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지는 꽃은 지는대로 피어나는 향기는 그대로

by 글다뮤


분홍의 막이 내린다고 슬퍼할 일은 아니다. 가지 끝에 매달린 벚꽃의 마지막 작별은 이별이 아니라, 더 짙은 향기로 찾아올 보랏빛 라일락에게 건네는 다정한 양보인 것 같다. 아파트에 가득하게 봄을 채워 준 벚꽃이 비워진 자리마다 연둣빛 희망이 돋아나고 봄은 그렇게 소리 없이, 그러나 치열하게 다음을 또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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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이른 시간 치과를 다녀온 후 비온 뒤 날씨가 너무 쾌청하여 걸어보기로 했다.


어느 담벼락 위,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시인의 낡은 구절처럼 따뜻한 햇살과 살랑 부는 미풍에 수염을 떠는 길 위의 작은 생명들과 눈을 맞추어 본다.


금빛 눈동자에 담긴 나른한 오후의 평화, 그들도 알고 있겠지? 지금 이 공기가 얼마나 투명한 축복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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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신천을 따라 걷다가 공원에 도착해 샌드위치와 커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다보니 유치원 꼬맹이들이 봄소풍을 왔다보다. 아이들 얼굴에도 봄의 화사함이 전달된 듯 하다.



오늘따라 커피의 쓴맛 조차도 달게 느껴진다. 흰 구름을 흐름을 쳐다보고 봄바람을 느끼다 보니 오늘은 신발을 벗어 던지고 흙의 심장소리를 느껴보고 싶었다.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벚꽃 엔딩의 비단길, 차가운 대지가 전해주는 촉촉한 생명력에 겨우내 쌓인 마음의 먼지가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맨발로 전해지는 대지의 온기는 머릿속 소음마저 고요하게 잠재우는 정화의 손길이 따로 없다.



비 온 뒤 신천의 물결은 더 반짝였고, 내 발바닥에 닿은 흙은 벚꽃잎보다 더 부드러웠다.


자연이 양보를 가르쳐주었으니, 나도 오늘만큼은 조급함을 내려놓고 봄의 속도에 맞춰 걷기로 했다.



흩날리는 꽃비 속을 걸으며 노래해본다. 지는 꽃은 지는 대로, 피는 향기는 피는 대로 나의 봄은 발바닥 끝에서 머리 끝까지 다시 시작될 계절을 향해 유영하듯 넘실대고 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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