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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리 Feb 07. 2021

행복한 이유는 사랑할 수 있기 때문

<헤세, 사랑이 지나간 순간들> 헤르만 헤세 

2년 전 인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헤세, 사랑이 지나간 순간들>을 읽고 이 글을 썼다. 그때 내가 했던 사랑에 대한 사색과 오늘 나의 사색이 그리 다르지 않은걸 보면 사랑에 대한 나의 가치관은 여전한가 보다. 

 

헤르만 헤세. 내가 정말 사랑하는 작가이다. 그의 모든 작품은 우리를 내면의 삶으로 이끈다. 영혼과 삶에 대해서 가장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던 스무 살 초반 나는 헤세의 글을 보며 위안과 위로를 얻었다. 


헤세는 우리가 행복한 이유는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 자신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진실된 행복으로 이르는 길이다. 내가 오랫동안 사랑했던 가족, 친구, 애인 이 모두를 내가 사랑할 수 있었기에 그동안 나 스스로가 행복했던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 이 사람으로부터 내가 얼마나 사랑받을 수 있는지, 이 사람이 나를 얼마나 위해주는지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내가 얼마나 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할 수 있는지, 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지, 이 사람이 필요한 부분을 내가 얼마나 진실되게 사랑으로 채워줄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할 때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됐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은 분명 여러 가지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 그 기준은 언제나 분명했던 것 같다. 헤세는 그 기준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내면의 음악이 나의 것과 잘 일치해야만 해요. 그래서 그의 고요한 음악이 순수하게 나의 것과 함께 울려 퍼지는 것이 그의 유일한 욕망이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영혼의 목소리와 나의 그것이 일치한다는 것. 생각만 해도 아름답다. 살아온 환경과 받아온 영향은 분명 한집안에 태어난 가족조차도 다르다. 하지만 내면의 음악이 같은 선율을 가지고 연주된다면, 환경과 상황과 나이와 국적 이 모든 것들은 결코 그 음악이 함께 연주되는 것을 가로막을 수 없다. 나에게 있어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할 가장 분명한 기준을 찾으라고 한다면 바로 우리 사이에 조화롭게 연주되는 내면의 음악일 것이다. 


헤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름다움이란 그 자체를 지니고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숭배할 줄 아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아.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운 말이다. 이래서 내가 헤세를 사랑하나 보다. 모든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볼 때 행복해한다. 이것은 마치 배가 고플 때 음식을 찾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느끼고 듣고 만지는 그 모든 것들은 내면의 배고픔 채워준다. 아름다움 그 자체가 우리를 행복에 이르는 게 아니라, 그것을 숭배할 줄 아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숭배한다는 게 다른 것이 아니다. 그저 편안하게 감상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할 줄 알며, 사랑하는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그 모든 것이다. 길에 피어있는 작은 들꽃에서, 어린아이의 밝은 웃음에서, 황홀한 음악에서 느끼는 모든 아름다움 그리고 그러부터 자연스럽게 우리 마음속에 찾아드는 손님이 바로 행복인 것이다.


—  

“사람에게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없다. 또한 자기 자신보다 더 두려운 것도 없다.” 스스로를 가장 사랑하는 것.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나를 사랑하며 나의 존재를 느끼는 것 이 모든 것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며 삶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자신에게로 향하는 사랑이 온전할 때, 타인에게 향하는 사랑 역시 온전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한참 동안 모르고 살았다. 타인에게 유하고 스스로에게 혹독했다. 늘 나 자신이 가장 마지막이었으며 비난의 화살 역시 스스로를 향해 있었다. 독립적이기 위해서 신세 지는 것을 싫어했고, 강하지 않기에 방어하며 살아왔다. 이젠 나 자신을 누구보다 연민하고 사랑한다. 온전한 스스로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와의 대화를 한다. 세상에서 나보다 나를 더 많이 생각하고 걱정해온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누구보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한다고. 그렇기에, 이제는 준비가 되었다. 타인을 사랑할 준비가. 


—  

“세계를 꿰뚫어 보고, 설명하고, 비웃는 일은 아마도 대단한 사상가나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유일한 것은 세상을 사랑할 줄 알고, 그것을 냉소하지 않고, 세계와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랑과 놀라움, 경회심으로 자신을 포함한 지상의 모든 존재를 고찰하는 일이다.” 너무나도 쉽게 영향받는 사람이라, 세상을 부정하고 판단하고 냉소적으로 대할 때 나 자신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바보 같은 일이다. 무언가를 부정하고 문제를 찾아내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바보 같고 거만한 생각이다. 세계를 꿰뚫어 보는 것은 나처럼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대신, 그 안에서 따뜻함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랑하겠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이리라. 


“한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많은 요구를 한다면 나로서는 그것을 이해하고 시인할 수 있겠지만, 만일 이 요구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확장하고 또 자신의 삶을 선을 위한 ‘투쟁’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나는 그것에 대한 판단을 단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고, 또 마땅히 변화시켜야만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길이고, 자기 자신이 변화할 때 세상은 변화한다. 이것은 진리다. 다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건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의 가치를 지켜나가든 그것은 존중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확장하고 그것을 강요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일종의 투쟁으로 변할 수 있다. 아주 중요한 예가 바로 전쟁과 폭력이다. 스스로 변화가 된다면, 그리고 그게 정말 선한 변화였다면, 세상은 우리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상적인 곳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스스로를 한번 돌아봐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의 변화가 되기 위해서 오늘 나의 행동은 어떠했는지. 나는 어떤 변화를 선택했는지 말이다. 

— 


마무리는 항상 사랑이다. 

사랑받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 인간이며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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