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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의사권선생 Jan 14. 2018

E17. 괴물이 눈에 있어요(반려동물 안충 감염)

닥터 아이펫 동물병원 진료 에세이. 눈 기생충 감염증

조준. 발사!! 쏴아아 악~ 
주삿바늘에서 시원하게 뽑아져 나오는 식염수가 물대포 같다. 눈에 사는 기생충, 안충을 제거하는 중이다. 어찌나 큰 지 내 손가락 끝 마디 길이 정도다. 생긴 거는 꼭 지렁이인데 무늬도 없고 그냥 하얗다. 진짜 이렇게 말하긴 미안하지만, 딱 보면 기분 나쁜, 뭐 그런 느낌이 든다. 눈 표면에 붙어 기생하는 지렁이. 사람한테도 옮는 기생충이라 더 혐오스럽다. 어떻게 여름도 아니고 최강 한파를 기록하는 이 날씨에 안충이 있을까? 아마도 몇 달 훨씬 전에 감염되어 눈 안에서 무럭무럭 자란 듯했다. 오호통재로다.

제거한 안충. 으 징그럽다.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어제였다. 우리 병원에 '보미'라는 강아지가 처음 왔다. 개구쟁이 보거스를 닮은 두 살박이 남자 웰시코기였다. 완숙미는 없었지만 근육이 컸다. 다부지다 할까. 고집도 있는 것 같고 미간에는 힘이 꽉 들어가 보였다. 근데 쭈뼛쭈뼛. 얼음 자세다. 순둥이 쫄보였다. 진료실 낯선 환경에 위축된 듯했다. 에구구 귀염둥이. 진료대에서 살포시 들어 한번 꼭 안아주고 긴장 풀라고 바닥에 내려놨다. 그랬더니만, 꼬리가 대충 달린 토실한 궁둥이 흔들며 도망간다. 그리고 "나 싸나이예요."라는 투로 날 힐끗 뒤돌아보더니 애꿎은 초음파 기계 바퀴에 쉬 했다. 그 짧은 다리를 척! 들고 아주 대차게 쭉쭉 갈겼다. 웰시 자존심에 금이갔나? 심술은.. 참고로 초음파 기계는 우리 병원 자산 2호이다. "아 죄송해요 T.T" 보호자님께선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신지 익숙하게 용변 처치를 도와주셨다.


한바탕 물난리 소동을 정리하고 오늘 어디가 안 좋아 오셨는지 여쭤보았다.


"눈에 안충이 있다고 며칠 전 미용해주신 곳에서 그러더라고요, 이게 왜 생기나요? 

"초파리가 눈에 붙으면 걸리는 거라 겨울에는 드문데요, 한번 볼까요? 양쪽인가요?"

초파리가 안충을 전파하는 모습. 사진출처(Italy, Bari Aldo Moro 수의과대학 기생충학 교실)

신기하게도 정말 안충이었다. 보이는 건 한쪽 눈에만 있었다. 꿈틀꿈틀. 힘차게도 움직인다. 이미 안충이 있는 눈은 쌔빨갛다. 보호자님께선 눈이 빨간지도 모르셨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안아주고 어루만질 동안 나 또한 보미 눈이 아픈 줄 몰랐다.


안충은 초파리가 옮기는 기생충인데 눈물을 먹고 산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대륙에는 아예 없고 아시아 지역을 주 무대로 발생한다. 학계 발표는 1910년 중국에서 서양 학자에 의해 첫 보고되었다. 그래서인지 정식 이름이 "동양안충(Oriental eye worm)"이다. 요새 들어, 꾸준히 유럽지역에 이 벌레가 전파되고 있다. 오죽하면 2017년 영국 수의학계는 이 벌레로 난리가 났었다. 그 당시 신문을 보면 '강아지들의 눈을 멀게 하는 동양안충이 영국에 퍼지고 있다. (Oriental eye worm’ infection that makes dogs blind spreading to UK)'라는 기사가 검색된다. 사람에서도 걸릴 수 있기 때문에 공중보건상 민감한 점도 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동물에서 많이 발생한다. 동물은 눈꺼풀이 하나 더 있어 안충이 그곳에 숨어 살기 쉽기 때문이다.

안충의 전염경로. 출처 미국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

근데 재미있는 건 이 벌레의 학명(Thelazia callipaeda)이다. ' 아름다운 애기벌레(BEAUTIFUL + CHILD)라는 뜻을 의미다. 아니. 왜.. 이렇게 이쁜 이름을 붙였을까. 아래 그림은 안충 어미가 뱃속에 애기벌레인 유충을 품고 있는 현미경 사진이다. 사진을 봐도 학명에 대해선 난 잘 이해가 되진 않는다. 알을 낳지 않고, 포유류처럼 애기벌레를 낳아서 그런 가 싶기도 하다.

L은 라바(애기벌레)의 약자, TS는 라바를 품고 있는 엄마벌레의 몸 경계선을 의미. 사진출처 하단기입

당장 안충을 제거하기 위해선 전신마취를 해야 했다. 보미는 방금 점심을 먹고 왔었다. 공복 상태가 아니면 마취가 불가하다. 안전상 마취가 필수이기에 명일 오전 첫 타임으로 예약하고 퇴원 조치했다.


다음날 보미는 수술 전 혈액검사가 나오는 동안에도 초음파 기계에 실례를 했다. 휴... 검사 결과상 특이사항이 없어 바로 마취하고 수술대로 옮겼다.


슈욱~, 슈욱. 안구 세정수가 사정없이 쏟아진다. 수술대는 물 기포로 흥건하다. 고글에 맺힌 물방울이 이내 뚝뚝 떨어진다. 온몸으로 저항하던 벌레도 결국 식염수 폭포가 만든 큰 파도에 표류하듯 떠밀려 나갔다. cast away 영화처럼.. '다 씻겨졌나?'  마지막 한 마리가 보인다. 보미 눈 안에 살던 작은 악마는 끝까지 발악을 했다. 용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 온몸을 비틀고 꽈리를 만들었다가 힘껏 곧추 편다. 강한 추진력을 얻은 이 괴물을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었다. 허나 그래 봤자 내 손바닥이다. 위쪽 눈꺼풀을 살짝 올리니 꼬물딱 꼬물딱 먹잇감이 보인다. 피~슝~ 결국 마지막 남은 안충도 깨끗하게 제거했다.

안충이 눈에서 춤을 추는 모습

양 쪽 눈을 세 번씩 더 washing 하고 마무리했다. 실제 어린 벌레는 너무나도 작다. 그러니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극히 드물지만 사람에서 결막낭 내부 감염도 보고된 바가 있다. 이런 경우는 수술용 칼로 다 찢어가면서 빼야 한다. 안충은 사람한테 옮을 수 있다. 꼭 명심하시길 바란다. 강아지 눈곱, 눈물을 닦아주신 후에는 반드시 손을 씻길 당부드리고 싶다.

입원장으로 보미를 옮기고, 안충으로 기인했던 포도막염, 결막염 치료를 위해 소염 안연고를 주입했다. 마취도 곧 회복되었다. 건강하긴 짜식. 퇴원시키면서 3일 후 재방문을 요청드렸다. 내외부 구충약도 투약하고 3개월간은 구충 관리를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유충 구제 관리 때문이다.

시술 끝 마취회복한 보미,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다행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심각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그냥 한 겨울에 잘 없는 케이스인데 꽤 오랫동안 안충 감염된 채로 지내왔을 거 같다.

엉덩이를 실룩거리면서 퇴원하는 보미를 보며 기분이 좋았다. 역시 웰시코기는 뒤태로 승부한다! 또 보자 보미야~ 이제 초파리 조심하고!!!



Two cases of human thelaziasis as confirmed by mitochondrial cox1 sequencing in China 현미경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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