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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 쓰기 도전

8명이 만든 책 한 권

살면서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은 꼭 내고 싶었다.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던 중 네이버 메인에서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네이버 우리동네’라는 카테고리에서 책 쓰기 파티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지원한 프로그램은 20만 원이 안 되는 가격에 책 제작부터 출판까지 모두 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책 출판 방식은 아니었지만 첫 도전으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고민 끝에 글에 적힌 메일 주소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


얼마 후 답장이 왔다. 같이 책을 쓰게 될 인원은 총 8명이며 주제는 ‘여행’이었다. 확 끌리는 주제는 아니었지만 중요한 건 책을 내려는 시도였다. 인원이 마감된 후 첫 모임이 있던 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교대역 근처 카페에서 모임을 가졌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자기소개를 하는데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해외여행 경험이 많았고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책 쓰기가 목적이라 주제를 별로 고려하지 않은 나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자기소개 후에는 모임 전 준비해 오기로 한 과제를 꺼냈다. 독자 타겟, 주된 여행지, 쓰고 싶은 내용 등을 적은 A4 한 장과 함께 저마다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모두 해외여행 경험을 쓰고자 했고 나도 이탈리아를 다녀왔던 내용을 써보고자 했으나 모임 전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한 사람이 있었다. 그분은 첫 모임 이후 이탈리아를 다녀와서 다음 모임부터 내용을 구상할 예정이었다. 몇 년 전 이탈리아를 다녀온 나와 달리 더욱 생생한 체험이 나올 것 같아 나는 국내 여행으로 컨셉을 바꿨다.


써야 할 총분량은 인당 9~10장이었다. 2주에 한 번씩 모일 때마다 정해진 분량만큼 글을 쓰고 모임 전 단체방에 글을 공유해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어와야 했다. 두 번째 모임, 세 번째 모임이 진행되면서 처음 느꼈던 이질감이 더욱 강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글에 대한 피드백은 여행 체험기 공유로 변하는 느낌이었고 비전문가들의 피드백은 신뢰가 가지 않았다.


8명의 역량도 제각각 달랐다. 경험은 풍부하지만 정리가 안 되는 사람, 일기만 쓰는 사람 등. '책을 써야지' 생각만 하고 공저로 책을 쓸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고려하지 않은 내 탓이었다. 나는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남들의 주장을 수용하는 편이다. 8명의 사람은 너무 많았고 서로 의견이 부딪히며 결국 목소리가 큰 사람의 주장대로 방향이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책 표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다. 화려하게 금박을 넣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특히 금색이 비싸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금색이 아니더라도 확 튀는 색이 좋을 것 같았으나 결국 책 표지는 파스텔톤 민트와 분홍 중 민트로 선정됐다.


같이 모여 좋은 점도 있었다. 책 출판은 크라우드펀딩형으로 진행되는데 크라우드펀딩에 대해 지식이 있는 사람, 책을 홍보해 주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많지 않은 제작비용이지만 모임장은 최선을 다했다. 프리랜서를 섭외해 글에 알맞은 일러스트를 한 장씩 넣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는 '당신이라는 꽃이 피는 계절'을 헤드로 잡았기 때문에 꽃과 관련 있는 사진을 일러스트로 넣었다.


책 출판 후에는 자축의 시간을 가졌다. 그 날은 처음으로 인쇄된 책을 받아보는 날이기도 했다. 모임장님의 부인께서 치즈, 와인, 과일, 손수 만드신 요거트를 내놓으시며 완결을 축하해 주셨다. 책 일러스트를 그려주신 분, 영상 촬영을 도와주신 분도 자리를 함께했다.

모두들 저마다 부푼 마음으로 완결된 책 한 권을 품에 안았다. 2~3달간의 노력의 결실이었지만 아쉬움도 남았다. 혼자 책을 썼다면 좀 더 원하는 방향으로 책을 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주제에 대한 고찰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며 아쉬웠던  대부분의 글이 일기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체험을 넘어서는 감동이 있다면  좋지 않았을까, 그리고 8 분의 분량을 개인이 채워냈다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크라우드펀딩 목표를 달성하여 새로 인쇄가 들어갔다. 그 이후 생긴 작은 수익은 8명이 나누어 가졌다. 첫 술에 배부르랴. 하지만 첫 술에 배고파지니 작가의 문턱을 실감했다.


첫 경험, 첫 책 쓰기라는 점에 의의를 두고 다음에는 내 이름 석자가 새겨진 책 한 권을 오롯이 써보고 싶다. 첫 술을 넘어 두 번째, 세 번째에는 보다 성장한 작가로 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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