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이루지 않고도 행복할 순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고졸학력으로 뭐가 되려고 그래"
"꼭 뭐가 되어야만 해요?"
중졸 딱지를 달다
2009년, 고등학교 재학을 앞두고 난생처음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친구들 따라 실업계냐, 부모님의 바람대로 인문계를 진학하느냐" 실업계를 처음 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 똥통학교를 들어가면 엄마는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니니?" 결국 나는 고입선발고사를 치르고 인문계로 진학했다.
처음엔 재미있었다. 새로운 장소, 새 교복, 새로운 사람들. 모든 낯선 요소들이 내 활기를 돋아주었으니까. 입학 후 3개월 정도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너무 빨리 지나가서 눈치를 못 챈 것이었을까? 학창 시절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반항의 씨앗이 싹을 피웠고, 결국은 숲을 만들어 내 시야를 가려버렸다.
앞머리가 눈썹을 가렸다는 이유로 벌점을 받았고, 교복을 수선했다는 이유로 벌점을 받았다. 벌점이 쌓여 아침 일찍 등교해 계단 청소, 운동장 청소, 화단 청소 등을 반복하며 벌점을 지워갔다. 잘은 못 했어도 반 중간은 지키고 있던 내 성적은 전교 꼴찌 앞 앞 앞. 내 뒤에 있던 친구들은 그마저도 특수반 친구들이었다. 그렇게 난 학업에 흥미를 잃었고, 조퇴와 무단결석이 내 생활기록표를 덮어가고 있었다.
2 남중 장남. 중학교까지만 해도 우리 집에선 내가 얌전하고, 별다른 사고 없이 학교생활 잘하는 착한 아이였다. 아니 그렇게 날 오해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생각하는 착함과 내가 생각하는 착함은 달랐르니까. 처음 무단결석을 하던 날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버스를 타고 서울로 나갔다. 물론 핸드폰은 당연히 꺼뒀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집에서 16번을 타고 학교를 지나 천호역에서 하차했다. 맥도날드를 가서 런치세트를 포장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어린이대공원에 도착했다. 딱히 계획도 없이 즉흥으로 무단결석을 했던 터라 당시 입장료 없는 동물원 "어린이대공원"이 떠올랐다. 필자는 동물을 어려서부터 좋아했으니까 이만한 도피처가 또 어디 있으랴.
저녁 6시.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당당했던 나 자신이 조금 위축되기 시작했다. 뭐든 처음은 떨리기 마련이니까. 핸드폰을 켰다. "부재중 전화 3통". 생각보다 반응은 시시했다. 그래도 아직 긴장을 늦출 순 없다. 집에 돌아가면 어떤 반응일지 가늠조차 안되니까. 집에 도착하니 고기반찬들이 상 위에 올라와있었다. "아들~ 밥 안 먹었지? 밥 먹자~" 전혀 예상치 못 한 반응에 어리둥절. 밥을 먹다 물을 마시고, TV를 보다 밥을 먹었다. 질문이 날아올 수 없게 일부로 정신없이 행동했다. 빈 그릇을 긁는 소리가 거실을 감쌀 때쯤, 엄마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 하루 종일 어디서 뭐했어?" 질문의 방향성이 심문을 가리키진 않았다. 단지 내 아들이 하루 종일 어디서 뭐 했는지, 밥은 먹었는지, 왜 학교를 가지 않았는지 들어보고 이해하려는 느낌이 강했다. 그 당시 우리 엄마 나이는 39. 엄마로 살기 1회 차인데 어떻게 저런 침착한 반응을 보일 수 있었는지..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보았고, 열일곱의 나이로 사회에 나오게 되었다. 누구의 권유도 아닌 나의 자발적인 의지로.
눈 앞에 보이는 게 전부야
고등학교 중퇴 후 10년이 흘렀다. "넌 뭐 이뤄낸 게 있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가끔 이런 말들을 한다. "이루긴 뭘 이뤄 그냥 즐기면서 사는 거지." 친구들은 내가 걱정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고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미래에 대해서도 또 결혼에 대해서도. 나는 지금의 내 삶이 너무나도 만족스럽다. 전문적인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모아둔 돈이 많은가? 그것도 아니다. 단지 단순한 사람일 뿐. 많은 사람들은 현재과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안고 있다. 왜 과거엔 미련이 없는가? 과거는 바꾸지 못하고, 미래는 바꿀 수 있으니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단순히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가 무서운 거다. 과거는 내 눈으로 봤던 것들이니까. 그렇다면 현재는 왜? 지금 내 눈으로 보고 있잖아. 현재은 미래를 만드는 밑거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현재에 만족하며 살지 못할까? 오늘을 즐겨야 내일도 즐거운 것이다. 미래를 두려워하면 현재 지금의 당신이 어떻게 불안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쉬운 것을..
소소한 기억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순간의 작은 조각들이 모여 기억을 만든다고. 동네 조그마한 목욕탕이 있다. 젊은 사람들보단 어르신들이 오시는 곳. 주말 오전 그 목욕탕에서 목욕을 끝내고 쭈욱 들이키는 바나나우유의 맛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목욕이 끝난 후 나만 알고 있는 구석진 돈까스 맛집에서 등심 돈까스를 시킨다. 때 빼고 광내고 먹는 돈까스는 "캬.." 이루 말할 수 없지. 그렇게 집에 오는 길 편의점에서 초콜릿을 샀다. "손님 1+1이에요." 오마이갓.. 천 원에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 두 개라니. 집에 와서 TV를 켰다. "헐" 꼭 보고 싶었던 영화가 이제 막 시작했다. 이런 것들. 작고 사소한 기억들. 행복이라 부르기엔 민망한 기억들이 결국은 "ㅎ을 만들고, 행을 만드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나는 행복의 기준점들을 낮게 잡아 놓은 것이다. 명품 가방을 사는 행복 말고, 유럽 여행을 가는 행복 말고. 너무 소소해서 지나치기 쉬운 기분 좋은 일들. 그것들을 잘 모아두면 결국은 행복 주머니가 되는 거라니깐.
고등학교 중퇴 후 많은 일들을 해봤다. 확실히 편견은 존재한다. 누군가는 원하는 대학을 나와 돈 잘 버는 회사원이 되었고, 누군가는 고등학교 중퇴에 딱히 목적 없이 흐르는 대로 사소한 즐거움을 모으며 살아간다.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강물은 바다에서 만난다. 이게 내 행복의 원인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그런 말들을 한다. "너는 너무 단순해." "어쩔라고 대책 없이 살아?" 연예인 걱정 다음으로 쓸데없는 짓이 남 걱정이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 마련.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같은 말로 대답한다. "뭐가 꼭 돼야 해요? 전 지금이 너무 좋아요."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른 거니까 누가 틀렸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부러워하지 않듯이, 나 역시도 당신이 부럽지 않다는 걸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행복의 척도는 자기가 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