


자의식과 관련된 감정으로, 자신의 능력이나 업적, 지위 등에 대해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긍지를 느끼는 마음이란다. 그런데 능력, 업적, 지위 같은 것도 결국 남이 정해놓은 객관적 기준에 의해 측정되는 것 아닌가? 설명 자체에 모순이 있다고 느끼면서도, 나는 그 세 가지 중에 어느 하나라도 있는가 고민하게 된다.


어쨌든, 자부심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평가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내리는 평가에 달린 듯하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아무리 치켜세운들 그저 껍데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사람들은 그럴싸한 내 껍데기만 보고 듣기 좋은 말만 해주지만, 나는 그것이 헛것임을 아는 기분이랄까. 그런 생각에 빠져들다 보면 언젠가 남들이 내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 실망하고 뒤에서 험담이라도 할까 두려워지기도 한다.


사실 그들은 그렇게까지 나에게 관심과 기대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나부터 나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 한없이 낮추다 보면, 그것이 또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각자의 뇌피셜인지 어디선가 긁어온 것인지 모를, 이러쿵저러쿵 늘어놓는 말들 속에 자부심과 자존감, 자신감, 기타 등등 많고 많은 ‘자O심, 자O감’들이 얽히고설켜 나까지 뒤죽박죽 엉망진창 혼돈의 카오스로 빨려드는 것 같다. 내가 이래서 자기 계발서가 싫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나는 어떤 자부심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남들이 보면 하찮을 수도 있지만, 난 참 ‘혼자서도 잘 논다’는 자부심이 있다. 아니, 있었다.


노는 데에는 제법 부지런한 편이어서, 하루 이틀이라도 짬이 생기면 통영으로, 강원도로, 심지어 일본까지 다녀오기도 했는데. 최근 몇 주간은 만사가 귀찮아져 있었다. 글쓰기도 한동안 멈춰버렸다. 친히 직장인들이 가장 힘겨워하는 수요일에 와주신 부처님의 자비가 무색하게, 하루 종일 침대 위에 들러붙어 꿀 같은 주중 휴일을 허무하게 보내버리기도 했다.


참, 그전에 전시도 하나 보기는 했구나. 역시 땡땡이부심은 살아있다. 한남동 알부스 갤러리에서 하는 미로코마치코 개인전 ‘Wriggling Creatures 일렁이는 섬의 생명체들'이라는 제목의 전시였다. 대도시 도쿄에서 따스한 아마미오섬으로 터전을 옮긴 작가가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듯한 순수한 이미지의 그림이 가득했다.


마치 아이들의 낙서 같기도 한 작품을 보며 몇 년 전 메기지마라는 작은 섬마을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7월의 뜨거운 햇빛 아래 길바닥에서 오색 분필로 그림을 그리며 놀던 아이들. 자칫 걷다 지쳐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바로 인간 후라이가 될 것 같은, 절절 끓는 아스팔트보다도 더 뜨겁게 끓어오르는 아이들의 (놀겠다는) 열정에, ‘젊음이란 정말 대단하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들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내 안에 있는 혼자 놀기의 열정을 불태워보려 한다. 어디 자부할 것이 없어서 하찮게 노는 데 자부심을 느끼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뭐 어떤가. 외로워도 슬퍼도 혼자 잘 노는 내 능력을 믿고 당당하게 여기는 마음이 자부심이라며.


메기지마 열정 키즈의 스트릿 아트(?) 작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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